상단영역

본문영역

혁오는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왔다

  • 입력 2015.07.21 16:54
  • 수정 2015.07.21 17:54
  • 기자명 조하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을 다루고 뮤지션을 소개하는 일만 6년 째. 나에게 특히나 소중한 뮤지션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혁오다.

혁오를 기점으로 음악을 다루는 나의 커리어에 숨표가 찍혔다. 그리고 생각을 많이 했다. 혁오가 한국 음악 씬에, 인디 씬에 나타나면서 동시에 많은 담론이 생겼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해프닝들도 많아졌다. 옳고 그른 가치 판단을 떠나 나는 어떤 형태로든 많은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에 대해 찬성이다. 그조차도 없이 떠드는 것이라고는 그저인디 씬의 침체는 한국 대중의 미성숙함 때문이다뿐이라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은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나타났다 이내 허무하게 스러지는 이들을 굳이 손가락질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담론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겐 분명 이유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혁오의 첫 번째 EP <20>이 발매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아침 출근길(나의 출근길은 넉넉잡아 2시간, 하루 왕복 4시간. 사람들이 그 많은 음악 다 언제 듣느냐고 묻는데, 나는 주로 이 시간에 음악을 듣는다.) 플레이 리스트에 기계적으로 추가됐다 사라진 앨범이었다. 처음 내 귀에 들렸던 건 꽤 잘 빠진 사운드였다. 타이틀 곡위잉위잉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모두 영어 가사였다. 국내 앨범만큼 해외 신곡도 많이 듣는 나에겐 오히려 매력이 없었다. 국내/국외 신보들의 음원 파일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혁오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음악의 작법이나 화법 등 스타일의 흐름에도 패션 같은 유행이 있다
. 혁오의 앨범은 트렌드에 충실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에도 오며 가며 들려오는 혁오의 노래들은밴드 아닌 밴드 음악이었다. 밴드 음악을 지향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어반 사운드처럼 들렸다. 다른 밴드 멤버들의 무언가가 들리진 않았다. 오로지 프런트맨 오혁만 있었다. 오혁이 모든 곡과 가사를 쓰고, 오혁이 노래를 하고, 오혁을 제외한 파트는 다른멤버가 아닌 다른연주자’의 손을 빌려 녹음한 앨범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혁오의 앨범을 흘려들었다.
이후 홍대 라이브 클럽 씬에서 혁오의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왔다. 공연 포스터에서 몇 번인가 이름을 봤지만 밴드 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밴드들의 공연에서는 한발쯤 어긋나 있었다. 혁오는 에반스 라운지라는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조용히 홍대 씬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공연을 그리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고 관객을 많이 모으는 편도 아니었다. 사실 홍대 라이브 씬에서조차 혁오가 설 수 있는 클럽이 어디인지 애매한 건 사실이었다. 홍대에도 하드 록 스타일의 밴드를 주로 올리는 클럽이 있고,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이들이 주로 서는 클럽, 재즈 클럽 등등이 있지만 혁오의 음악과 스타일이 비슷한 이들을 한 데 묶을 클럽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혁오는 홍대에서도 '낯선', 이방인 같았다. 메이저와 인디, 경계를 서성이며 혁오는 마음 둘 곳을 찾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인디 씬에 왜 이리도 멋진 신인이 없나, 뾰롱통해 다녔던 시기였다. 인디 씬의 중심은 밴드 씬에서 힙합 씬으로 이미 완벽하게 넘어가 있던 상태였다.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한국이란 나라는 언제나 어디로든 쏠린다. 아이돌 씬에 비정상으로 쏠려있는 한국 음악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인디 씬도 들여다보면 쏠림 현상이 심하다. 씬 안에서 밴드든 힙합이든 일렉트로닉이든 각자의 영역과 팬덤이 자생은 물론 유지가 안 된다. 밴드 음악으로 쏠렸던 관심이 오려 붙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힙합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예전에 <아레나>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미국은 저스틴 비버를 좋아하는 소녀 팬이 이매진 드래곤스도 좋아할 수 있지만 한국은 EXO를 좋아하든 검정치마를 좋아하든 어떤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그 안의 뮤지션을 선택해야만 한다. 아니, 선택하기를 강요 받는 환경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도록 하고, 다시 혁오 이야기로 돌아오면, 혁오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예당이 나오는 캐시미어 레코드 소속이었다.
혁오의 프런트맨 오혁은 이미 비트나 곡 작업으로 활동을 좀 해온 친구였고,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메인 스트림 지향적인 음악 작업이나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잘 빠진 곡들을 만들어 파는 걸 유지할 수도 있는 친구였다. 소울/R&B 보컬이라는 무기로 한국에서 잘 먹히는 노래만 골라 부르는 '보컬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혁오는 스스로 선택했다. 한국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들을 보고 듣고 알고 있는 환경에서, 음악을, 그것도 인디 씬에서, 그것도 밴드의 방식으로 구현하기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갑자기 혁오가 궁금해졌다.


당시 내 마인드에도 문제가 좀 있었다
. 스스로 멋있다 여기고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들조차 권태로워질 때였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재밌는 건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이것은 인디요, 저것은 인디가 아니다, 저건 구리고 이것만이 멋지다 팔짱 끼고 고개 젓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잡지 에디터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가장 경멸하던 모습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왜 나는 혁오를 밴드 음악이라 생각하지 않고 흘려들었던 걸까. 밴드 음악이 아니면 또 어떤가. 언제부터 나는 밴드 음악을 감히 누가 함부로 들어설 수 없는 성지인 듯 떠받들게 된 걸까.
그 동안 나는 무의식적으로 밴드라면 기본적으로 무엇을 갖춰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왔나 보다. 순간, 머리를 때렸다. 기존의 한국 인디 씬에서 알게 모르게 쌓여온밴드라는 것을 둘러싼 온갖 관념 따윈 개의치 않는다는 듯, 혁오가 그렇게 다시 들리고 보였다.
(나는 2015 1월호 <아레나>에 쓴 혁오 인터뷰 기사에 이들을힙합의 스웩과 애티튜드를 가진 밴드라고 소개했다.)
이 정도로 긴가민가해졌을 땐 일단 만나보는 게 상책이었다. 반신반의한 상태에서 혁오의 촬영과 인터뷰 스케줄을 잡았다. 인터뷰 전에 라이브를 보고 싶단 말에 오혁은 FF에서의 첫 공연이라며 날짜를 알려줬다. 평일, 두 번째 공연이었다. (보통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밴드들은 인지도나 인기도에 따라 요일과 순서를 배정받는다. ‘수요일 밴드토요일 밴드의 갭은 생각보다 크다.) “인터뷰 할 밴드인데 공연을 먼저 봐야겠다며 친분이 있던 레이블 대표님을 꼬셔갔다.


FF
의 평일 공연장 관객 수는 10여명 정도다. 그마저도 밴드의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티켓 값을 치르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한쪽 테이블에 몰려 앉아있는 멤버들을 봤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대 위에 오를 밴드가 아닌, 힙한 음악을 찾아 다니는 이태원 클럽 앞의 힙스터 친구들이라 착각이 들 법 했다. 홍대 앞 밴드 음악을 하는 이들의 기준에서 그들은 살짝 빗겨나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을 알지만 그들은 내 얼굴을 몰랐다. 인사도 않고 그들의 두 번째 공연 순서까지 기다렸다. (사실 공연 전 ' XX 에디터인데 공연 잘 하셔라' 하는 것만큼 재수없는 건 없다.)
그 날, 혁오의 공연은 아마 앞으로도 두고 두고, 오래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무대 위의 멤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앨범에선 찾을 수 없던 느낌이었다. 밴드 멤버 하나하나가 무대 위에서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였다. 특히 기타 치는 현제가 눈에 쏙 들어왔다. 지금도 내가 백 번 잘 한 일 중 하나가 그 날 혁오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간 것이라 생각한다. 공연을 직접 보지 않고 앨범만 듣고 인터뷰를 했다간 내가 놓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으리라.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인사를 건넸다. 작년 12월이었으니 꽤 추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며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바로 돌아오는 주말 이미 촬영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지만 그 날 라이브를 보고 난 느낌이 너무 좋아 인터뷰는 지금 곧장 하면 어떻겠냐 물었다. 질문지도 녹음기도 없던 상태에서 4명의 멤버들과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수다 떨 듯 인터뷰 했다.
<20>을 녹음했던 이들은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 혁오는 앨범이 발매되고 동건과 현제가 합류하며 제 모습을 갖춘 케이스다. 멤버 4명 모두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재미가 들린 갓 연애를 시작한 커플 같았다. 내가 앨범을 밍밍하게 들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라이브 공연을 보고서야 매력을 느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수많은 밴드를 듣고 보고 이야기 나누며 느낀 건 밴드라는 건 음악적 지분만큼이나 삶을 나눠야 한다는 것.
오혁은 대부분 혼자 음악을 해왔으나 밴드를 꿈꾸던 친구였다. 오랜 타국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느꼈을 자신의 소속감을경계로 유보하고 곡을 썼다. 중국에서 계속 있어도 됐을 것을 가족과 떨어져 혼자 한국에 건너와 대학을 다니며 음악을 하는 오혁이 밴드 멤버를 찾고 함께 음악을 하고 생활을 하고 놀고 하는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아니 멤버 각자에게 모두 ‘Home’을 찾는 과정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이 ‘Settle down’ 했다고 단정 짓기엔 시기상조다.


한국 인디 씬에조차 혁오는 철저히
‘Stranger’였다. 우선 소속 레이블이 이 동네도 아니었고, ‘헬로 루키같은 신인 등용 프로그램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공연장조차 겹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만큼 혁오 멤버들 또한 현재 씬에 대한 반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당시 멤버들의 반감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방어기제로 보였다. 양아치와 사기꾼이 많은 만큼 좋은 사람도 드물지만 분명 있다고, 인터뷰가 끝난 후 우리는 양꼬치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키웠다고 말하길 좋아하는 한국 인디 씬에서듣보잡같은 혁오는 경계부터 하고 봐야 하는 신인이었다. 그 사이 롤러코스터 같은 혁오의 라이브 공연 기복에, 나는 싫은 소리도 몇 번 했다. 젊음을 무기로 스타일을 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것으로 얻은 반짝거림이 오래 가지도 않는다는 것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혁오가 스타일이 좋은 만큼 코어도 있는 밴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사이 혁오의 인지도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조금 과하다 싶은 장면들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엄마가 아니니까)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스스로에게 지우며, 괜히 조바심도 냈고 속상해도 했다.


아마 그건 내가 혁오의 반짝거리는 처음을 목격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일 거다
. 물론 내가 유일한 목격자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고 수완이 늘고 요령이 생기면서 동시에 두터워진 나의 권태로움을 리프레시하게 해준 친구들이기도 하고. 이들 덕에어린 건 미성숙하다라고 치부하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맞닥트릴 수 있기도 했으니까.
혁오의 두 번째 EP <22>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잠깐 본 공연으로 나는 안심이 됐다. 내가 혁오를 처음 만난 이후 반년이 지난 사이 오혁과 현제, 동건, 인우는 음악적 지분뿐 아니라 삶 역시 나눠왔다. 세상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그들의 연주에서, 모습에서, 기운에서 느껴진다는 건 혁오가 앞으로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서로 부대끼며 생기는 에너지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어떻게든 무언가로 만들어지게 되니까.

4명의 청춘이 한 공간에서 같이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양꼬치 먹고 싸우고 놀고 합주하는 시간 동안 한 겹씩 한 겹씩 미세하게 쌓인 그 시간이 새로운 앨범 <22>로 나왔다. 나는 그들의 시간을 듣고 있는 셈이다. <20>이 프런트맨 오혁의모노로그였다면 <22>는 밴드 혁오의다이얼로그.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넘치는 건 시간뿐이다.

[원문보기]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