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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은 왜 지옥철이 되었나?

  • 입력 2015.04.16 16:29
  • 기자명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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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9호선 2차 구간 연장 개통식이 있었다. 신논현역에서 허리가 덜렁 잘려 버린 9호선이 이제 종합운동장까지 연장이 된 것이다<각주1>. 9호선 2차구간 개통으로 이제 김포공항에서 삼성동, 종합운동장까지 환승을 하지 않고 한 번에 편하게(그리고 빠르게) 갈 수 있다. 계획에서 시공, 완공까지 보통 10년이 넘게 걸리는 지하철의 특성상, 철덕의 입장에선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는 노선을 볼 때마다 마치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할 때 새로운 놀이기구가 하나씩 추가되는 것을 보는듯한 짜릿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서울시민은 대체로 이번 9호선 2차 구간 개통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개통을 하기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뒤덮었고, 개통을 한 지금은 시민들의 분노와 짜증이 한가득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원래 서울을 비롯한 모든 수도권 광역철도를 통틀어 가장 사람이 많은 ‘악마의 구간’은 2호선과 1호선 경인선 구간이었다. 전철 노선이 많이 생겨 사람들이 분산되기 전,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신도림역에는 사람들을 전철에 구겨 넣어주는 ‘푸쉬맨’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복합 중심지로 떠오른 강남 구간(강남, 잠실, 역삼 등), 신흥 번화가인 홍대입구 등 2호선을 중심으로 혼잡한 역, 붐비는 구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9호선이 개통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9호선이 주거 밀집지역인 강서, 목동에서 여의도-노량진-강남대로(신논현) 등 업무지구 및 최대 번화가를 연결하는 노선인 탓에 승객 수가 애초 예측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2014년 기준 하루에 약 40만 명이 9호선을 이용하고, 일부 역은 출근시간 승하차 인원수만 10만 명을 넘긴다.<각주 2>상황이 이런데, 9호선은 수도권 중전철 중 가장 짧은 4량(네 칸)의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1~4호선이 10량, 5~8호선이 8량을 운행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4량은 짧아도 너~무 짧다. 거기에다 열차 수 자체도 적은 편이어서 배차간격 또한 길다.
많은 이용객 수, 4량 열차, 그리고 적은 열차 수를 더하면? 답은 ‘노답’이다. 상식적으로 전철이 많이 건설되면 이용객이 분산되어 혼잡도가 낮아져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9호선의 혼잡도는 하늘을 찌른다.

혼잡도 234%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매체에서 ‘가양-여의도 구간의 최고 혼잡도가 약 234%’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급행 열차 기준). 여기서 정확히 혼잡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아 그냥 사람이 조낸 많다는 거구나’ 하고 넘긴 분이 많을 것이다. 전철 혼잡도는 한 칸에 160명이 타고 있는 상황을 100%로 잡고 계산한다. 한 칸에 160명은 어느 정도일까. 서 있는 사람 없이 모든 의자가 전부 차게 되면 한 칸에 54명이 타고 있는 것이다(중전철 기준). 즉 한 칸에 160명이 타고 있다는 것은 100여 명의 인원이 한 칸 안에 몸을 부비고 서 있는 상황을 뜻한다. 그렇다면 234%는? 그렇다. 한 칸에 370명이 넘는 인원이 타고 있고, 그 중에 320명이 서 있는 상황이다.


딱 이런 상태

삼백 이십 명이라. 요즘 학교에서 한 학급의 인원수가 30명 수준이라고 하니, 혼잡도 234%의 상황은 1반부터 11반까지 있는 학교의 전교생이 열차 한 칸 안에 타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심지어, 이것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만 계산했을 때이다. 출퇴근 시간이니, 이 중 절반 이상이 가방 등 짐을 들고(혹은 메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이 오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우선, 조금이나마 자리를 줄이고자(혹은 오해를 살 수 있는 접촉을 줄이고자) 손은 풋쳐핸접. 귀에 와닿는 옆사람의 숨결이 거슬려 고개를 돌려 보았다간 자칫 처음 보는 사람과 입술박치기를 할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발은 밟히지 않는다. 전철이 아무리 요동쳐도 사방에 버티고 있는 인간 벽에 발을 헛디디기는커녕, 흔들리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손이 얼굴 근처에 와 있으니, 손에 든 스마트폰을 보면서 이 지루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해 보지만, 제대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손의 각도를 틀어 휴대전화 화면을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콩나물 시루에서 꼼지락거리다 자칫 이 블링블링 신상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떡할 것인가. 가뜩이나 좁은 어깨(…)도 이 곳에서는 태평양같이 느껴져 몸을 빼빼로처럼 세로로 길게 말고 있는데, 허리를 굽혀 스마트폰을 줍는다는 것은 9호선 전철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만약 출근길 9호선에서 스마트폰을 놓쳤다면, 그냥 머릿속으로 빠르게 남은 할부개월수와 잔여금을 계산하고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새 폰을 구입할 생각을 하고, 떠나간 님에게는 명복을 빌어주면 된다.


웃을 일이 아니다. 혼잡도가 240%를 넘어가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열차를 증량하고, 열차 대수를 늘리면 된다. 그런데 왜 9호선은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을 놓고 적은 열차 칸과 적은 열차 수를 고집하는 것일까.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지하철 9호선'
그 1차적 원인은 IMF 사태에 있다. 70~80년대부터 건설된 1~4호선(일명 1기 지하철)은 도시의 큰 축을 만들었고, 전철의 혜택에서 살짝 빗겨난 음영(陰影)지역을 커버하기 위해 5~8호선(일명 2기 지하철)을 만들었다.<각주 3>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음영지역의 주민의 편의를 위해 90년대 중반 서울시에서는 3기 지하철의 건설 계획을 세웠다. 강동과 강서를 잇는 9호선, 석수에서 영등포, 도심을 거쳐 청량리와 사가정역으로 가는 10호선, 목동-서대문-도심-강남대로를 잇는 11호선, 우이동과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각각 출발해 미아에서 만나 왕십리에서 분당선과 직결되는 Y자의 12호선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97년 말 터진 IMF사태로 9호선을 제외한 3기 지하철은 모두 건설이 취소되었다(자신의 집 앞에 전철이 건설될 뻔했던 수많은 철덕들의 통곡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각주 4>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상급 철덕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9호선은 살아남았다. 대신 경제 상황이 상황인지라 많은 돈을 들여 전철을 건설할 수는 없었으므로, 승강장 길이과 열차 편성을 줄이고 민자에 운영을 넘기는 형식으로 돈을 아껴 건설하기 시작했다.<각주5>
이 과정에서 9호선 예상 이용객 수가 급감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애초에 9호선 일일 이용객 수는 2014년 기준 38만 명, 이후 최대 7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최종 제출한 기획안에는 2014년 기준 일일 이용객이 약 24만 명으로 예측되었다(그리고 2014년 집계를 살펴보면 일일 이용객 수는 애초 예측했던 38만 명과 흡사하다).
예상 이용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건설 비용이 줄어든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전철의 경쟁력이 그닥 뛰어나지 않다는 말일 수도 있다. 때문에 9호선은 서울 지하철 중 최초로 급행열차를 도입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민자 운영사의 이익을 위해 승강장의 길이와 열차의 길이를 줄이고, 크고 아름다운 역사에는 음식점, 편의점 등 다양한 가게를 집어넣었다.
종합하자면, 9호선은 적은 열차 수와 작은 열차 규모로 인한 짧은 승강장과 넓은 배차간격, 하지만 역에 갖가지 수익 시설을 갖춘 기형적인 노선이 되어 버렸다.
막상 시공 후 9호선이 개통하자, (위 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9호선은 점차 헬게이트로 변해갔다. 혼잡도는 점점 커져 아까 본 234%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찍었고, 곳곳에서 분노에 찬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 측에서는 2012년에 추가 열차 도입분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기획재정부에 의해 기각당했다. 올해 2차구간 개통 전후로 서울시와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서울시는 부랴부랴 추가 열차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앞으로 최소 1년 반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애초에 승강장을 최대 8량으로 제작한 탓에 10량짜리 열차를 도입할(돈도 없지만) 수도 없다.<각주6> 공항철도의 남는 열차를 투입한다는 떡밥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시행될 것 같진 않고, 시행된다 하더라도 그리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아직 끝이 아니다. 9호선은 오륜동까지 연장될 계획이다

누구 하나의 탓이 아니다. 90년대의 경제 상황, 수요 예측에서의 무리한 끼워맞추기식 규모 감축,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올 때까지 방관하던 담당기관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으니 갑갑한 마음뿐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 9호선 전 구간이 완공되었을 때쯤엔 지옥철, 황금똥라인 9호선이 아닌 진짜 ‘황금’라인 9호선이 되었으면 한다.
뱀발
이렇게 넘쳐나는 수요에도, 대중교통의 특성상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맥쿼리는 요금 인상을 주장하다 결국 영업을 포기했다. 대중교통, 특히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철도의 경우 이걸로 돈을 벌 생각보다는 정부 주도로 국민의 복지 향상 차원에서 건설하는 것이 맞다. 사실이 이럼에도 굳이 이윤 창출을 내걸고 코레일 자회사를 세워 수서발 KTX를 운영하고, 멀쩡히 있는 회사를 서울로 옮겨 400억짜리 건물을 짓겠다는 마인드도 참…

각주
<각주 1>
애초에 9호선은 강동에서 강서를 잇는 노선으로 설계되었다. 종합운동장에서 강동을 잇는 구간은 일단 내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하지만 과연 내년에 제대로 개통이 될까..?
<각주 2>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치냐면, 9호선 개통 전 최대 이용객 수를 자랑하던 강남, 역삼, 잠실역의 당시 하루 이용객 수가 10만 명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9호선 2차구간 개통 직전 여의도역의 오전 7~9시에 하차 인원은 17만 명을 넘었다.
<각주 3>
그래서 5~8호선은 번화가나 인구밀집지역 뿐 아니라 조금 인적이 드문 동네나 골목길 등에도 많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주 4>
10호선은 신안산선 및 경전철 면목선으로, 11호선은 신분당선과 경전철 목동선(및 서부선의 일부), 12호선은 경전철 우이-신설선 및 경전철 동북선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각주 5>
그런데 이 민자회사인 맥쿼리가 당시 서울시장이던 2모씨의 조카가 운영하는 회사인 점, 결국 9호선 운영을 포기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국비 지출 절감을 위해 민자에 넘겼다는 말은… 에이 설마. 공정성으로 추앙받는 그 분께서 그런 일을 하셨을까? 이거 다 썰입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각주 6>
승강장 자체는 8량 기준으로 제작되어 있다. 하지만 9호선 측은 개통 당시 ‘4량을 기준으로 운행하고, 추후 수요 증가시 6량으로 증차한다’라고 발표했다. 이에 감사원은 얼마 전 ‘9호선 남은 3차 구간은 애초에 6량으로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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