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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종교인 과세 미수 사건 일지

  • 입력 2014.12.19 16:35
  • 기자명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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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건국 이래 46년 동안 납세의 의무가 면제된 집단이 있다. 종교인들이다. 지난 2014년 마지막 정기국회에서도 종교인 과세 입법안은 표결에 부쳐지지 못했다. 수많은 언론들이 일제히 종교계를 나무라고 표를 의식해 몸을 사린 정치인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 몇 가지 혼동되는 점들이 있다. 법 개정안이 통과가 되어야만 종교인 과세가 이루어지는 걸까?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부는 각각 어떤 입장일까? 지금 나온 개정안이 통과되면 부자 성직자들은 세금 왕창 내게 되고, 가난한 성직자들은 세금 때문에 힘들어질까? 대체 종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논리로 과세에 반대하고 나서는 걸까?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의 편린으로는 알기 힘든 정치권의 종교인 과세 미수 사건을 천천히 다시 짚어보자.



박근혜 정부 ‘종교인도 세금 내는 걸로’ → 시행령 개정

박근혜 정부는 이미 국회의 의결 없이도 2013년 11월 5일에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종교인 과세를 입법화했다. 46년 동안 소득세법 안에 성직자가 종교 관련 활동을 하고 받는 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통칭 종교인 소득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종류의 돈은 아예 소득세법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이제부터 그러한 소득은 소득세법 12조 1항 ‘기타소득’ 카테고리의 17호 ‘사례금’에 속한다고 명시해 놓은 것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소득이 발생하면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면에서 성직자와 다른 국민들은 평등해진다. 큰 틀에서의 종교인 과세가 실현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를 통해 성직자가 받는 돈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과 똑같이 산정되고 똑같은 과세표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는 근로 계약을 통해 임금을 받지도, 사업 법인을 통해 이익을 발생시키지도 않기 때문에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도 이를 고려해서 성직자들의 사정을 많이 봐줬다.

‘기타소득’의 세액 산정과 납세 방식은 대통령 시행령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그것도 한큐에 시행령을 통해 개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정한 종교인 과세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성직자가 종교 활동의 대가로 받는 돈의 80%는 필요경비로 소득에서 제한다.
• 실제로 받은 돈의 80% 이상을 필요경비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초과 금액도
소득에서 제한다.
• 나머지 금액을 소득으로 산정해 그 중의 20%를 원천징수한다.

결국 받은 돈의 80%를 소득공제 해주겠다는 거다. 이렇게 소득금액을 산출했을 경우 전국 종교인의 80%가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의 소득 수준에 포함된다. 나머지 20%의 고액연봉(?) 성직자들도 계산해 보면 결국 소득의 4%만 세금으로 낸다. 종합해 보면 정부안은 종교인들에게 실제로 세금을 걷겠다는 의지라고 보기는 힘들다. 방점은 그들도 세금 시스템에 포함되는 것에 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 개세주의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 영세 종교인들을 가난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부작용도 없다.



정부 ‘혜택 더 줄 테니 법 개정도 해주세요’ → 법 개정안 국회 제출

하지만 시행령에만 종교인이 받는 돈이 언급되었을 뿐 여전히 모법인 소득세법에는 종교인의 납세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정부는 2014년 2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놨다. 그런데 46년 동안 존재했던 19번의 국회 중 그 어떤 국회도 종교인 과세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시행령보다 좀 더 ‘당근’을 많이 추가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 시행령의 원천징수 조항을 삭제하고 자진신고, 납부로 바꾸겠다.
• 세무조사도 안 하겠다.
•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복지제도인 근로소득 장려세제(EITC)에 성직자도
포함시켜 주겠다.

세금을 걷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주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 개신교 교회만 7만 8천 개다. 거의 다 영세한 곳이다. 여기에 소속된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오히려 영세 근로자에 포함되어 복지제도의 수혜자로 돈을 받게 된다. 기재부는 이 개정안대로 종교인 과세를 시행했을 때 약 800억의 정부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소득 계산을 제대로 하는지도 확인하지 않겠다고 한다. 알아서 낼 만큼 내라는 거다.



납세자의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종교계의 반발은 심하다. 아니, 개신교의 반발이 심하다고 해야겠다. 천주교 주교회는 1994년부터 세금 납부를 천명했으며, 조계종도 종교인 과세에 공식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국회 ‘안 돼, 해 줄 생각 없어 돌아가’ → 연내 법 개정 실패

정부가 이토록 봐주고 봐준 개정안마저도 2014년 12월 정기국회를 통과되지 못했다. 말하나마나 개신교의 반발 때문이다. 이 정도면 속세의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세제 혜택인 거 같은데, 과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땅을 믿으시는 분들이라서 근로소득 장려세제(EITC)까짓 것은 마음에 차지 않으셨던 것일까.

11월 24일 국회에서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일부 개신교 종파는 ‘종교 탄압이다. 여론이 심판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며 격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아무리 돈 많이 받는 성직자도 4%만 세금을 내고, 가난한 성직자들에게는 심지어 돈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종교 탄압이라니 비종교인 입장에서는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여기도 나름대로 종교 내적인 논리가 존재하긴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글의 말미에서 다루겠다.)



이상한 점은 2월부터 국회를 떠돌고 있는 이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는 편이 종교계에 더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이 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2015년 1월 1일부터 2013년 11월에 개정된 대통령 시행령이 자동으로 발효된다. 즉, 전체 20%에 달하는 종교인 소득의 4%가 원천징수되며, 세무조사도 가능하고, 가난한 성직자는 세금이야 안 내겠지만 근로소득 장려세제(EITC)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근로장려금은 받을 수 없다. 그래 봤자 근로소득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종교인의 특수성을 많이 고려해줬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성직자로서는 개정된 소득세법이 통과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다고 순순히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을 개신교가 아니다. 그들은 아예 시행령까지 무산시킬 정도로 반발했다. 동원 가능한 신도 수가 아주 많은 만큼 정치적인 협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 “종교인 자존심 건드리지 마라”,
새누리 “시행령도 2년만 유예하자” ← 지금 여기


국회에는 이러한 협박이 아주 잘 통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동 발효가 종교인의 거센 반발을 부른 ‘소통 없고 일방적인’ 방식이라는 정부 규탄 목소리가 나왔다. 소통, 니들이 한국에서 고생이 많다.

평소 선명 야당, 대안 야당을 외쳐 온 새정치민주연합은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만큼은 선명치도 않고 대안도 없다. 조세 관련 법안을 담당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새정치민주연합 간사 홍종학 의원의 의견은 이렇다.

강지원: 종교인 과세 문제도 이제 아주 뜨거운 감자인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홍종학: 종교인 과세는 저희 당에서는 원래부터요. 이것은 종교인들의 직업적인 특수성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를 해서 이것이 사실 과세액은 크지 않거든요. 과세액도 크지 않은데 종교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느냐, 종교인들과의 소통을 강조해 왔고요. 그런 면에서 정부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아직 부족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정부 여당에서 상당히 꺼리고 있어서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YTN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2014. 11. 28.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일단 자기들은 종교인 편이라는 주장인 것 같다. 정부 여당은 종교인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꺼리고 있다’고 한다. 종교인 과세를 꺼린다는 건지, 종교인의 입장을 안 받아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여당은 몰라도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꺼린다는 건 사실이 아니고, 종교인의 입장을 안 받아준다는 것도 위에 나열한 세법개정안의 ‘특혜’를 보면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어쨌든 야당은 종교인 과세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새누리당도 미묘하긴 마찬가지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어떻게 할 수 있나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결국 정기국회 세법개정안 여야 합의 당시 종교인 과세는 빠졌다. 정부가 추진하는데도 여당이 발목을 잡다니, 아주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술 더 떠서 지난 10일에는 의원총회를 거쳐 이미 시행예정이 되어 있는 2013년 11월 대통령령 시행령 개정의 발표를 2년 더 유예해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원래 2015년 1월 1일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될 예정인 것을 2017년 1월 1일로 미뤄달라는 것이다. 2017년엔 뭐가 있다? 그렇다. 국회의원 총선이다.

아마 그때가 되면 국회를 향한 개신교의 협박이 지금보다 더 잘 먹힐 가능성이 높다. 시행령을 무산시키는 내용의 입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킬지도 모른다. 결론은 하지 말자는 거나 다름이 없다. 아직 박근혜 정부는 이 요청에 대한 응답을 하지 않았다. 만일 정부가 유예를 받아들이면 종교인 과세는 지금으로부터 또 46년이 미뤄질지도 모른다.

상황은 여기까지 왔다. 나는 딱히 어떤 신을 믿지 않는 입장에서 일련의 과정을 보며 참을 수 없이 궁금한 게 있었다. 보시다시피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는 개신교들에게 파격적인 소득공제나 적은 세율, 장려세제금은 효과가 없다. 그들에게는 대안도 없다. 그냥 과세 자체를 하지 말라는 거다. 과세=탄압이다. 세법개정안에 성직자 자체를 넣지 말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제1야당은 ‘종교인의 자존심’을 운운한다. 대체 세금과 종교인의 자존심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세금을 내면 종교인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싶다



예수가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친구 중에서 가장 독실한 개신교인에게 종교인 과세 반대 논리를 물었다. 답변은 뜻밖이었다. “일부 종파나 목사들은 성경에 세금을 내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구절은 마가복음 12장 17절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막 12:17)

가이사란 카이사르의 한자 음독 번역으로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뜻한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이를 두고 일부 개신교 목사는 하나님의 종은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논리로 해석한다고 한다. 목사는 개신교에서 예수를 대신해 신도를 하나님에게 인도하는 매개적인 존재다. 그러니 당연히 ‘가이사의 것’에는 관련이 없고, ‘가이사의 법’에 따라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며,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장려금을 준다니 더더욱 어불성설이라는 논리다.

그러므로 세금을 안 내는 이유는 목사들이 가난해서, 고정 수입이 없어서, 그나마 신도들이 챙겨준 돈은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봉사와 적선에 다 써버려서가 아니라, 그냥 종교적인 이유다. 예수님이 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따르며 사는 종교 지도자로서 절대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금을 내라는 말이 종교 탄압이 된다. 개신교인 정보원에 따르면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는 목사가 “이 법이 통과되면 나와 다른 목사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교회에 나올 수도 삶을 영위할 수도 없다.”라며 신도들에게 호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대신 “이것은 정치의 종교 탄압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나는 절대 세금을 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이다.”라며 분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도들에게만큼은 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할 것 같은, 그야말로 ‘종교적인 메시지’이다. 정치인들이 벌벌 떠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정말로 저 성경 구절이 그런 뜻일까요...?


하지만 개신교 안에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이 구절을 이유로 세금을 내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비껴간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목사도 있다. 삼일교회의 송태근 담임목사는 2014년 11월 2일 주일저녁예배 설교에서 마가복음 12장의 17절만을 뚝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 그리고 시대적 맥락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마가복음 12장의 13절에서 17절은 다음과 같다.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당시 로마의 정식 화폐 데나리온의 한 면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면에는 ‘카이사르, 신의 아들’이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당시 로마에서 황제는 신과 다르지 않았다. 데나리온으로 세금을 낸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우상 숭배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발표하기 313년 전이었다.


로마 화폐 데나리온. 참고로 성전에서 헌금에 쓰이는 화폐는 ‘세겔’이라고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의 설교를 방해하러 찾아 온 바리새인과 헤롯의 추종자가 ‘카이사르에게 데나리온으로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어 본 것이다. 세금을 낸다는 것은 카이사르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는 일상생활의 우상 숭배가 되는데, 세금을 내지 않으면 범죄가 되는 딜레마를 제시함으로써 예수를 시험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자 예수는 데나리온에 누구의 얼굴이 그려져 있냐고 묻는다. 그들이 카이사르의 얼굴이라고 답하자,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한 것이다.

왜 얼굴을 언급했을까? 송태근 목사는 여기에 핵심 메시지가 있다고 말한다. 예수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즉 카이사르의 얼굴이 그려진 동전을 카이사르에게 바치듯이 하나님의 얼굴을 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로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창세기에 명시된 내용이다. 결국 예수가 이 장면에서 하고 싶은 말은 카이사르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카이사르에게 바치듯이 하나님의 얼굴을 닮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이 제시한 딜레마에 대한 예수의 답이 ‘그럼 세금을 내지 말아야지’라는 내용이라면 별로 크게 놀랄 것도 없다. 너 그럼 잡혀간단다, 하고 놀려 먹거나 여기 탈세자가 있다고 신고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예수는 문답 방식을 영리하게 사용해 세금이 우상숭배냐 아니냐 같은 사소한 문제보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꿋꿋하게 복음의 핵심을 전했고, 그들은 예수의 똑똑함과 달변을 놀랍게 여겼다.

성경의 한 구절만 보지 않고, 전체 대화의 흐름이나 내용을 독해하면 분명 송태근 담임목사의 해석은 일리가 있다. 적어도 12장 17절 한 문장만 들고 ‘여기 예수가 세금 내지 말라고 했다’고 우기는 일부 개신교도들의 논리보다는 훨씬 납득이 가고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다운 내용이다. 보다 자세한 설교 내용은 설교 공유 애플리케이션 ‘말씀모아’에서 삼일교회 11월 2일 주일저녁예배 설교 ‘형상과 글’이라는 음성파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세금이 중요한 이유는 헌법에 의무라고 적혀 있어서가 아니다. 세금은 ‘사회’라는 것을 구성, 유지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체다. 세금을 걷는 방식은 그 사회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봉건제 국가에서 그것은 신분제에 의한 수탈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 모두가 세금을 내며, 조세 정의 실현을 통해 경제적 강자는 양보하고 약자는 보호받는다. 내가 세금을 낸다고 해서 바로 나한테 쓰이지는 않는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쓰이고,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먼저 쓰인다. 물론 사업성이 불지옥 같은 자원외교에 쓰여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아무튼, 세금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정의로움을 실현하는 시스템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읍시다

물론 종교인들은 세속적인 정의보다 하나님의 정의에 더욱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면 가난한 이웃과 더 많이 나누고, 조금씩 돈을 모아 공동의 큰 문제를 해결하자는 세금 시스템의 개념이 하나님의 정의에 크게 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요즘 세상은 세종대왕, 신사임당이 통치하는 건 아니라서 나라 살림에 돈 좀 보탰다고 우상숭배가 되지도 않는다. 엉터리 같은 아전인수식 성경 구절의 오독으로 국가 공동체의 일원이기를 거부하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을 되새기면서, 종교인들도 이제는 납세자 동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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