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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한국의 문화산업을 먹여 살린다면서요?

  • 입력 2016.09.21 13:28
  • 수정 2016.11.15 15:27
  • 기자명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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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페스티벌이 격하게 늘어난 것은 2007년 즈음이다. 그전까지 한국에서 ‘페스티벌’의 지속가능성은 비관적이다 못해 체념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지만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99년에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던 '트라이포트록 페스티벌'의 불씨를 지피며 2007년 '서울 재즈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로 이어졌다. 그리고 알다시피 2009년부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글로벌 개더링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슈퍼소닉 페스티벌', '울트라뮤직 페스티벌' 등이 매년 열리며 한 해에만 5~6개의 국제적인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게 되었다.

이때 페스티벌의 주요 관객층도 중요해진다. 음악 페스티벌이 아니더라도 이미 공연장이나 극장에서 체감하고 있듯 한국 문화 시장의 주요 구매자들은 20~30대 여성들이다. 2014년,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공연 관객층은 20~30대 여성이 90%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이유가 뭘까?

정확한 근거는 찾기 힘들지만 문화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대체로 여성 수용자들은 남성 수용자들과 ‘대상’에 대해 다르게 접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연구결과를 보면 여성들은 스타(혹은 음악가)와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는 반면 남성들은 그가 속한 팬덤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남성 팬들이 음반과 포스터를 수집하고 밴드의 계보를 외우는 동안 여성 팬들은 밴드의 공연을 보고 무대 뒤에서 그들을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 대상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소비의 차이로 이어지는데 21세기의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14 포스터


재미있는 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상징성이다. 2007년에 열린 이 페스티벌은 거의 국내 음악가로만 라인업을 구성한 최초의 페스티벌이었는데, 낭만적인 멜로디가 강조된 ‘홍대 앞 인디 음악’을 필두로 올림픽 공원에서 소풍가듯 공연장에 오는 여성 관객들을 정면으로 겨냥해 성공한 페스티벌이었다. 하지만 2007년 전에도 이미 이런 경향은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단지 음악에만 국한된 흐름이 아닌 2000년 이후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한 맥락에서 살펴볼 문제일 것이다.

요컨대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 우지원, 문경은,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하던 10대 소녀들과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 적극적이던 20대 여성들은 같은 맥락에 있으며, 이들이 온몸으로 체화한 경험은 세대를 넘어 자연스럽게 2007년 이후 공연문화 소비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연관해서 2009년 이후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새삼스럽다. 오지은, 시와, 흐른 등을 비롯해서 요조나 한희정, 옥상달빛, 제이래빗 같은 여자 가수들이 주목받은 데에는 여성 팬들의 공감과 지지가 한몫했다. 90년대에 히트한 여자 가수들이 재평가받은 것도 이 즈음이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백지영을 비롯해 유진, 바다, 옥주연, 성유리, 간미연, 심은진 등이 솔로 가수나 뮤지컬 배우, 연기자로 활동하며 90년대보다 더 편안한, 다시 말해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과 소통하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했던 것도 시사적이다. 최근 이효리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관심 역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문화예술의 주요 소비자로 부각될 뿐 아니라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여자 가수와 엔터테이너들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70년대 영어권 대중음악 시장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자 가수들이 예쁘장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진 것과 같은 맥락에서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되짚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비와 유행에 민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여성들은 그저 수동적이고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에 나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전 세기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욕망과 모순을 드러내는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남성적으로 구조화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여성들이 생산과 소비에 있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점이 여성을 양분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 가수들은 여성 팬뿐 아니라 남성 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을 수도 있고 여성 팬은 여자가수 외에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 음악가를 좋아할 수도 있다. 그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중요한 건 여자들이 생산자든 소비자든, 이해하기 쉬운 존재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 안에서 이렇게 다소 복잡한 내면을 기꺼이 드러내고 서로의 손을 꽉 맞잡는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자매애(sisterhood)’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산업과 시장을 통틀어 음악계 전반에서 여성들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돈을 더 많이 쓰면서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다는 따위가 아닌 바로 이토록 유기적으로 밀착된 관계성 때문이어야 한다. 나로서는 이렇게 노래를 만들고, 또한 노래를 소비하는 이 멋진 여자들의 미래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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