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위대한 왕의 운명 등 거시적인 사건에 집중하는 역사가는 몸니(머릿니와 다르게 몸에 사는 이)와 같이 아주 작고 짧은 삶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최소한 몸니(Pediculus Humanus Corporis)는 중세 유럽의 힘의 균형과 영국의 종교미래에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로버트 훅의 마이크로그라피아에 그려진 이. 1655년에 출간된 이 책에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많은 생물과 무생물을 정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실제 그림은 크리스토퍼 렌이 그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오랜 원정기간 동안 개인위생은 도저히 신경쓸 수 없기 때
1893년 1월 16일, 호놀룰루(Honolulu) 만에 정박해 있던 무장순양함 보스턴에서 163명의 미 해병과 선원이 상륙했다. 대열을 갖추고 아이올라니(Iolani) 궁을 지나면서 2층 베란다에 서 있는 하와이 여왕에게 경례했다.이 부대는 개틀링(Gatling) 기관총과 야포까지 갖춰 3곳에 자리 잡았다. 미 영사관 정문에 경비 한 명, 대사관저에 경비 40명을 경배치하고 나머지 병력은 무력시위 후에 몰몬(Mormon) 예배당으로 사용 중이던 아리온(Arion) 홀에 들어갔다. 아이롤라니 궁 바로 반대편이었다.아이올라니 궁병사들
‘화학자 전쟁’이 된 1차대전1차대전은 화학자의 전쟁이라 불린다. 거의 모든 분야의 화학자가 기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화학물질 생산이 없었다면 1차대전과 같은 대량살상과 파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시간문제였지만 말이다.독일군과 연합군은 1차대전 교전 시간 내내 서로에게 고폭탄, 화학 가스, 소이탄과 같은 화학물질을 쏘는 데 소비했다. 이런 화학물질을 쏘려면 또 다른 화학물질인 추진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 추진제를 점화하려면 총이나 포를 쏠 때 점화되는 일차 화약이 필수였다.화학물질은 살상용으로만 쓰이지 않
전사에 길이 남을 영웅과 조롱을 받는 패배자는 전술적 실수로 결정된다. Stephen Wilkinson, 2007.만약 야마모토 제독이 미드웨이에서 항공모함 갑판에 연료를 가득 채운 전투기를 대기시켜 놓지 않았다면 2차대전에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흘렀을지 한번 상상해보자. 히틀러가 베를린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런던을 포격하지 않고 계속 영국공군 기지를 공격했다면?일개 부족이든 아니면 세계최강의 국가이든 전쟁터에서 저지른 잠깐의 실수로 그동안 쌓아 올린 명예를 잃거나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일을 틀어버릴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
왕이 되고자 한 사나이158cm에 55kg. 갸날픈 뼈대, 듬성듬성한 머리칼을 한 그는 누가 봐도 약골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윌리암 워커(William Walker), 1824 ~ 1860.1824년 네쉬빌에서 태어난 윌리암 워커, 그는 천재였다. 14살에 네쉬빌 대학을 수석졸업한 후에 하인델베르크, 에딘버러와 파리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19살의 나이에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의사학위를 땄다. 워커는 필라델피아에서 개원을 했지만 바로 싫증을 느낀 뒤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금방 질려 했다. 한 곳에서 한
2002년 3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할 시기에 캐나다 저격수가 2,430미터 거리에서 알 카에다 병사를 저격하는 일이 있었다. 베트남전에서의 2,250미터 저격을 깬 기록이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캐나다 저격수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은 반면에, 베트남전의 저격수 카를로스 해스콕은 대단한 유명세를 누렸었다.카를로스 해스콕해스콕은 북베트남 장성을 4일 동안이나 노린 적이 있었다. 그는 뱀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는 적의 저격수와 맞대결을 벌인 적도 있었는데, 조준경이 반사되는 것만을 보고 처치하
16~17세기 러시아 여성의 잔혹사 전형적인 러시아 여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 피에는 슬라브, 타타르, 발트와 다른 민족의 피가 섞여 있다. 아마도 러시아 여성은 밝은 밤색 머리와 소녀나이를 지나면 넉넉해지는 체구를 생각할 것이다. 러시아 남성이 가슴이 크고 건강한 여성을 좋아했던 이유도 있고 자연환경에 맞춰 체형이 그렇게 변한 이유도 있다. 베르사이유, 세인트 제임스와 호프부르크 궁전의 꽉 조인 코르셋 허리에 익숙한 유럽 방문객은 러시아 여성을 퍼졌다고 생각했다.러시아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길게
후방기습은 적의 후방에서 벌어지는 작전이기 때문에 가장 위험스러운 작전이다. 기습군이실패해서 체포된다면 처형당했지만 성공만 한다면 투입된 전력으로는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성공하지 못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1942년 8월, 프랑스 디에프(Dieppe)의 독일군 수비선을 기습한 연합군은 목적을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투입병력의 60%를 잃었고 1993년 10월의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일명 블랙 호크 다운)도 실패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1. 1945년 미 레인저스의 카바나투안
전쟁과 위대한 왕의 운명 등 거시적인 사건에 집중하는 역사가는 몸니(머릿니와 다르게 몸에 사는 이)와 같이 아주 작고 짧은 삶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최소한 몸니(Pediculus Humanus Corporis)는 중세 유럽의 힘의 균형과 영국의 종교미래에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로버트 훅의 마이크로그라피아에 그려진 이. 1655년에 출간된 이 책에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많은 생물과 무생물을 정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실제 그림은 크리스토퍼 렌이 그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오랜 원정기간 동안 개인위생은 도저히 신경쓸 수 없기 때
1934년 10월 16일, 중국 남동부의 장시성은 아름다운 달빛을 즐길 수 있었다.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 제1전선군Chinese Communist First Front Army의 남녀 86,859명은 그 달빛을 즐길 수 없었다. 달빛은 무방비 상태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머리 위에 나무가지로 얽은 위장막을 들고, 그들은 서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1전선군의 길게 늘어진 대열은 100km 넘게 들어졌고 본거기에서 머무는 동안 모아두었던 보급품을 운반하느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X레이 기계부터 인쇄기계까지 모든 것을 짊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향후 전쟁의 판도를 바꿀 네 가지 무기가 등장했다. 항공기, 전차, 기관총 그리고 잠수함이었다. 그중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도 크게 바뀐 것이 없을 정도로당시로선 첨단무기였다. 1918년의 항공기가 1940년대초반의 것과 비슷했다면, 미국 조종사는 F4F 와일드캣 대신에천을 씌운 개방형 복엽기를 타고 태평양 항공에서 일본기와 격전을 벌였을 것이다. 초기 잠수함은 수면 바로 아래에서 천천히 나아가는 배에 불과했다. ▲1620년 영국 템즈강에서 시험한 반 잠수함 1897년 아일랜드계 미국인 존 필립 홀랜드는
샤 알라 알딘 모하메드(Shah Ala al-din)는 사절을 죽이면 외교관습을 어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징기스 칸(Genghis Khan) 사절을 죽이는 것이 자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Kim Stubbs (Military History 2006년 5월 기사)1218년, 확장일로에 있던 징기스 칸의 몽골제국은 드디어 이슬람 세계(호라즘, Khwarezm)와 처음으로 접촉하게 된다. 호라즘왕국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투르메니스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중앙 아시아 대부분을 차
아프리카 소년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의 군 입대 연령은 18세, 혹은 21세부터이지만, 내전 국가에는 해당되지 않는 기준이다. 오늘도 수많은 아프리카 소년병이 대륙 곳곳에서 일회용 병력으로 강제징집되고 있다. 군벌은 이 아이들을 인간방패, 선전책동에 동원하고 있다.1. 말그대로 소년병은 미성년이다18살 미만의 소년이 아프리카대륙의 무장반란세력과 정부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8살부터 징집되는 경우도 있다. 소년병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약 20~30만 명의 소년병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아프리카 군대 수준
제가 항상 강조하듯이 역사는 진화하는 과학입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여기에 정리하는 이야기도 오늘은 사실이지만 내일 다른 증거가 발견되면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증거도 없는 상상 속의 주장이 사실처럼 호도되어서는 안됩니다. 충무공의 자살설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정황상의 주장일 뿐입니다. 저도 선조의 무능력에는 의견을 같이 하지만 선조의 성품과 충무공의 자살설을 연결시키는 것은 전사를 모르는 일부 작가들의 상상에 불과합니다.'충무공 자살설'을 가만 들여다보면 이러저러
브람 스토커의 흡혈귀 소설이 아니더라도, 블라드Vlad 3세 드라쿨라Dracula가 죽은 지 550년이 지났는데도 터키에서는 그를 악마와 동일시한다. 1462년, 드라쿨라 공작은 다뉴브강 계곡에서 전투를 마치고 후퇴하면서 역사상 가장 참혹한 ‘말뚝처형 숲(Forest of the impaled)’을 남겼다. 티르고비스테(Tirgoviste) 외곽에는 2만 명의 오스만 투르크 포로가 말뚝에 꿰뚫려 썩어가고 있었다.말뚝처형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서서히 맞이하는 잔인한 처형인데, 드라쿨라 공작은 처형장면을 지켜보고 비명과 신음소리를 즐기며
요즘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각종 커뮤니티에서 전쟁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는데 세대간 인식이 너무 다르더군요. 고령자가 많은 사이트에서는 북한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해 있고 중년층 사이트에서는 가족의 안녕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젊은 사이트에서는 (특히 군미필이) 미군을 믿고 철부지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F-22 4대가 왔다고 북한은 끝났다는 소리까지 하더군요.그래서 전쟁이 터지면 대부분의 철부지가 겪게 될 땅개의 비극을 알려주려고자 D-Day 당시의 참혹한 기억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랑스 코탕탱(
현대시각으로 보면 중세는 사람이 살 만한 시기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했고 질병에 시달렸고 귀족과 지주의 처분에 따라 생사가 갈렸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금을 내지 못하면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형벌에 처해지기도 했다.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문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권 개념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고문 방식이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고문받는 장면을 보기 위해 일부러 멀리서까지 찾아와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신체관통 : 날카로운 막대로 몸을 관통해 걸어두는 장치15세기에 주로 사용된 고
인류 최초의 핵실험 장면‘만약 그랬다면?’역사의 여러 장면에서 이런 가정을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끔찍한 가정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2차대전 나치 독일이 원자탄을 만들었다면'이라는 가정이 아닐까. 실제로 1945년 봄, 미국의 원자탄 개발이 절정에 달했을 때에 나치 역시 남부 독일의 한 동굴에서 원자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관련 과학자들이 원자탄 제작방법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과학자들이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독일은 방사능 물질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나치
몽골군은 유례없는 잔인함으로 유명했지만, 교활하고 정교한 전술도 유례 없이 훌륭했다. 1220년 어느 날, 카와라즈미안(Khawarazmian) 제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부카라(Bukhara)의 모스크에는 새로운 정복자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군중이 모여 들었다. 작은 말에서 내려 연단에 오른 전사는 처음 보는 이방인이었고, 그의 옷과 갑옷으로 보아 아주 먼 나라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종교지도자, 의사, 학자와 귀족들은 이방인 정복자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마침내, 통역이 전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당신들이 엄청난 죄를
편향된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화, 소설, 만화 등이 미치는 악영향은, 한 사람의 머리 속 깊숙히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특히 어릴 때일 수록 오해와 편견의 뿌리는 단단하게 자리를 잡으며, 스스로 진실을 알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사람의 머리 속은 오해와 편견의 덩쿨로 얽혀서 나중에는 진실을 가릴 여유가 없어집니다. 제가 어릴 때 볼 수 있는 영화, 소설, 만화라고는 전부 서양중심의 시각이어서 '북경의 55일'이나 '카르툼' 같은 작품들을 보면 서구 제국주의자들을 응원하며 원주민들을 원시인과 동일시하는 시각이 주를 이뤘습니다. 역사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