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기술] ⑪행동하는 구조, 시장을 이긴다
‘숫자 해석·구조 반복·시스템 적용’ 등 실전 투자자의 기술
| 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금리는 그 문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익숙한 개인에게 채권은 여전히 낯선 자산이다. 그러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채권부터 이해해야 한다.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박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다. 이 시리즈는 채권의 기초부터 실전 전략까지, 시장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우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
[직썰 / 안중열 기자] 채권은 수치보다 구조를, 예측보다 반복을 말하는 자산이다. 금리의 방향을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구조화된 전략을 시장 속에서 반복 가능한 행동으로 구현하는 일이다. 수익은 감각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은 실제 시장에서 전략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실전 사례와, 그 뒤에 깔린 트리거 시스템과 조건 기반 전략, 행동 구조를 집중적으로 해부한다.
◇전략은 예측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작동
2023년 말, A자산운용은 BBB+ 등급 회사채 펀드를 운용하며 금리 커브 평탄화,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 정부의 정책 개입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된 시점을 포착했다. 이들은 사전에 설계한 트리거 시스템에 따라 우량 크레딧채 비중을 60% 이상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연 4.6%의 수익률을 거뒀다.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던 B사는 정책 발표 이후에도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움직이지 못했고, 반등 타이밍을 놓쳤다. 승패는 예측이 아니라 시스템을 반복했는지 여부에서 갈렸다.
A운용이 적용한 전략은 세 가지 구조로 구성된다. 첫째, 조건 기반 트리거 시스템은 스프레드 180bp 이상, IR 공백 30일 이상, 유동비율 70% 이하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이 충족될 경우 해당 자산을 자동으로 ‘매도 검토’ 대상으로 분류한다. 둘째, 리밸런싱 루틴은 기준금리 발표 전후 2주를 기준으로 듀레이션 점검, 스프레드 추이, 정책 시그널 반영 여부 등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점검한다. 셋째, 정성·정량 정보 분류 체계는 기업의 IR 빈도, 텍스트 내 리스크 키워드 출현율, 산업별 정책 연계성을 계량화해 투자 등급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구조는 복잡하지만 판단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비정형 리스크 감지 구조가 사각지대 막는다
현실 시장에서는 전통적 신호로는 포착되지 않는 ‘비정형 리스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계열사 분할이나 매각 등 사업구조의 급변, 정부의 지원 발표와 달리 실제 유동성이 도달하지 않는 경우, 공식 IR이나 공시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 수익률은 정상이지만 유통 시장이 마비된 케이스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위험은 숫자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이 놓치는 사각지대를 만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C운용은 비정형 경보 트리거를 별도로 설계했다. IR과 스프레드가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거래량이 급감하고, 산업 내 동종 기업들의 공시가 동시에 사라지는 상황은 구조적 정보 공백으로 판단해 매수 보류 신호를 낸다. 이는 인간의 감각을 대신해 시스템이 ‘이상 징후’를 구조적으로 감지하는 방식이다. 오류를 줄이는 건 직감이 아니라, 예외를 감지할 수 있는 설계다.
◇회복 국면은 조건으로 선점
대다수 개인 투자자는 ‘바닥 확인’ 이후에야 움직이지만, 실제 전략은 회복의 조짐이 보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건 선제적 감수성보다 조건 기반의 회복 시그널 판독이다.
회복 선점형 전략이 작동하는 조건은 명확히 설정된다. 예를 들어, 스프레드가 4주 이상 연속해서 200bp에서 140bp, 다시 110bp로 축소되고, 기업의 IR 빈도와 함께 ‘회복’, ‘유동성 확보’, ‘재무개선’ 등의 키워드가 텍스트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동시에 거래량이 월평균 대비 80% 이상 회복되고, 정책 자금이 실질적으로 기업에 도달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고위험 채권에 대한 듀레이션 확대와 신용등급 하향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략적 진입이 가능해진다.
이 전략은 단발성 반응이 아니라, 사전에 정의된 조건이 충족될 때 반복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회복의 타이밍을 감으로 잡는 게 아니라, 구조가 작동하는 조건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조건이 실현될 때만 반응하는 방식이다.
◇개인 투자자도 시스템 만들 수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개인 투자자 박모씨는 채권형 ETF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며, 시스템 기반의 투자 전략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스프레드가 160bp 이상 확대되고, IR 공백이 20일 이상 지속되며, 산업 내 평균 듀레이션이 축소되는 시점에 해당 채권군에 대한 투자를 제한한다.
박씨의 리밸런싱 주기는 명확하다. 기준금리 발표 전후 2주, FOMC 종료 후 3일, 산업별 공시가 집중되는 기간 직후가 점검 타이밍이다. 그는 증권사 리서치, 전자공시시스템, 텍스트 기반 공시 요약 도구를 조합해 정보를 수집하고, 자산 구성은 단기 40%, 장기 30%, 중위험 회사채 30%로 분산된 바벨 구조를 유지한다. 환율 리스크 대응을 위해 달러표시 ETF와 환헤지형 펀드도 편입해 뒀다.
그는 “예측은 자꾸 틀릴 수 있지만 기준이 있으면 실수는 줄일 수 있다”며 “정기 점검 루틴이 내 실전 전략의 안전벨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시스템은 전문 운용사만의 영역이 아니다. 조건을 정의하고 반복 가능한 구조로 투자 전략을 구성한다면 개인도 ‘시장을 이기는 행동’을 설계할 수 있다.
◇전략은 설계에서 시작해 반복으로 완성
투자는 결국 예측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채권 시장은 수치에 반응하지 않고, 구조에 따라 움직인다. 수익은 감각의 산물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행동 시스템에서 나온다. 스프레드, 듀레이션, 신용, 금리는 단독 지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작동하는 조건의 조합이며, 이 조합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전략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시리즈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명확하다. 예측은 실패할 수 있지만, 구조는 작동한다. 구조를 설계한 투자자는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복귀할 수 있는 길을 가진다. 감정 대신 기준으로, 타이밍 대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투자자만이 반복되는 시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구조는 그 문법이다. 시장은 다시 오지만, 준비된 전략만이 다시 작동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각이 아니라 구조이며, 기다림이 아니라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