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기술] ⑨감각보다 ‘시스템’, 숫자보다 ‘구간’

“수익률에 속지 않고, 리스크를 읽는 구조화된 시선을 유지하라”

2025-07-02     안중열 기자
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금리는 그 문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익숙한 개인에게 채권은 여전히 낯선 자산이다. 그러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채권부터 이해해야 한다.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박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다. 이 시리즈는 채권의 기초부터 실전 전략까지, 시장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우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직썰 / 안중열 기자]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을 가장 먼저 짚어내는 직관적 도구다. 그러나 숫자에 매몰되면 구조를 읽지 못한다. 수익률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느 구간’에 와 있는지를 읽는 구조화된 시선이다.

◇구간 판단, 숫자 아닌 ‘맥락’ 읽어라

“수익률이 얼마인가요?”는 실전 질문이 아니다. “어디까지 떨어지면 위험한가요?”, “얼마까지 오르면 매도하나요?” 실전 투자자들이 묻는 질문은 대부분 특정 ‘숫자’에 고정돼 있다. 그러나 같은 수익률이라도 시장 구조 속 ‘위치’, 즉 구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령 회사채 수익률이 4.2%일 때, 기준금리가 5%인 상황과 3%인 상황은 전혀 다른 해석을 요구한다. 수익률은 목표가 아니라, 시장 구조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위치’를 읽는 해석 도구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 관계자는 “수익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매수 타이밍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역사적 스프레드 구간과 시장금리 위치를 함께 고려해야 리스크와 기회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복력 신호, 회귀 속도가 말해주는 신뢰

금리와 스프레드는 정적인 수치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움직이는 동적인 신호다. 특히 스프레드가 급등한 직후 얼마나 빠르게 정상 구간으로 복귀하는지는 시장 신뢰 회복의 핵심 척도가 된다.

2022년 PF 시장 위기 당시, 동일 등급의 BB+ 회사채를 발행한 두 기업의 회복 속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한 곳은 스프레드가 200bp에서 140bp로 축소되는 데 3개월이 걸렸고, 다른 곳은 같은 회복에 7개월 이상 소요됐다. 수익률은 비슷했지만 회복 속도는 유동성과 신뢰 회복력을 보여주는 선행지표가 됐다.

◇트리거 설계, 숫자·조건 조합으로 리스크 판별하라

실전 채권 투자자는 단일 수치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조건을 조합한 ‘트리거 시스템’을 설계해 리스크 발생 여부를 구조적으로 판단한다.

예컨대 ▲스프레드가 180bp 이상으로 확대 ▲채권 거래량이 전월 대비 50% 이상 급감 ▲주요 IR 공시가 30일 이상 중단 등의 조건 중, 두 가지 이상이 충족되면 ‘리스크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정량(스프레드·거래량)과 정성(IR 공백) 요소를 교차 검증하는 트리거 구조는, 감정적 반응을 차단하고 판단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핵심 장치다.

◇정성 신호…숫자보다 빠른 경고, 거래와 정보의 단절

채권 시장의 리스크는 숫자보다 먼저 정성적 신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고는 거래량 급감, 호가 단절, 정보 공백이다.

2023년 하반기, 한 중견 건설사의 회사채는 수익률만 보면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거래량이 80% 이상 줄고 주요 공시가 40일 넘게 멈추면서 시장은 불안을 감지했다. 이후 이 기업은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으로 분류됐다. 수익률보다 먼저 리스크를 경고한 것은 정보와 거래의 단절이었다.

한 증권사 크레딧리서치팀 관계자는 “동일한 신용등급이라도 기업의 정보 공개 빈도, 정책과의 연계성, 시장 거래 흐름에 따라 실질적인 리스크 수준은 전혀 다를 수 있다”며 “정성 지표가 정량 지표보다 앞서 리스크를 알려주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구간 전략…회복기엔 확대, 이탈기엔 축소

스프레드와 수익률이 평균 구간으로 회귀하는 ‘압축기’는 구조적 회복이 시작되는 신호다. 이 구간에서는 회복 속도, 정책 연계성, 정상금리와의 근접도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매수 전략을 확대하는 것이 유효하다. 중위험 등급 채권 비중을 늘리고 듀레이션을 확장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과거의 최대치나 최소치를 돌파하는 ‘구간 이탈기’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유동성 확보가 최우선이며, 고위험 자산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 BBB- 이하 채권을 10% 미만으로 낮추고, 단기 국채 중심의 보수적 포트폴리오로 재편하는 것이 안전하다.

같은 수익률이라도 ‘압축기’와 ‘이탈기’는 정반대의 전략을 요구한다. 숫자가 아닌 ‘위치’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투자 시스템, 감각이 아닌 구조로 반복

채권 투자는 예측의 게임이 아니다. 시장은 반복되지만, 투자자는 흔들린다. 감각이나 전망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

수익률과 스프레드는 외울 숫자가 아니라 해석할 구조다. 그 숫자는 맥락과 구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성공한 투자자는 미래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구조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