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기술] ⑦손절인가, 보유인가, 교체인가
결정의 순간에서 살아남는 법칙…판단 기준을 구조화하라
| 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금리는 그 문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익숙한 개인에게 채권은 여전히 낯선 자산이다. 그러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채권부터 이해해야 한다.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박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다. 이 시리즈는 채권의 기초부터 실전 전략까지, 시장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우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
[직썰 / 안중열 기자] 채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가격이 급변할 때 찾아온다. 금리 급등, 신용등급 하락, 스프레드 확대 같은 충격은 투자자에게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손절할까, 보유할까, 교체할까.’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이 결정의 순간에 기준 없이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감정에 따라 손절하거나, 막연한 낙관으로 버티고, 때로는 상황을 잘못 해석한 채 섣불리 교체에 나선다. 이때는 선택이 아닌 구조화된 판단 시스템이 작동해야 시장의 충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단기 변동이 아닌 구조 붕괴가 손절의 조건
손절은 마지막 수단이다. 단기적인 가격 하락은 매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손절은 ‘회복 불가능성’이 구조적으로 확정되었을 때 전략이 된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유동성 붕괴, 정보 단절, 정책 연계성 상실이라는 세 가지 신호를 점검해야 한다.
기업의 유동비율이 70% 이하로 급락하거나 단기차입금이 자금조달 능력을 초과할 경우, 이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유동성 위기다. 여기에 IR이나 자구안 발표 등 경영진의 메시지가 30일 이상 끊긴다면, 위기 대응력과 리스크 통제 의지를 신뢰하기 어렵다. 동시에 업종 전체가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거나 유사 기업 대비 회복 신호가 현저히 약할 경우, 구조적 회복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다.
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이 충족된다면 손절은 우선 검토 대상이다. 특히 하락의 원인이 시장 전반이 아닌 해당 기업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됐다면, 미련은 곧 손실이다. 손절은 회피가 아니라 손실 통제를 위한 합리적 시스템의 일환이다.
◇회복과 시장 수용 흐름 검증 과정의 ‘보유’
보유는 기다림이 아니라, 구조적 근거 위에 세워진 전략이다. 가격이 하락해도 반드시 매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보유를 정당화하려면 구조적이고 시계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단순한 ‘반등 기대’나 ‘일시적 낙폭’은 전략이 될 수 없다.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스프레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소되고 있는가다. 예컨대 1개월 전 220bp, 최근 180bp, 현재 140bp로 점진적으로 줄고 있다면, 이는 시장이 해당 채권을 점차 수용하고 있다는 신호다. 거래량 회복 여부도 중요하다. 구조적 신뢰가 회복되는 채권은 시장 내 거래가 다시 활발해지며, 가격 회복과 체결량 증가가 함께 나타난다.
이와 함께 최근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업종별 유동성 지원책과의 연계성도 확인이 필요하다. 정책과의 정합성이 높을수록 회복 가능성은 강화된다. 보유는 단순히 버티는 행위가 아니다. 회복이 어떤 흐름 속에, 어떤 구조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기다림은 위험한 도박이 된다.
◇단순한 환승이 아닌 구조의 ‘질적 전환’
교체는 수익률이 아니라 리스크 구조의 개선 전략이다. 단순히 가격이 빠진 채권을 처분하고 ‘싸 보이는’ 채권으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의 위험 구조를 질적으로 바꾸는 선택이다.
신용등급이 동일하더라도 한 채권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의 것이고, 다른 한 채권은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받는 기업에서 발행했을 수 있다. 시장이 이 둘을 동일하게 평가할 리 없다. 또, 자구책 발표 여부, 자산 매각 계획의 구체성, 정기적인 IR 활동은 기업의 회복 의지와 실행력을 판단하는 실질 지표다.
동일 업종 내에서도 정책 연계성이나 시장 평가에 차이가 크다. 보다 구조가 열려 있고 회복 가능성이 높은 채권으로 옮기는 것이야말로 교체의 진정한 목적이다. 수익률이 높아 보여서 선택하는 전략이 아니라, 동일 위험 하에 더 구조적으로 안전한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 고수의 갈아타기다.
◇기준이 시스템이 될 때, 행동은 흔들리지 않는다
‘손절할까, 버틸까, 갈아탈까’라는 질문은 투자자라면 누구나 반복해서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실전에서 살아남는 투자자는 이 질문에 직관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리 정의된 기준과 구조화된 판단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3단계 경보 시스템, 시계열 스프레드 분석, 거래량 추이, 정책 연계성 점검은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이는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을 오독하지 않게 만드는 행동의 구조다.
시장을 이기려 애쓰기보다, 시장이 흔들릴 때도 일관되게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진짜 전략이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설계다.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반복 가능한 판단 체계, 그것이 투자에서 살아남는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