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기술] ⑤믿을 건 금리? 믿어야 할 건 포트폴리오
“하나에 올인하지 말고, 구조를 설계하라”는 투자자의 문법
| 채권은 금융의 언어이고, 금리는 그 문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익숙한 개인에게 채권은 여전히 낯선 자산이다. 그러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채권부터 이해해야 한다. 채권은 단순히 이자를 받는 수단이 아니다. 경제의 맥박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다. 이 시리즈는 채권의 기초부터 실전 전략까지, 시장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우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
[직썰 / 안중열 기자] ‘금리를 맞히는 사람’은 드물지만, ‘포트폴리오를 설계한 사람’은 살아남는다. 채권 투자의 본질은 예측이 아니라 구조다. 방향은 흔들려도 구조는 버틴다. 금리, 신용, 환율이라는 불확실성의 파고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전략을 갖기 위해 단일 종목이 아닌 다층적 분산 설계가 필요하다. 만기·등급·통화의 균형, 리밸런싱의 타이밍, 상관관계의 활용, 구조화 상품의 이해까지 채권은 수익을 넘어 ‘구조의 언어’로 시장을 말한다. 이번엔 예측의 유혹에서 벗어나 구조의 전략으로 들어서는 실전 포트폴리오 설계서를 살펴보자.
◇금리는 신호…전략은 구조에서 시작
금리는 투자 전략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금리를 예측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전략은 쉽게 무너진다. 금리 인하를 전망하고 장기채에 집중했다가 정책 변화나 경기 반전으로 손실을 입는 사례는 흔하다. 단일 변수에 의존한 전략의 전형적인 실패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은 구조에서 나온다. 채권 자산은 금리, 신용 스프레드, 유동성 등 복합적인 변수가 얽혀 있다. 단순 해석보다 다층적 조합이 필요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금리는 전략 수립의 참고지표일 뿐이다. 진짜 전략은 금리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잘 짰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포트폴리오는 만기, 등급, 통화로 나눈다
채권 투자에서 포트폴리오 구성은 핵심이다. 만기 구조, 신용등급, 통화 구성을 기준으로 분산을 설계해야 한다.
금리 하락기에는 장기채가 유리하고, 금리가 오를 때는 단기채 중심의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 방향성이 불확실할 땐 장단기 채권을 동시에 편입하는 바벨 전략이 안정성을 높인다.
신용등급 분산은 수익률과 리스크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국채나 AAA 등급 채권은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제한적이다. 반면 BBB급 회사채나 스프레드가 확대된 우량채는 높은 수익 가능성과 함께 신용 리스크도 따른다. 이들을 조합하면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통화 분산은 환율 리스크를 낮추고 글로벌 분산 효과를 키운다. 원화 채권과 달러 표시 채권을 함께 담으면 환율 변동에 대비하면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리 전환기에는 단기 원화 국채 30%, 중기 BBB 회사채 사장지수펀드(ETF) 30%, 달러 표시 회사채 ETF 40%로 구성한 포트폴리오가 실전에서 활용된다. 종목보다 구조가 중요하다.
◇수익률 차이는 리밸런싱 타이밍에서 생긴다
같은 자산을 담았더라도 수익률은 조정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채권 투자에서 리밸런싱은 단순 점검이 아니라 전략의 일부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단기채나 변동금리채 비중을 늘려야 한다. 금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장기 국채나 장기 회사채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 금리가 전환점을 돌고 있을 때는 스프레드가 확대된 중단기 회사채가 유리한 타깃이 된다.
2023년 하반기, ‘투자자금 회수 기간(듀레이션)’이 같은 두 자산운용사의 포트폴리오는 리밸런싱 시점 차이로 인해 연 수익률이 1.5%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을 실행하는 타이밍이다.
기준금리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리밸런싱 주기는 더욱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획일적인 주기보다는 정책 시차, 채권 만기 구조, 크레딧 스프레드 변동폭을 고려해 이벤트 중심의 유연한 리밸런싱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국은행 금통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발표 전후 1~2주를 리스크 점검 타이밍으로 설정하면 시장 반응을 선반영할 수 있다.
◇상관관계 읽어야 자산이 버틴다
채권은 단독 자산으로 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자산 간 균형과 리스크 완충의 수단으로 활용할 때 효과가 커진다. 금리 사이클에 따라 자산 간 상관관계는 계속 변한다.
금리가 오를 때는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하락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이 먼저 반등하고 주식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리츠(REITs), 인프라 펀드, 원자재 ETF 등 비상관 자산을 섞으면 전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KB자산운용 글로벌본부 관계자는 “채권은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자산배분 구조에서 리스크를 조절하는 도구로서 더 큰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비상관 자산과 채권을 결합할 때는 금리 변동 폭에 따라 조합 비중을 조절해야 한다. 변동성이 작을 땐 채권 중심의 60:40 구조가 효과적이지만, 긴축 충격이 클 경우 비상관 자산을 50% 이상 편입해 충격 흡수력을 높이는 전략이 유효하다. 특히 글로벌 금리 인상이 주도하는 국면에서는 달러 표시 원자재 ETF와 환헤지형 인프라 펀드의 결합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강화한다.
◇개인 투자자, 멀티 상품-채널 병렬 활용
개인이 기관처럼 포트폴리오를 직접 구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ETF나 펀드 같은 간접투자 수단을 활용하면 비슷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금리 국면에 따라 단기·중기·장기 채권 ETF를 혼합하거나, 스프레드가 벌어진 시점에는 BBB 회사채 ETF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때는 물가연동채 ETF나 인플레이션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이 대안이다. 환율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환헤지 옵션이 포함된 달러 표시 채권 ETF를 활용하면 된다.
DLS나 하이브리드 펀드를 활용할 때는 구조 자체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특히 기초자산 유형, 쿠폰 구조, 조기상환 조건, 손실 제한 장치는 투자자 보호와 직결된다. 예컨대 인플레이션 연동 DLS의 경우, 물가가 기준선 이상으로 상승하지 않으면 수익이 제한되는 반면, 하방 리스크는 일정 구간까지 투자자가 감당해야 한다. 총수익률 구조가 '계단형'인지 '구간형'인지, 기초자산 간 상관관계가 낮은지 등 구조적 특성을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
최근에는 듀레이션 중심으로 수익과 리스크를 동시에 설계한 하이브리드 채권형 펀드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여러 상품과 채널을 병렬로 배치하는 멀티 전략은 정보 접근이 제한된 개인에게 실전 대응의 틀을 제공한다.
◇금리를 맞히려 하지 말고, 구조로 대응하라
채권 투자는 방향을 예측하는 게임이 아니다. 변화에 버틸 수 있는 구조를 짜는 전략의 문제다. 핵심은 종목이 아니라 설계다. 예측보다 중요한 건 대응력이다. 믿을 건 금리가 아니다. 믿어야 할 건,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의 내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