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직썰] ‘레고랜드 데자뷔’…카드론, 고금리 구조의 민낯
조달비용 안정에도 치솟는 금리…카드사 “총량 규제” 외피 속 이중 플레이 저신용자 겨눈 고금리 전략…사실상 대부업, 제도권 금융의 책임은 어디에
| 우리 사회는 금융의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자금의 흐름에 따라 가정의 살림살이부터 기업의 흥망, 국가 경제의 성패까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금융권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를 소개하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편집자주] |
[직썰 / 안중열 기자] 2022년 레고랜드 사태가 국내 신용시장에 던진 충격은 단발적이지 않았다. 위기의 본질은 시장 불신이었고, 금융기관의 고금리 남용이 이를 확대시켰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같은 구조가 카드론 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다.
2025년 현재 카드론 평균 금리는 15%에 육박한다.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3년물 금리가 2.77%로 하락하며 조달비용이 안정됐음에도, 카드사들은 고금리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 ‘시장 논리’ 뒤에 숨은 이중 전략
카드사들은 카드론 고금리의 이유로 ▲총량 규제 ▲자본 비용 증가 ▲신용위험 확대 ▲업무원가 상승 등을 제시한다.
A사 관계자는 "부실 가능성이 높은 자산에 대해 더 많은 자본을 적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B사는 "총량 규제 때문에 중신용 이하 고객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C사 역시 "금융소비자 보호 조치 강화로 영업원가가 상승했다"고 항변한다.
겉으로는 시장 원리를 따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위험 프리미엄을 명목으로 고금리 구조를 고착화하는 이중 전략이 작동한다. 기준금리가 하락해도 이를 반영하지 않는 이유다. 이는 단순 시장 반응이 아니라, 규제의 회색지대를 활용해 수익성을 유지하려는 정교한 조정 행위로 해석된다.
정부가 카드론 총량을 직접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틈을 타, 카드사들은 리스크가 높은 고금리 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수익을 방어하고 있다.
◇ ‘블랙박스’ 금리 산정 체계…외부 검증은 불가능
카드론 금리는 조달비용이 하락했음에도 여전히 높다. 외부에서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카드사들이 금리 산정의 핵심 요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고금리는 카드사 내부 기준에 따라 설계된 결과라는 의심이 제기된다. 실제로 몇몇 카드사는 고금리 구조를 사실상 수익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카드는 2024년 상반기 조달금리가 연 4% 초반까지 떨어졌지만, 카드론 평균 금리는 15.5%를 유지했다. 롯데카드는 총량 규제를 명목으로 대출을 줄이는 대신 남은 한도에 연 16%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했다.
NH농협카드 역시 평균 금리가 14.8%에 달하며,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하나카드는 2023년 하반기 시장금리 안정세 속에서도 연 18%에 가까운 고금리 카드론을 공급했다. BC카드는 제휴사를 통한 간접 대출 방식에서도 15%가 넘는 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카드사들은 금리 인하 여지가 있음에도 고금리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금리가 외부 검증이 불가능한 내부 기준에 따라 결정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카드사들은 조달비용, 신용위험 외에도 외부 검증이 불가능한 손익 기준과 리스크 평가 로직을 금리 결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합리적 산정 기준을 제시하고 공시를 의무화하지 않는 한, 정보 비대칭을 악용한 고금리 구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 서민을 겨눈 고금리…금융당국의 책임, 더는 미룰 수 없다
카드사들은 총량 규제를 준수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집중 부과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제도권 금융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한 채 서민금융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고금리 구조 고착은 단순히 금융소비자 피해를 넘어, 소비 위축과 경기 하방 압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국가경제 차원의 위기로 확산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심사 기준 강화 시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고금리와 과도한 대출 권유야말로 저신용자의 부채를 악화시키고 결국 불법 사금융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다.
자율 규제로 운영되는 ‘모범규준’도 고금리를 억제하기보다는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카드사들이 내세우는 금리 산정 기준은 외부 검증이 불가능해, 정보 비대칭을 악용한 ‘설계된 수익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카드론 금리 구조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금리 산정 방식의 투명화, 리스크 평가 기준의 공시 의무화, 고금리 상한선 도입 등 실질적 정책 개입 없이는 현재의 구조적 고금리는 해소될 수 없다. 제도권 금융이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려면 금융당국의 전면적 규제 개편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