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직썰] 주주 행동주의, 권리인가 위협인가
배당 요구에서 거버넌스 개선으로 진화 소액주주 영향력 확대 vs 경영권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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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 최소라 기자] 국내 주주 행동주의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까지 요구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영향력도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주주 행동주의, 이제는 ‘경영 간섭’ 수준까지 오면서 주주가 기업 경영과 의사결정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00년 넘는 역사 속에 제도화된 반면, 한국에서는 202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 수가 급증하고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주주제안 이력이 있는 상장사 412곳 중, 소액주주 및 연대체의 주주제안은 2015년 33건에서 2023년 73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현행 상법은 상장사 주주가 지분 3% 이상을 보유하면, 보유 기간과 무관하게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변화하는 주총에서는 소액주주 단결력도 확대되고 있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소액주주의 제안이 과거보다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고 실제로 가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DB하이텍, 코웨이 등 일부 기업에서는 주총 안건으로 수용되기도 했다. 비록 전체 안건 중 가결 비율은 아직 10% 수준이지만, 시장에 미치는 상징성은 크다.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도 이러한 흐름에 기여하고 있다. 소액주주 결집 플랫폼 ‘헤이홀더’와 ‘액트’의 가입자는 2023년 말 4만6000명에서 2024년 9만7000명으로 증가했고, 현재는 12만 명을 넘어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개인 투자자 1400만 명이 연대할 경우 그 파급력은 상당하다”며 “주주 행동주의는 이들이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메리츠 모델’이 확산될지도 관심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대표적 사례로 메리츠금융그룹이 자주 언급된다. 이 회사는 “대주주의 1주와 일반주주의 1주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경영 효율화로 확보한 자원을 주주가치 극대화할 방침이다.
다만 부작용 가능성도 고민해봐야 한다.
주주 행동주의 확산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존재한다. 일부 소액주주 연대가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경영권에 위협을 가하는 사례가 발생할 경우, 기업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리스크가 더 크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소액주주의 평균 지분율은 47.8%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37.8%보다 10%포인트 높다. 최대주주가 자연인인 기업이나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일수록 이 격차는 더 확대된다.
DART 공시자료를 바탕으로 대한상의가 코스피·코스닥 상위 200개사를 분석한 결과, 다수 기업에서 소액주주 연대가 실질적 경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로 나타났다.
경영권 방어제도 정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한상의는 보고서를 통해 “적대적 M&A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이 성장과 투자, 주주환원에 집중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방어 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미국, 영국, EU, 일본 등은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 중이며, 국내 역시 주주 행동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