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더 10집 ‘THE MAST’···지속과 재구성,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록 정신
“밴드의 생명력은, 결국 멈추지 않는 항해다”
[직썰 / 안진영 기자] 데뷔 29년째를 맞은 밴드 더더가 10번째 정규앨범 'THE MAST'로 돌아왔다.이들의 음악은 언제나 그랬듯, 화려함보다 진심에 더 가깝다. 이번 앨범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록 밴드로서 어떻게 지금을 살아내는가'에 대한 응답에 가깝다.
이현영(보컬), 김영준(기타·프로듀서), 정명성(베이스), 노윤영(드럼)으로 이어진 현 체제는 오랜 시간의 호흡 속에서 더욱 응집된 밴드 조직력을 보여준다.
◇타이틀곡 ‘HAVE A NICE DAY’...밝은 인사 속, 피로한 오늘을 껴안다
앨범의 문을 여는 ‘HAVE A NICE DAY’는 표면적으로는 가벼운 인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오늘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복합적인 감정이 녹아 있다. 이현영의 목소리는 “오늘도 난 I’m fine, 왜 그리 쉬웠나 Easy”라는 문장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듯 노래하고, 김영준의 기타는 그 감정을 투명하게 공명시킨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시작되는 따뜻한 서정 위에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가 현실의 균열을 미세하게 그려내며, 정명성의 단단한 베이스와 노윤영의 안정된 드럼이 ‘살아 있음’의 리듬을 완성한다. 곡 후반으로 갈수록 확장되는 사운드와 반복되는 ‘라랄라’ 구간은 단순한 훅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의 분출처럼 터져 나온다.
결국 ‘HAVE A NICE DAY’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역설을 품는다. 밝은 인사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그래도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위로로 남는다.
◇항해의 돛대, 'THE MAST'...“다시 기둥을 세운다”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THE MAST’는 밴드의 정체성을 함축한다. ‘돛대’라는 상징 아래, 더더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항해를
섬세한 아르페지오 리프와 점층적인 전개는 긴장과 서정의 경계를 유영하며, “다시 기둥을 세운다”는 메시지를 사운드로 구현한다. 이는 밴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시간의 궤적을 잇는 곡들
‘I’m Gonna Miss You’는 절제된 편곡 속에서 ‘Rewind’라는 개념을 통해 시간의 여백과 기억의 온도를 표현한다.
‘FIREMAN’은 내면의 불을 다루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분노를 형상화하며, ‘가리워진 꿈’과 ‘이대로’는 서정적인 정서 속에서도 단단한 현실감을 잃지 않는다.
‘빙글뱅글’은 펑키한 리듬과 장난기 있는 그루브로 앨범의 공기를 가볍게 풀어내고, ‘으라차차 대한민국’은 공동체적 열망과 연대의 에너지를 록의 언어로 풀어낸다. 응원가의 형식을 빌리되, 단순한 집단적 외침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로 다가온다.
후반부로 갈수록 앨범은 점점 투명해진다. ‘작은새’는 자유와 비상을 상징하며, ‘Maybe Tomorrow’는 김영준과 이현영의 하모니가 교차하는 순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마지막 곡은 “우리는 내일도 노래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밴드의 여정에 새로운 쉼표를 찍는다.
◇사운드의 미학...더 정교하고, 더 인간적인
'THE MAST'의 프로덕션은 단단하면서도 섬세하다. 김영준이 JUNS Studio에서 전곡 믹스를 맡았고,마스터링은 Abbey Road Studios의 Oli Morgan이 진행했다. 그 결과 록의 밀도감과 현대적인 밸런스를 동시에 확보하며, 90년대 한국 록의 정체성과 2020년대 사운드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청년 밴드 이랑이(LeeRang_E)의 일부 트랙 참여는 세대 간의 에너지를 교차시킨다. 그들의 기타와 보컬은 더더의 사운드에 새로운 온기를 더하며, 록 밴드의 ‘지속 가능성’이 단지 생존이 아닌 세대적 계승임을 보여준다.
◇“THE MAST는 회고가 아닌 재구성이다”
이현영의 보컬은 여전히 유려하고, 김영준의 프로듀싱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다. 정명성과 노윤영의 리듬은 단단한 중심을 잡아주며, 더더는 여전히 ‘현재형 밴드’로 존재한다.
'THE MAST'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밴드는 자신들의 언어를 다시 정리하고, 그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감각을 찾아낸다.록 밴드의 성장기는 새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을 재정의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 앨범은 묵묵히 증명한다.
‘THE MAST’는 더더가 세운 돛대다. 그 돛 아래서, 그들은 여전히 바람을 맞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록 밴드의 진짜 생명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