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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월급 깎자” 조정훈의 정치가 비겁한 이유

  • 입력 2020.08.23 14:42
  • 수정 2020.08.24 18:48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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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론관에서 발언중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연합뉴스

두달 전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자신의 1호 법안을 발표했다. 한달 간의 대리운전기사 체험을 마친 뒤 그가 내놓은 것은플랫폼노동자 경력증명서법이었다. 말 그대로 라이더 등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에게 고용주가 경력증명서를 발급하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정작 배달노동자들은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되물었다. 경력증명서는 대부분 플랫폼에서 정상적으로 발급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이 플랫폼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산재보험 의무화나 배달시간제한, 평점시스템 개선 같은 배달노동자를 둘러싼 중요한 현안들을 제쳐두고 별 실효성도 없는 정책을 요란하게 발표한 것이다.

조정훈은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일까? 그 세계를 한달이나 체험하고도 진짜 문제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무능한 것이고, 보고도 외면했다면 비겁한 것이다.

조정훈은 이 법안을 발표하면서친기업과 친서민은 배타적이지 않다플랫폼 경제가 어떻게 친기업, 친서민을 (동시에) 달성하는 경제가 될 수 있을지 제안 드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그가 하고 있는 '이상한 일'의 실마리가 보였다.

산재 의무화나 배달시간제한, 평점시스템 개선 같은 현안들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긴장이 가득한 일들이다. ‘친기업과 친서민이 갈등하지 않는아이템이 필요했던 조정훈의 눈에 그런 것들이 들어올 리 없다. 그에게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어떤 갈등도 유발하지 않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이를테면경력증명서발급법같은 것 말이다.

며칠 전 조정훈은 또 한가지 기발한 제안을 했다. 공무원 월급을 20%씩 깎아 2차 재난지원금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재난지원금 논쟁은 플랫폼노동자 문제보다 훨씬 더 첨예한 전선이다.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청와대와 홍남기 사이의 갈등은 생생하게 온 국민에게 중계됐다. 2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시작되면서 역시 규모와 재원마련 등을 두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서민경제냐 재정건전성이냐, 확대지급이냐 선별지급이냐, 모두가 각자의 소신을 걸고 팽팽하게 맞서는 이때, 조정훈은 갈등의 현장을 사뿐히 뛰어넘어 간편하게도공무원 월급을 깎자고 주장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연합뉴스

나는 기재부와 홍남기의 견해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국가 운영에 어떤 소신을 갖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겠다. 그들의 소신이 어떤 철학적 일관성에 기반하는지 알기에 기꺼이 반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정훈이 어떤 철학을 기반으로 저 따위 주장을 펴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정치적중도'라는 것은 내 지향이 사회일반의 가운데쯤 머물 때 '우연하게' 얻게 되는 지위다. '난 너희들 가운데 서 있을 거야'라는 태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의 정치는 떠다니는 섬이고 다리 없는 유령이다. 단단하게 딛고 있는 지반이 없으니 움직임이 불안하고 경박스럽다.

조정훈의 정치에서 엿보이는 것은 한국의 자칭 중도 실용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철학의 빈곤, 그리고 여기서 비롯되는 비겁함이다. 한국에서 실용주의라는 기치는 갈등 접근 능력이 떨어지는 정치인들의 면피용 액세서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전임자들이 그랬듯, 조정훈의 정치는 앞으로도 갈등의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의 외피에 머물 것이다. ‘A B를 뛰어넘은 경력증명서같은 정치 말이다.

갈등은 치열하게 마주할 때 해소되는 것이지, 발도 담그지 않고 사뿐히 뛰어넘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기재부나 통합당 사람들이 조정훈보다는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by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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