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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희숙이 무섭다

  • 입력 2020.08.05 00:42
  • 수정 2020.08.24 18:48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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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 연합뉴스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국회 연설로 화제를 모은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4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윤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전세를 놓을 유인이 줄어들어서 (전세 시장이) 쪼그라드는 길인 것은 다 보이지만, 먼 훗날에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 과정을 부드럽게 하는 게 정책의 일이다. 정책은 현재 있는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윤희숙 의원의 인식에 동의한다. 평이한 수준의 발언이지만, 저 당에서 말다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그런데, 지난번 연설에서 절절하게 임차인의 심정을 호소했던 그가 오늘은 "상위 1% 국민에게 돈을 걷는다는 여당의 말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국민의 1%도 기본권이 있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상위 1% 부동산업자들에게 세금을 좀 더 걷어 무주택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 부정의한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너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힘없는 임차인으로 빙의했던 지난번 연설은 진솔하지 못했던 것이다.

윤 의원은 30일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하며제가 지난 5월 이사했는데 이사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집주인이 2년 있다가 나가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을 달고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임차인의 심정을 공감하는 것과, 1% 부동산부자를 공감하는 것. 논리적으로야 양립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5분 연설이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나는 임차인입니다" 라는 선언구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만약 그의 연설이 "나는 1% 부동산부자들이 걱정됩니다"라는 말로 시작되었다면 어떤 울림을 줬을까?

정치인이 자기 말에 힘을 싣기 위해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의 입맛을 자극하기 위해 양 극단을 오가는 윤희숙의 코스프레는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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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최근까지 다주택자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책 방향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다. 윤희숙은 오늘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부동산 가격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부동산 가진 이들의 자산을 나라가 몰수하겠단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의 인식은 월세를 걱정하는 임차인의 심정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을 순수악으로 바라보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스테레오타입이다.

며칠간 윤희숙의 발언을 보며 앞에서는 국밥을 말아 먹으면서 뒤로는 토건족에게 천국을 열어줬던 이명박이 떠올랐다.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정책이 못마땅하다 해서 저런 기만적인 언설에 주목할 이유는 없다. 윤희숙은 1%에게 세금을 걷는 것이 무섭다 했지만 나는 대중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박수를 받는 그가 무섭다.

by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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