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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와이프와 아내의 차이

  • 입력 2020.06.30 10:42
  • 수정 2020.06.30 10:44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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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얼마 전, 어떤 인터넷 언론 기사에서 아내를와이프라고 쓴 걸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에 게재된 기명 기사에와이프가 여러 차례 쓰였다. 개인 블로그도 아닌 공식 기사에 당당히 쓰인와이프는 그러나 천박하고 무례해 보였다.

신문이나 방송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라는 사실을 기자는 깜빡 잊었던 것일까. 공식 기사에서 그런 외국어를 쓰는 게 실례라는 걸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기자 세대에서는 그 정도는 일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공적 장소에서 자신의 처를 가리키는 말은아내를 쓰는 게 맞다. 물론집사람이나안사람을 쓸 수도 있지만, 이는 여성의 성 역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 적절하지 않다. 엉겁결에부인(夫人)’이라고 쓰는 이도 있는데 이는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다. *‘부인(婦人)’결혼한 여자라는 뜻으로 쓰이니 좀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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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생각 없이 편하게 쓰는 말로마누라가 있다. 내외끼리 정감 있게영감-마누라로 쓸 수도 있고, 격의 없이 가까운 친구들끼리 쓰는 말로는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에게 아내를 이르면서 쓰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 이 말은 아내를 비하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마누라는 윗사람 앞에서는 결코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와이프(wife)’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다가 점점 쓰임새가 늘고 있는 말이다. 아내나 집사람이라는 지칭어를 쓰기 쑥스러워 외국어로 대신하다 이게 굳어져 버린 듯한데, 한때라면 모르되, 멀쩡한 모국어를 놔두고 외국어를 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머니 대신마더마마를 쓰는 격이니 이 말 역시마누라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나 편하게 쓸 말이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이 말을 태연스레 쓰고 있는 걸 보면 좀 민망하다. 마누라와 마찬가지로 윗사람 앞에서 쓰는 말로는 매우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어른 앞에서마누라라고 하거나와이프라고 하는 건 무례하기로 치면 도긴개긴이 아닌가 말이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는 좀 편하게 쓸 수 있지만, 공적 공간에서 남편을 가리키는 말은 역시남편이다. 편한 자리에서 흔히 쓰이는신랑이나우리 아저씨는 물론이고아빠오빠따위로 쓰는 것은 자칫 교양을 의심받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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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男便)은 어원이[()]’아내에 비기면 상당히 중립적인 이름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짝으로여편을 상정할 수 있는데 이는여편네라는자기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때문에 탈락이다. ‘()’의 짝은()’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홀로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안사람’의 짝으로바깥사람이 있긴 하지만 역시남편을 예사롭게 또는 낮추어 이르는 말로 잘 쓰이지 않는다. ‘집사람의 짝이 되는 말은 아예 없다. 영어인와이프의 짝은허즈밴드(husband)’지만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쓰는 이는 드물다.

결국, 남편과 아내를 가리키는 중립적인 지칭어는 없는 셈인데 부부를 가리키는 한자어가 여럿(부부, 내외, 부처 등)인 것에 비기면 이는 부부 사이의 관습적 불평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아버지와 너의어머님

우리말 예절의 출발은 자신은 낮추고 남은 높이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소속한 집단도 낮춘다. ‘가족’, ‘동네’, ‘학교’, ‘회사등에는 모두저희를 붙이는 이유다. 그게 넘쳐서 겸양의 대상이 아닌나라까지 낮추어저희 나라라고 하는 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과거엔 부모도아비, 어미로 낮추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표준화법에서는 살아 계신 자기 부모를 호칭하거나 지칭할 때는 ‘-자를 붙이지 않는다. 단 편지글에서는 예외다. ‘아버님 전 상서가 가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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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의 부모를 높여 이르거나 돌아가신 자기 부모를 지칭할 때, 그리고 며느리나 사위가 시부모나 처부모를 부를 때는아버님, 어머님을 써야 한다. 며느리와 사위에게 시부모와 처부모는이기 때문이다. 내 부모는우리 아버지, 어머니지만 상대의 부모는너의 어버님, 어머님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한자어로 된 지칭어를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자에 익숙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살아계신 부모와 돌아가신 부모를 가리키는 한자어를 혼동하는 때도 곧잘 생기는 듯하다. 그래도 살아계시는 걸 기준으로 한 가친(家親)과 선친(先親), 남의 부모님을 가리키는 춘부장(春府丈)과 자당(慈堂)쯤은 구분할 수 있는 게 좋겠다.


▲ 부모님은 공경하되 살아계신 부모께는 ‘- 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한자어 가운데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리키는선비(先妣)’, ‘선자(先慈)’나 돌아가신 남의 부모를 이르는선대인(先大人)’이나선대부인(先大夫人)’은 실제 쓰임새가 얼마나 있을는지. 한자어 대신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등으로 써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우리말에서 부르는 말[호칭어]과 가리키는 말[지칭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수직적 계급사회였던 전근대에서 수평적 평등사회로의 진전이 말의 형식을 간소화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최소한의 예를 지키는 게 필요할지 모른다. 아무 데나를 붙이는높임 과잉의 화법보다 중요한 것은 말이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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