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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답게 살라고요?

  • 입력 2020.06.10 15:07
  • 수정 2020.08.24 18:49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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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의 행보에 의문이 있다. 어렴풋이 납득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모순되는 것도 있다. 합리적 비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밝힌 이상, 한 운동가의 주장으로서 발화에 대한 공적 책임도 함께 부과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용수 운동가에 대한 비판 역시 공적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희대학교 김민웅 교수 페이스북


김주대 시인 트위터

하나는 경희대학교 김민웅 교수의 글, 하나는 김주대 시인의 글이다. 김민웅은 이번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신의 사모곡을 늘어놓더니 이용수 할머니에게당신은 왜 우리 어머니처럼 할머니답지 못하냐따져 묻는다. 김민웅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도출해낸할머니다움어떤 고통도 인내하고, 누구든 끝까지 사랑하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따뜻하고 너그럽고 자상하고 애틋한인간이다. 이것들을 모아 조립하면 가부장제 질서가 요구하는 할머니상이 완성된다.

김민웅이할머니답지 못한' 이용수 할머니를 질타했다면 김주대는우리 너그럽고 인자한 할머니는 절대 그럴 리가 없어라며 관심법을 썼다. 김주대는 본인의 망상 속에서 나와 윤미향과 할머니로 연결되는 의사가족을 만들어 낸 뒤 윤미향의 비판자들을 폐륜아로 몰아간다. 그는 제멋대로 할머니의 속마음을 예단해할머니가 원하는 게 이거였을까?’라고 물었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이어진 행보는 김주대의 관심법이 확실히 틀렸음을 보여줬다.

두 사람의 글은할머니다움에서 손을 맞잡는다. 저들이 이용수 할머니에게 요구한 할머니다움이란 여성다움, 엄마다움의 연장선에 있는 모성이데올로기의 변형이다.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이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피해자다움과 소녀다움의 표상이라면, 두 사람이 이용수 할머니에게 요구하는 덕목들은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할머니의 표상이다.

가부장제를 소환했다는 사실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저들이 그것을 소환한 목적이다. 두 사람은 자기 진영에 '위협'을 가하는 할머니에게 가부장적 속박을 씌운 뒤 '왜 할머니답지 못하냐'고 꾸짖는다. 이런 속박 속에서 할머니는 결코 분노해서는 안 되고, 소신을 가져서도 안 되며, 어떤 부조리도 견뎌내는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 누가 할머니들에게 그런 걸 요구할 권리를 가졌는가?

그러니까, 김민웅과 김주대가 요구하는 것은 가부장제 질서에 걸맞는 할머니이자, 그들의 진영에 무해한 할머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어떤 할머니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저들이 시대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으로서 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동등한 시민 대 시민의 관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은 세상사를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혹은 동지와 적으로 나뉘는 진영적 이분법 속에서 파악한다. 김민웅의 글은 그 태도가 어떻게 자신과 주변을 망가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민웅이 어머니의 삶을 떠올렸을 때 해야 했던 생각은 '어머니는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했을까?'라는 질문이다. 김민웅 같은 효자라면, 어머니가 욕구와 감정을 가진 온전한 개인의 삶을 포기한 채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까? 그러나 진영수호의 늪에 빠진 김민웅에게는 어머니가 가부장제의 피해자였음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대신에 엉뚱하게도 다른 할머니에게 '할머니다움'을 훈계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김민웅은 불효자다.

by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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