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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없다” 통합당 ‘뇌’ 역할 하던 여의도연구원의 몰락

  • 입력 2020.05.21 11:09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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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당 대표 시절 여의도연구원장을 맡았던 김세연 의원과 황 대표 ⓒ연합뉴스

한때 정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미래통합당 여의도연구원(여연)의 보고서를 입수하려고 갖은 애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여연 보고서는 정치 분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양질의 정보를 담고 있었습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업체들은 새누리당이 최소 157석에서 최대 175석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주도로 설립한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에서도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모두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가운데 여연만이 125~127석 정도로 예측하는 뜻밖의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여연은 서울과 경기 지역 대부분에서 새누리당이 열세라며 35석 정도를 예측했습니다. 언론과 당 내부에서는 여연이 일부러 낮은 수치를 제시하며 새누리당의 결집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총선 결과 여연의 예측대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35석만 얻는 등 122석으로 의석 과반에 실패했습니다.

박근혜가 화낼 정도로 솔직했던 여연 보고서

▲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경남 김해갑 김정권 후보를 지원 유세하는 모습 ⓒ김정권 홈페이지

2005년 ‘4·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여연의 전신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4·30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별 심층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보고서에는 경남 김해갑 후보의 승리에 대해 “한나라당 당원 조직과 후보의 사조직이 치밀하게 움직이면서 ‘김정권 동정론’을 부각시킨 것이 주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경기 성남중원 신상진 후보에 대해서도 “성남 중원 지역에서 한나라당 조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태이며 이번 선거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조직은 당 공식조직이 아니라 ‘의사협회’였다”라며 선거에서 불법 사조직이 개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선거 시기와 상관없이 선거와 관련된 ‘사조직이나 기타단체’를 만들거나 기존의 사조직을 선거에 동원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공직선거법 89조)

여의도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박근혜 대표 방문 시 창원 마산 진해시 등지에서 대거 동원된 당원들로 인해 실제 김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점은 향후 개선사항”이라며 당 대표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박근혜 대표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윤건영 당시 여의도연구소 소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하고 연구소 조직은 대폭 축소됐습니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격상했던 여연 전성기

▲ 여의도연구소에서 조직이 확대되며 이름이 바뀐 여의도연구원 ⓒ뉴시스

여의도연구소는 1995년 민주자유당(민자당)에서 설립한 국내 최초의 정당 정책 연구원입니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과 교류하는 등 정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습니다.

여의도연구소가 실력을 입증받은 분야는 선거 여론조사입니다. 기존에 사용했던 전화 면접 방식을 탈피하고 ARS 방식을 도입한 결과 선거 적중률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정가나 언론계에서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보고서를 앞다퉈 찾을 정도로 여론 조사의 품질과 선거 예측 수준은 남달랐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정치에 나섰고,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도 여연 출신입니다. 그만큼 여연에 능력 있는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과 2012년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여의도 연구소를 꼽을 정도로 싱크탱크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2013년 여의도연구소는 여의도연구원으로 격상됐고, 총 직원 78명, 연구인력 38명, 연간 예산 110억 원의 거대 조직으로 확장됐습니다.

통합당 패배 뒤에는 여연의 몰락이 있었다

▲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 ⓒ연합뉴스

여의도연구원(여연)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패배가 이어지면서 위기를 맞이합니다. 2017년 1월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대위가 출범하면서 조직이 축소됐고, 박사급 연구원들이 대거 여연을 떠났습니다.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여연은 당 대표 비서실의 하부 기관으로 전락했고, 정책 개발보다 당 대표 발언 작성 등을 하는 곳으로 추락했습니다.

조직과 사람이 축소되면서 여연의 정책 개발과 선거 여론조사 예측은 형편없어졌습니다.

성동규 여의도연구원장은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150석 넘을 것”이라며 과반의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으로 총선이 끝이 났습니다.

▲ 5월 20일 심재철 미래통합당 의원이 주최한 ‘미래통합당 총선 패배 원인과 대책은?’ 토론회 모습 ⓒ심재철 의원실

5월 20일 심재철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주최한 ‘미래통합당 총선 패배 원인과 대책은?’ 토론회에선 총선 실패 원인으로 선거 전략 실패와 ‘머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종인 여연 수석연구원은 지난 15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말했던 “뇌가 없다. 브레인이 없다”라는 지적을 언급하며 “공관위 활동에서조차 여론조사 기능·역할이 반영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체 김대호 후보가 무슨 막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는 어이없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여연이 과거와 다르게 싱크탱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과거 여연은 압도적인 정확한 여론조사와 대중을 사로잡는 정책과 전략을 무기로 선거를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축소되면서 그 기능을 점차 잃었습니다.

최근 통합당 지도부는 싱크탱크를 활용한 전략과 정책 개발보다는 극우 유튜브 채널과 태극기 부대만 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오로지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직썰 필진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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