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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가전사> 크레시 전투

  • 입력 2016.09.02 10:20
  • 수정 2016.12.03 16:29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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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 스틸컷

멜 깁슨의 원맨쇼(?)였던 <브레이브 하트>에서 얘기를 시작해 보자. 여기서 멜 깁슨은 잉글랜드의 명군 에드워드 1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 역을 맡는데 영화 속에서 그는 에드워드 1세의 며느리, 즉 프랑스에서 시집온 이사벨라 공주와 사랑을 나누고 에드워드 1세는 “내 뱃속에 윌리엄 월레스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며느리의 황망한 속삭임을 들으며 경악 속에 죽어가게 돼. 그런데 이건 말도 안되는 얘기다. 이사벨라는 월레스가 죽던 당시 열 살인가 일곱 살인가 하여간 코흘리개 어린애였고 그나마 그녀가 도버 해협을 건너 시집온 건 월레스가 죽은 뒤 몇 년이 지나서였거든,

자 그건 그렇고 영화를 봤다면 당시 영국의 왕가, 즉 플랜타지네트 왕조의 가계를 잠깐. 영화 속 잔인하고 교활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는 에드워드 1세, 마누라 빼앗긴 것으로 나오는 유약한 왕세자는 에드워드 2세로 기록된다. 그리고 이사벨라가 낳게 되는 아들이 에드워드 3세야. 이사벨라는 <브레이브 하트>에서 시아버지에게 “남의 애를 가졌소! 당신의 뒤는 이 애가 이을 거요!”라고 말하는 그 공주만큼이나 대담한 여자였어. 남편 에드워드 2세가 스코틀랜드로 출정했다가 베녹번 전투에서 콧대가 내려앉은 뒤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나는 왕이야!”를 부르짖으며 제멋대로 하려들자 이에 반기를 든 귀족들을 지휘해서 남편을 왕위에서 내쫓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에드워드 2세는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맞아죽었다고 하기도 하고 항문에 쇠꼬챙이가 박혀 죽었다고도 해. 뭐 하여간.

에드워드 3세, 즉 이사벨라의 아들은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 쪽을 닮았고 어머니의 대담함도 물려받은 왕이었어. 남편을 몰아냈던 이사벨라는 자신의 애인 모티머가 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걸 봐야 했다. 모르지. 치밀한 작전을 짜고 지하 통로로 숨어들어가 모티머를 잡아채고 목을 자르면서 에드워드 3세는 이렇게 부르짖었는지도. 햄릿처럼.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에드워드 3세 때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의 지위를 얻게 되지만 잉글랜드와는 계속 앙숙이었고 스코틀랜드의 배후에는 프랑스가 있었어. 프랑스에도 적잖은 영지를 갖고 있던 잉글랜드는 프랑스 국왕의 눈에 박힌 가시기둥이었는데 이 가시기둥을 흔드는 데에는 스코틀랜드가 절묘한 카드였던 거지. 반면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왕의 골칫거리였던 플랑드르 지방 (플란더스의 개의 플란더스)을 지원하며 프랑스를 골탕먹였고. 이런저런 일 와중에 잉글랜드 왕이자 프랑스의 대영주이며 프랑스 왕가와도 혈통이 얼키설키 휘감겨 있었던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프랑스의 왕임을 선언하게 돼.

산 하나에 호랑이가 둘 살 수는 없고 한 나라에 왕이 둘일 수는 없지. 에드워드 3세는 중세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벌여 노르망디에 발을 들여 놓은 후 프랑스 북부 지역을 휩쓸어. 백년전쟁의 시작이야.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 6세는 노발대발했지. 이 섬나라 오랑캐들을 내 가만 두지 않으리라. 프랑스 기사들 총 집합!!!! 기품 넘치고 유서 깊은 가문의 기사들이 저마다의 문장과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그리고 육중한 마갑을 걸친 말을 이끌고 집결했다. 그들은 영국군을 추격했고 마침내 크레시라는 곳에서 잉글랜드군을 따라잡게 돼.

홈그라운드인 프랑스가 원정군인 영국군보다 병력이 많은 건 당연했지. 아니 인구 자체가 프랑스는 잉글랜드의 서너 배 되는 대국이었거든. 양쪽 군대의 수는 기록마다 다르지만 확실한 건 프랑스 군이 3배 이상은 됐다는 거. 프랑스 기사들은 기세가 등등했어. 아장거리는 잉글랜드 보병들을 단숨에 밟아버릴 기세였지. 심지어 영국 기사들은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니 더욱 프랑스 기사들의 웃음 소리가 높았다. “기사가 말을 버리다니. 저것들도 기사냐.” 프랑스 기사들은 기다릴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공격을 독촉했고 프랑스 왕 필립 6세는 어쩔 수 없이 속전속결로 가기로 했어.

전투를 시작한 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온 석궁 용병대였어. 영화에서 가끔 봤겠지만 석궁은 무서운 위력을 가진 무기야. 사람 몇 명을 관통하기도 하고 사람을 화살과 함께 벽에 꽂아버리기도 하는 강력한 무기지만 화살을 재는 게 어려워서 1분에 3-4발 정도 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 또 말을 타고 온 기사들과는 달리 두 다리로 강행군해야 했던 석궁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오는 동안 비가 내려 석궁 상태도 좋지 않았어. 그런데 공격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급작스레 이뤄졌고 이들은 화살을 잴 때 몸을 보호해 주는 석궁대의 상징이라 할 방패 (파비스라고 해)마저 챙기지 못한 채 선봉에 나서야 했지.

이에 맞선 게 웨일즈 지방의 특산 장궁 보병대였지. 자기 키보다 큰 활을 귀밑까지 당긴 후 쏘아대는 장궁은 연사 능력에서 제노바 석궁대를 능가했어. 제노바 석궁대가 당황하여 물러서자 프랑스 왕 필리프는 이를 갈아붙인다. “저 비겁한 쓰레기들을 해치워라. 돈값도 못하는 것들.” 프랑스 기사들은 자신들의 우군이었던 제노바 석궁병들에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나아가 석궁병들이 아직 싸우고 있는 등 뒤에서 돌격을 감행해. 제노바 사람들은 이탈리아 말로 부르짖었겠지.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냐.”

프랑스 기사군은 기세 좋게 언덕을 뛰어올라갔지만 잉글랜드군은 화살의 비로 그들을 맞는다. 무려 열 여섯 번이나 돌격을 감행했지만 프랑스 기사군은 지형상 높은 곳에서 쏴대는 잉글랜드군의 화살의 좋은 먹이가 될 뿐이었어. 더구나 비 내린 전장은 질척한 진창이 돼 기병대의 속도를 줄였다. 어기적거리는 기사만큼 좋은 과녁도 없지. 사람을 맞히든 말을 맞히든 맞추면 되는 거니까. 작전도 순서도 없이 용기와 긍지만으로 말 옆구리를 차 대면서 언덕을 오르던 기사들은 시체가 되어 굴러 떨어지거나 무거운 갑옷을 입고 땅에서 버르적거리다가 영국 평민들의 도끼에 맞아 죽는다. 아이고 기사 나리 실례 좀 하겠습니다 퍽. 퍽, 퍽.

필리프 6세 자신 중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귀족들이 시신이 되어 진창 속에 나동그라졌고 영국군은 몸값을 낼만한 포로가 아니면 죄다 죽여 버렸다. 이 전투의 의의는 화려한 갑옷의 기사군이 누더기를 걸친 보병대에 의해 저지됐을 뿐만 아니라 참혹한 타격을 입었다는 데에 있어. 즉 오랜 동안 유럽을 지배해 온 중장 기병대 중심의 전술이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백년 전쟁의 거의 칠팔할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프랑스 기사들은 전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해.

프랑스 기사들은 날카로운 말뚝 뒤에서 활을 재고 있는 잉글랜드의 누더기 보병들에게 늘 돌격을 감행했고 늘 화살의 비에 피로 젖었고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고 전장에 남은 사람들은 다 학살되면서도 기사의 ‘용맹한 돌격’을 포기하지 않아. 한 세대가 지난 뒤 100년 전쟁이 재개됐을 때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와 프랑스 기병대가 맞붙은 아쟁꾸르 전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때 죽어간 프랑스 귀족들은 대개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돌격했고 자신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어가. 아마 소나 곰도 이 모습을 봤으면 “우리도 한 번 덴 불에는 또 데지 않는데.....”하면서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기사들이 그렇게 오류를 되풀이한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가 있을 거야. 기사로서의 자존심도 있을 거고, 평민 보병들에게 기사들이 짓밟혔다는 사실 자체를 기사의 방식으로 설욕하고 싶은 면도 있었을 게고, 비만 오지 않았다면, 진창만 되지 않았다면, 제노바 석궁병들이 제몫만 해 줬다면, 또 기타 등등 뭐뭐 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이길 수 있었다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내 생각으로는 프랑스 기사들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를 혐오한 게 아닌가 싶어. 새로운 양상에 적응하기보다는 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더 미더웠던, ‘새로운 것에 대한 모색’ 보다는 ‘해 왔던 대로의 관례’를 더 존중하는, 우리에게도 만연해 있는 게으름 말이지. 때로 게으름은 파멸의 어머니가 된다. 때로가 아니라 자주. 아니 자주가 아니라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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