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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소공포증 있는 강하늘이 ‘트래블러’ 동료들에게 감동한 이유

  • 입력 2020.03.16 12:07
  • 수정 2021.12.19 14:09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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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도 사라졌고, 일탈도 사라졌다. 코로나19가 만든 풍경은 사뭇 낯설다.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아졌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삶은 멈춘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참 요란하게 멈춰 섰다. 일상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행을 꿈꾸는 일은 어렵다. 이미 지금의 일상은 충분히 일탈적이기 때문이다. 그와 무관하게 이젠 떠나고 싶어도 발길이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교부에 따르면, 3월 14일 18시를 기준으로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입국 금지 및 제한 조치를 한 국가·지역은 131곳에 달한다. 도피는 불가능하다. 애당초 떠날 수도 없고, 간다고 한들 자가격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설령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그런 고난을 굳이 겪을 필요가 없다. 돌아오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시기엔 역시 ‘방콕’이 답이다.

물론 ‘입금 금지’의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논리적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여행 금지 조치는) 국제적인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만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초창기에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지만, 코로나19의 유행을 잡지 못하고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확진자(21,157명)와 사망자(1,441명)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국가가 앞다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입금 금지 및 제한 조치를 취하는 까닭은 공포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방역 능력이 미흡한 국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테지만, 빗발치는 국민의 아우성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인 이유도 포함돼 있다. 지난 14일, 덴마크가 ‘국경 봉쇄’를 선언했으나 그 대상이 외국인에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어찌 됐든 여행의 시절은 끝났다.

 

 

“아까 잠깐 누워있다가 생각이 든 건데, 매일 보는 천장이 달라지는 게 재밌더라고. 집에 있으면 항상 똑같은 천장이잖아. 숙소에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여기 천장은 또 이렇게 생겼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코로나19와 무관한 시기에 아르헨티나로 떠났던 세 명의 여행자, JTBC <트래블러>의 안재홍·강하늘·옹성우는 어디까지 다다랐을까. 열정으로 가득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세계 3대 폭포에 이름을 올린 이구아수 폭포의 장엄함을 만끽한 그들은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건조지역인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Patagonia)에 가기 위해서 말이다.

엘 칼라파테(El Calafate)에 도착한 세 사람은 린다 사장님이 운영하는 유명한 한인 숙소를 찾았다. IMF 직후 이민을 와 정착했다는 사장님은 파타고니아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맛깔스럽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 지역까지 우편배달을 했던 생텍쥐페리부터 칼라파테 나무의 기원까지 세 사람은 사장님의 설명에 홀린 듯 빠져들었고, 어느새 자신들이 파타고니아라는 지역과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마실을 나가기 위해 자전거를 대여한 세 여행자는 아르헨티나 호수(Lago Argentino)로 방향을 잡았다. 등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은 페달을 밟는 다리를 한결 편하게 했다. 호수에 도착하자 파타고니아의 강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센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무한 긍정으로 가득한 세 사람은 강풍에 온몸을 맡기며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호수의 풍광은 넋을 잃을 만큼 찬란했다.

 

 

남극과 가까운 엘 칼라파테의 밤은 늦게 찾아왔다. 오후 8시가 됐음에도 여전히 밖은 환하기만 했다. 세 사람은 저녁으로 파타고니아에 오면 꼭 맛봐야 한다는 양고기 아사도를 먹기 위해 이동했다. 식당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강하늘은 매일 보는 천장이 달라지는 게 재밌다며 여행의 소감을 꺼내놓았다. 집에 있으면 매일 똑같기만 한 천장이 여행 기간에는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양고기로 만든 아사도는 상상 이상의 맛이었던 모양이다. 양고기가 낯선 강하늘도 잡내가 전혀 없는 양고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대장 안재홍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막내 옹성우 역시 뜨거운 리액션으로 화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조금씩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저녁 하늘의 풍경은 보는 사람들의 넋을 잃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아사도와 함께 곁들인 와인의 향에 푹 빠졌을 때쯤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시간이 깊어진 만큼 관계도 깊어졌을까. 강하늘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강하늘은 폐소공포증이 있었는데, 비행기를 탈 때 수면제를 처방받아야 할 정도였고 택시를 탈 때도 창문을 열지 않으면 답답함에 힘겨워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 사실을 알게 된 안재홍과 옹성우는 최대한 배려하며 강하늘의 여행을 도왔다.

“사실 얘기를 해서 난 주변 사람을 더 불편하게만 만드는 거 같아. 신경을 써주긴 하지만 내가 마음이 쓰이더라고. 성우도 자리도 알아서 양보해주고 이러니까 나는 그게 진짜 고맙지. 좀 민망해서 제대로 고맙다는 말 못 했는데 진짜 고마웠어.”

 

 

여행의 매 순간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강하늘은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엘 칼라파테의 풍경에 기대 고백한 것이다. 강하늘은 자신 때문에 동료들이 불편을 겪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는데, 두 사람은 오히려 강하늘이 그런 생각을 할까 봐 걱정할 뿐이지 전혀 문제가 없다며 강하늘의 마음을 편안히 해줬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여행은 사람을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깊게 만든다. 달라지는 천장만큼이나 매 순간이 새롭지만, 그만큼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이토록 여행이 그리운 시간, 안재홍의 내래이션이 귓가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언젠가 다시 떠날 ‘좋은 여행’을 기약하며 지금은 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해가 길어 별빛이 귀한 파타고니아의 밤, 멀리 나른하게 반짝이는 거실마다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맛있는 식탁엔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릇을 비울 때까지 서로 감탄하다보면 민망해서 아껴둔 진심도 어느새 튀어나온다. 우리가 애써 맛있는 걸 찾는 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지금 여기 아끼는 사람들과 만족스러운 음식, 이렇게 좋은 순간이 모이면 좋은 여행이 되겠지. 억지로 잠들 필요 없는 밤, 우리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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