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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조국, 죄질이 나쁘다’는 표현은 어디서 나왔나

  • 입력 2019.12.27 12:17
  • 기자명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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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영장은 기각인데 기각 사유를 놓고 몇몇 언론이 ‘죄질이 나쁘다’ 등의 문구를 넣어 보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길래 팩트체크해 봤다.

0. 복수의 법조 취재 기자들에 따르면 ‘죄질이 나쁘다’는 문구는 영장판사가 공보판사를 통해 기자들에게 공유한 문자에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자들은 소설을 쓴 게 아니라 이를 받아 쓴 것.

1. 영장판사는 구속영장 기각 후 검찰에 기각 사유를 보내게 돼 있다. 지금 인터넷상에서 도는 기각 사유 전문은 검찰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보면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유ㅇㅇ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기는 하나” 부분이 나오는데, 판사가 이걸 ‘죄질이 나쁘다’로 줄여 기자들에게 문자로 공유한 듯하다.

ⓒ구글 검색 결과 캡처

2. 영장을 뜯어보면 주된 기각 사유는 ‘구속해야 할 정도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지 않음’,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음’이다. 그리고 범죄의 중대성 부분에 배우자가 이미 구속된 상태라는 언급이 나온다. 종합해보면 배우자가 이미 구속까지 됐는데 이 사람마저 구속할 정도로 범죄가 중대하지 않다는 판단을 전문 법조인인 영장전담 판사가 내렸다는 얘기다. 이 영장 기각은 딱 이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3. 검찰은 거침없이 진행하던 조국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상당히 난처해진 상황이다. 어떻게든 조국을 ‘나쁜 놈’으로 만들거나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는데, 기자들이 1보 기사에 활용한 ‘죄질이 나쁘다’는 표현보다는 1번에 있는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부분이 더 구체적이고 조국의 평판을 깎아 먹는다고 판단해서 기자들에게 굳이 기각 사유 전문을 공유한 것 같다. 그러나 이후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면 어떤 검사인지 몰라도 이거 상당히 생각 잘못한 거 같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화가 났다.

4. 많은 사람이 정식 재판도 아닌 구속영장 심사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결론을 영장전담 판사가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데 대해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2012년 개정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 51조를 보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할 경우의 처리 방법에 대한 지침이 나온다. 해당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구속영장의 청구를 기각하는 경우에는 구속영장청구서 하단의 해당란 또는 별지에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취지와 이유를 간략하게 기재한 다음 연월일을 적고 서명날인하여 검사에게 교부한다.”

법원은 2006년부터 구속과 관련된 내부 예규 내용을 언론을 통해 굳이 공개하고 있다. 인신구속의 기준을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에 기준을 제시하고 국민의 형사절차진행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담보해, 최종적으로 국민 인권을 보다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아무래도 법원은 영장전담 판사에게 ‘기각 사유를 간략하게 기재’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별도의 교육을 좀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이동 중인 조국 전 장관 ⓒ연합뉴스

5. 한국은 사법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상당히 중요한 사법처리의 몇몇 부분들을 아직도 판사한테 턴키로 맡기는 경향이 있다. 구속사유 심사에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도록 구속 절차가 명문화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물론, 그전에도 같은 기준으로 구속 여부를 판단했었지만, 2008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법적 근거는 없었다.

불필요한 사회 분란을 방지하는 측면에서 좀 더 촘촘히 판사의 재량을 제한했으면 좋겠다. ‘죄질이 나쁘다’는 정식 재판에서나 그러려니 하고 듣는 말이다.

직썰 필진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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