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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풍경①> “나도 알아, 김정은 X새끼인거”

  • 입력 2014.08.18 13:33
  • 수정 2014.08.18 16:39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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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어떤 기준에 들어맞기 위해 몸과 마음을 사린다. 사회나 조직의 '다수'에 속하기 위해서는 표현 방식, 때로는 표현여부 마저 뜻대로 선택할 수 없다. 나 역시 집단에서 배척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타인에게까지 그 화살을 돌리게 만든다.

고함20은 창간 5주년을 맞이해 한국사회의 검열을 주제로 4부작 기획기사를 펴낸다. 1부에서는 뿌리깊은 '빨갱이 콤플렉스'의 영향력 앞에 함구하는 분위기를 다룬다. 2부는 '처녀성'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겪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좌담 형식으로 담는다. 소위 '모태솔로'인 남성들은 연애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조롱당하고 바보취급을 받는다. 3부에서는 이들의 '무죄'를 변호한다. 마지막으로 락과 힙합씬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얼빠'검열과 구분짓기 현상을 분석한다.

기사의 사례들은 우리의 거울 속 모습이기도 하다. 오로지 타인만을, 혹은 오로지 스스로만을 검열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네 개의 주제로 압축했을 뿐, 시대는 늘 새로운 검열을 낳을 것이다. 이 기획을 관통하는 또 다른 줄기는 의사소통의 부재이기도 하다. 검열의 해소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검열의 중심에 '편견'이 있고, 그 뒤에 편견을 쌓아올린 인간이 있다. 이것이 고함20이 포착한 한국 사회 속 검열의 풍경이었다.

제1회 공안예술대상 포스터. 반정부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출품됐다. ⓒ청년좌파 홈페이지

"친한 사람끼리 정치나 종교얘기 하는 거 아니래." 대학생 양희연(가명)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막곤 한다. 매번 격해질 기미가 보여서다." 그는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정치성을 표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양씨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정치 관련 견해를 아예 표명하지 않는다. SNS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 조차 어렵다. 사실을 왜곡을 하는 게시물도 많이 올라온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입장을 취하면 안 되겠다는 압박을 겪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립'인척 해야 한다고 느낀다. "정치적 의견을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싫다. 정치 자체가 파헤쳐보면 부정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이수재씨는 '입학하면 사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막상 대학에 와 보니 정치 얘기를 해볼까 하면 서로 머리 아프다며 피하기 일쑤였어요. 여럿이 아닌 단 둘이 있을 때만 그나마 가능한 것 같아요." 이씨는 그 예로 세월호 참사 관련 대화를 언급했다. "선장과 구조지휘 간부들의 잘못에 대해 여럿이서 논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대화가 1분 30초만에 끝났어요. 총 다섯명이었는 데도요." 그는 서로가 자신의 정치 이념이나 생각으로 말하는 걸 꺼린다고 말했다. 정치적 색깔을 조금만 드러내도 '이 애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결론 내리기 쉽다는 이유였다.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는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해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숨겨야 할 듯한 분위기가 실재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과 장기간의 권위주의 정권의 존재로 인한 빨갱이 콤플렉스"를 그 이유로 꼽았다. 그는 관련한 법과 제도, 시민의식의 변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좌파'로 낙인 찍힐까봐 스스로를 검열하는 분위기에 의식 개선은 가능할까?

한국에서 정치참여는 곧 '불온'이다

ㅎ씨는 2013년 겨울, '안녕들'로 불리는 자보 작성 물결에 동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같은 과의 친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너무 나서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대자보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빨갱이에게 선동 당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중립적'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특별히 앞장서겠다는 생각도, 어떤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결심도 없었던 그는 황당했다. 더러는 애써 대자보 관련 이야기를 화젯거리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창구가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많이들 부담스러워하는 듯 해서 이내 조심스러워졌죠. 이야기 했던 사람들이 몇 안돼요." 일렬로 붙은 자보를 보면서 '지겨워 죽겠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난 4월 열린 제 1회 <공안예술대상>은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 '사상범'의 기준이 너무나 포괄적으로 적용되었던 사건들을 배경으로 기획된 예술대회이다.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의 글을 리트윗 해 수사를 받았던 박정근씨 사건이 그 예다. “어디까지가 반정부적이고, 어디까지가 비정치적인 것인가?”를 슬로건으로 삼는 이 대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북한 뿐만 아니라 파업, 시위 등과 같은 정치적 행동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부문 수상작에는 ㅎ씨처럼 대자보 현상을 겪은 이의 '검열'사례가 등장한다. 애국보수인 친구 '정기', 안녕들 대자보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고민하는 '김성훈(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보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도서관에도 붙었고, 기숙사 게시판에도 붙었고, 자연대 게시판에도 붙었다. 기숙사를 나갈 때 보였고 연구실 문을 열면 보였고 인터넷을 열어도 보였다. 나는 일부러 가던 길을 멈추어 읽는 일이 불온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 대자보를 읽는 내 모습을 볼 것 같았다. 대자보가 붙은 때는 시험 기간이었는데, 시험이 다 끝나도록 대자보는 꾸준히 불어났다." -소설 <이 연설은>, 김성훈 작

이보미(25)씨는 미국산 소고기 논란이 불붙었던 2008년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시위 참여 경험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참여여부를 밝히면 '왜 나서냐'는 말이 먼저 나온다." 정치 관련 화제를 꺼내면 현실, 즉 '니가 해야할 일'이나 신경 쓰라는 말이 돌아온다고 했다. 의제 자체에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니 시위 경험 유무를 물을 때 '대답'할수는 있어도, 먼저 말하기는 힘들다.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과 대화할 때, 단순한 의견표명이나 설득을 목적으로 말을 하고싶어도 어차피 먹히지 않는다. 그냥 말을 하지 않는다. 흑백논리로 나뉘어 욕하는 현실이다 보니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대화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그러면서 이씨는 "할일과 현실이 곧 정치"라고 정치와 삶을 외따로 보는 시선을 비판했다.

박탈당한 ‘좌파’라고 말할 자유

김모씨(22)의 경우,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외부로 비춰질 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주로 보수적인 정권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경우에, '좌파적' 성향을 띄는 행동이나 발언을 할 때 그렇다. "철저하게 감춘다. 군대는 이런 부분이 엄격해서 특급전사 선발이나 승진에서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우수해도 정치적 색깔이 문제가 되어서 무마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사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약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옹호하거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빨갱이’라고 지적하지 않나. 굳이 결론이 나지 않는 가치관 싸움을 해서 감정 상하는 게 싫어 숨기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런 '낙인'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김우영씨(가명)는 애인에게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럽다. "여자친구는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성향이 확고하다. 소위 말하는 '빨갱이'인 것 같은 행동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정확히 어떤 행동인지 정해져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밀양이나 용산과 같은 지명을 좌파와 연결하는 듯 하다. 굳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 시선을 내가 받고 싶지 않다."

검열사회는 끝없이 "김정은 개새끼"를 외칠 것을 요구한다

강민정씨(가명)는 직장에 들어간 이후 정치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대학생 때보다 신경 쓰는게 많아졌다고 했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정치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SNS에도 보는 눈이 많으니까 조심한다. 동료들, 거래처 사람들까지 메신저에 다 뜨니까. 정치적 의견을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박히면 계속 보기 껄끄러워질 것 같다."

그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의견표명을 소위 '빨갱이/좌빨'로 연결하는 인식이 특히 부담스럽다고 했다. "무조건 '좌파'라고 보지않나. 특히 우리나라에선 대대손손 ‘좌파는 곧 빨갱이’로 인식 된다는게 무섭다. 초면 수준의 사람들 앞에선 그 사람이 가진 배경지식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나.” 강씨는 학교와 회사의 ‘소문’도 신경 쓰인다고 했다. “뒷말이 나올까봐 무섭다." 그는 자신의 검열이 이제 막 사회로 나간 사람으로서 내 몸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원 이유미(가명)씨 역시 이러한 단어가 좋지 않은 이미지로 형상화되어있다고 말했다. "'빨갱이'라는 말이 그 상징이다. 종북세력과 빨갱이, 이 단어들 자체가 유행어가 되버린 듯 하다." 이씨는 정치를 주제로 대화하는 경우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내 성향을 드러냈을 때 상대방이 날 선입견을 갖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잘 꺼내지 않기도 한다. 상대방이 대충 어떤 성향인지 파악이 되었을 때 대화하는 편이다. 자신과 다르면 일단 좀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최보희(24)씨는 SNS에서 친한 사람들만 있어 정치성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면대면 상황에서는 피곤해지고 싶지 않아 정치 화제를 차단하는 편이다. 높은 연령대의 사람과 대화할 때 더욱 그렇다. "나이차이가 좀 있는 동료와 이야기하는데 대통령 후보 얘기가 나왔다. 당연히 A후보를 뽑아야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잘 모르겠다'고 하고 의견을 펼치지는 않았다." 최씨에게는 이 이야기가 어떤 전제를 깔고 하는 듯 보였다. 부딪히리라는 예상을 한 것이다.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면 일부러 대강 대답한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어떻게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먼저 조성하곤 한다. 선수를 치는 거다." 그는 이것이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밝혔다.

이택광 교수(경희대학교 영미어학부 영미문화전공)는 '좌파로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스스로를 검열하는 분위기가 실재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치적 대화에 있어서 타인을 검열하는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현실원리를 체득하는 것, 과잉을 제거하고 안전한 욕망만을 거래하는 것을 정상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해준 이들은 대부분 가명을 요청했다. 정치적 검열에 대해 털어놓는 일 마저도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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