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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3) 조선수군이 강했던 이유 - 거북선? 판옥선!

  • 입력 2014.08.17 16:07
  • 수정 2014.08.17 22:23
  • 기자명 우에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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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이 어느 정도의 역할이었을까요?

대부분이 이순신장군 또는 나대용장군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임진왜란(1592)으로부터 무려 180년 전인 태종실록에 귀선(거북이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1415년에 귀선을 해전에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상소문이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에서 사용된 거북선은 단 3척 뿐이며 전라도에서는 전쟁 발발 불과 며칠 전에 한 척이 완성되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고 보고있는 거북선은 모두 상상(^^;)의 작품이며 실물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그림이 발견되어 한 때 학자들이 긴장하기도 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서 그려진 그림이고 온갖 종류의 거북선이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의 자료를 보고 일본인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양한 거북선이 존재할까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후에 거북선이 대거 건조/개량되었고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의없이(?) 말하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버전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 왜군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가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왜군 수군의 전력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무려 17만 명의 병력을 수송해야 했으니 선박은 우리보다 몇 배나 많은 것은 당연하고 부산 앞바다가 왜군의 배로 가득했던 것도 사실일 겁니다. 그렇지만 숫자에 비해 전력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왜군은 해군이 없는 수송단이었고 해전은 육군이 적의 배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 등선육박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보통 일본 전국시대에서는 해적과 계약을 맺고 군대를 수송했는데,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침공(당시표현은 고려징벌)을 위해 해적(왜구)을 흡수해서 수군을 만들었고 지휘관은 거의 모두 해안 지방의 영주가 맡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명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 영주들이 해전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것입니다. 영화 명량에 등장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용인전투에서 우리 5만 명을 단 1600명으로 궤멸시킨 맹장인데 배를 타고 출전했죠. 한산도대첩에서 죽음직전에 살아난 후에 이순신장군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군이 없다 보니 선박도 조선수군에 비해 상당히 작거나 상대적으로 조잡한 수준이었습니다.



조선의 수군은 판옥선이라는 대형선박(전함급)으로 해군만 무려 200명까지 태울 수 있었던 반면에 왜군은 주력전투함이 세키부네라는 구축함이나 순양함급의 중간급 배였습니다. 그래서 영화 명량을 보면 보스급이 타는 아타케부네(선박에 집을 올려 놓았다고 해서 안택선으로 부릅니다. 판옥선과 비슷하거나 약간 작은 배) 주변에 세키부네가 대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력은 세키부네이고 아타케부네는 기함으로 사용했습니다. 영화에서도 세키부네가 대거 달려들죠... 그런데 너무 과장해서 아타케부네 크기로 만들어버렸더군요. 만약 이런 함선의 크기로 포위당했다면 충무공의 기함은 전멸당했겠죠.


실제 체급차이는 일본 전국시대 해전의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의 그림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체급 차이는 이것보다 많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영화처럼 판넬을 놓고 건너가는 장면은 나올 수가 없고 실제 역사에서도 기함에서 전사자가 2명밖에 안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군의 전형적인 진형은 이랬고 영화에서도 잘 재현했습니다. 평소에는 이렇게 옆을 개방하고 있다가 전투 시에 판자 등으로 막는 형태이다 보니 총통을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일본은 대포가 없었나요?

있었는데 배의 구조상 선수와 선미에만 장착할 수 있었고 선체 자체가 대형포를 사용할 수 있는 강도가 아니었습니다. 판옥선은 노송에 나무못을 연결해서 왜선에 비해 상당히 튼튼했습니다. 그리고 판옥선은 배의 밑바닥(선저)이 평평해 제자리에서 좌우로 회전하며 전투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영화 명량에서 좌우선회하며 포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오죠? 제가 세미나 때에 설명했던 내용인데 그걸 재현해서 놀랐었습니다. 대형인데다가 배가 워낙 튼튼하니 갑판에 포대를 올려두고 쏘아도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왜선은 급조를 하느라 구하기 쉬운 삼나무와 철못(판옥선은 나무못)을 사용해 만들었지만 삼나무 자체가 약한데다가 항해를 오래하면 연결부위가 녹이 슬어 충격에 약했습니다. 그리고 왜선은 배밑이 V자 형으로 선회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반면에 왜선은 장거리 항해에 적합하고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었고 달아나는 왜선을 추적하지 못한다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군의 세키부네는 물론이고 (전함급인) 아타케부네까지도 선체가 약했기 때문에 갑판에 포대를 올려두고 쏠 수 없었고 일본이 그린 자료를 보면 끈으로 매달아서 사용했는데 화포크기가 작을 수 밖에 없고 명중도는 기대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도도 다카토라 기함 모습이 보이는데 눈여겨 보시면 저렇게 포를 매달아 놓은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명량에서 왜군이 조총과 포의 중간크기를 들고 다니며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입니다. 큰 총통을 안고 다니며 쐈는데... 우리 화포에 비하면 사거리와 파괴력 면에서 많이 모자랐죠.


4. 조선수군의 전설 = 판옥선+총통+충무공

왜군은 주로 조총(유효사거리 50m)에 의존했던 반면에 조선 수군은 원거리 화기부터 근거리 화기까지 막대한 화력을 자랑했었습니다.



왜군의 세키부네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최대 사거리 500m 전부터 거대한 장군전을 퍼붓기 시작해서 근접하면 대완구로 돌덩이를 쏘아 배에 구멍을 내고 철환으로 대대적인 산탄을 날려 배에 달라붙으려는 왜군을 일거에 쓸어버렸습니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죠? 철환을 대량으로 장전한 후에 근접사격하는 장면이요.



그리고 대형 수류탄인 질려통도 내려 던져 적을 폭사시켰습니다. 이 그림은 우리 무기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인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 마치 서양의 화약통처럼 생겼는데, 실제는 요강모양의 토기였습니다.



화포사용에 대해 묻지마(?) 수준의 전설이 많은데, 사실과 다릅니다. 예를 들면 충무공이 종이장약을 개발해서 장탄속도를 크게 높였다는 소리까지 하던데... 그 당시에 그럴 리가 없죠. 적당히 잰 화약의 절반을 가늠구멍에 맞춰 집어넣고 심지와 격목을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해전 초반에 아주 짧게 지나갑니다. 제가 '이런 건 고증을 기가 막히게 했네?'라고 감탄했던 부분입니다.

아! 이렇게 설명하면 마치 총통이 모든 것을 다한 것처럼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중장거리에서 왜군의 배를 부수고 침몰시킨 것은 총통이었지만 실제 왜군을 사살한 것은 활과 화살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사진과 같은 고급 합성궁은 제작기간이나 비용이 대단해서 일부만 장비할 수 있었지만 유효사거리가 조총(약 100m 내외)보다 2배 이상 길고 연사속도는 10배 이상 차이가 났기 때문에 목표물을 따로 분리할 수 있는 해전에서는 대단한 위력을 나타냈을 겁니다. 물론 일반 사수가 장비한 저급 합성궁이나 죽궁 등은 위력이 훨씬 떨어졌겠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판옥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쏘았기 때문에 저급 활도 충분한 위력을 나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는데... 영화 명량이 깨알같은 고증은 잘 맞췄지만 큰 줄기는 상상의 산물입니다. 소드마스터부터 구루지마까지... 진짜 해전이 그랬다고 오해하지 마시고, 캐리비언의 해적과 같은 상상 속의 액션으로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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