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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가?' 아역배우도 어린이 노동자다

  • 입력 2016.08.14 14:34
  • 수정 2016.11.15 14:57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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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과 재키 쿠건

‘노동’과 ‘어린이’를 결부시키기란 쉽지 않다. 국제 사회에서 어린이 노동이 꽤나 입에 오르내렸지만 한국사회에서 어린이 노동은 표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올라와선 안 되는 금기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을 보면, 만 13세 이하의 어린이 노동은 금지되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풀어 해석하면 결국 어린이 노동은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연기’ 역시 노동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한국에서 어린이 노동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화계와 방송계다. 그들은 부모의 의지 혹은 호기심에 처음 촬영장에 발을 들임으로써 연기를 시작한다. 배우 유승호도 어머니가 패션 잡지에 사진을 넣으면서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역으로 칭해지는 어린이들의 연기를 단순히 자기계발로 보기 힘든 이유는 그들의 노동을 통해 이윤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김유정, 여진구, 김새론 등 ‘스타’로 칭해지는 아역들도 있지만 이름조차 거론되지 못한 아역들도 있다. ‘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나이대는 대략 0세부터 3세까지, 자신이 연기를 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말한다.

ⓒ 영화 '군도'

최근 개봉한 영화 ‘군도’에서 열연을 펼친 아역도 이처럼 갓난아이였다. 이 ‘갓난아역’의 영화 속 역할은 주인공들의 액션 속에서 천에 쌓인 채 우는 것이었다. 그 사이 아이는 위험천만한 영화 촬영장에 그대로 노출된다. 극중 강동원이 천에 쌓인 아이를 안고 하정우와 싸우는 장면에서는 ‘아기 인형’를 사용하겠지만, 먼지와 위험한 장비들로 가득한 곳에 아이가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노동’을 하는 것과 같다. 윤종빈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두 살배기 아이의 연기 열연에는 ‘뽀로로’ 영상이 있었음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울고 웃음이 영화에서는 그저 ‘좋은 그림’ 중 하나가 된다.

아이의 연기가 노동착취로까지 여겨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기라는 이름으로 가만히 있고 우는 행위들이 아이 개인의 의지가 전혀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만 13세 이하 어린이의 노동에 관한 금지 사항 외에는 어떤 법적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행해지는 어린이 노동은 더욱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방치한다.

최근 아역들의 인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오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난 6월 24일자 <일요신문>에선 ‘‘아역배우 ‘19금 촬영’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기사를 통해 아역 연기자들이 영화 속 폭력적인 장면을 연기하면서 겪을 정신적인 상처와 트라우마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없음을 지적했다. 또 기사는 1993년 할리우드에서 아역 배우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탄생한 ‘쿠건법’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도 이 같은 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는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청소년 밤샘 촬영 금지법’를 들 수 있다. 이에 따르면 15세 미만은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원칙적으로 연예 활동을 할 수 없으며 주당 촬영 시간도 35시간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한 법안이라는 우려와 아이들의 학업이 이뤄지는 낮 시간에 모든 촬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습권’을 무시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근 볼리비아는 10세 어린이의 노동을 합법화해서 인권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에 볼리비아 정부는 “우리가 현실과 법, 권리와 국제조약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며 이 법이 극심한 빈곤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볼리비아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들이 구두를 닦거나 농장에서 일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 즉, 볼리비아 정부는 어린이 노동의 합법화를 통해 볼리비아 어린이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상황에서 노동을 하게하고 또 이를 통해 빈곤을 퇴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볼리비아의 해결 방안이 실제 빈곤 퇴치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아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함으로써 생겨날 여러 ‘보호장치’들을 생각하면 사실상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아역 연기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도 바로 갓난아이를 포함한 아역 연기자들을 ‘어린이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린이와 노동의 연결고리를 부정하면서 어린이를 노동 현장에 그대로 두는 것의 용인은 위험 속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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