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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경심 교수 구속 소식에 충격받은 이유

  • 입력 2019.10.24 17:14
  • 기자명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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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온 정경심 교수에게 몰리는 취재진 ⓒ연합뉴스

0. 24일 새벽, 정경심 교수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정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이며 검찰의 조 전 장관 범죄 혐의 조사와 관련된 핵심 인물 중 하나다. 법원은 “범죄 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현재까지의 수사 경과에 비춰 증거인멸 염려가 있으며 구속의 상당성도 인정된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연합뉴스

1. 범죄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된다

구속영장 발부 뉴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범죄 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된다”는 문구는 상당히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긴급을 요하는 체포영장에 쓰일 때와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법원실무제요> 형사편을 보면 구속 사유로서의 범죄 혐의의 상당성은 유죄 판결의 경우처럼 고도의 증명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의자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깨뜨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범죄 혐의를 일단 수긍할 수 있을 고도의 개연성과 구체적 소명자료가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의 주장에 맞서 피의자가 진실을 다퉈볼 만한 여지가 있는 혐의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안 치는 게 정상이다. 정 교수의 경우 지금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를 봐도 검찰이 구속영장에 적시한 11개 혐의 중 절반 정도는 충분히 다퉈볼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판단이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뭐 이 부분은 차후 재판에서 밝혀질 내용이다. 아마도 정 교수 측은 검찰이 이번 영장에 적은 혐의로 추가 기소하기 전에 구속적부심 신청을 할 것이다. 구속적부심이란 피의자의 구속이 합당한지 법원이 다시 한번 따져보는 절차다.

정경심 교수가 재직 중인 동양대학교를 압수수색 중인 검찰 관계자 ⓒ연합뉴스

2.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

구속영장은 판사 마음대로 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원에는 이와 관련한 ABC를 정리한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라는 참고자료가 있다. 이 문서 48조에 따르면 증거를 인멸할 염려는 ▲ 인멸의 대상이 되는 증거가 존재하는가 ▲ 그 증거가 범죄사실의 입증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가 ▲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게 물리적·사회적으로 가능한가 ▲ 피의자가 이 건의 증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압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돼 있다.

영장이 발부되니까 사람들이 정경심 교수가 빼돌린 것으로 알려진 컴퓨터와 노트북 얘기를 많이 한다. 우선 컴퓨터의 경우 정 교수는 “개인적으로 PC를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며 동양대학교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던 날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임의 제출한 바 있다. 이 컴퓨터에 대한 증거인멸 시도는 하드디스크 포렌식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굳이 구속해야 할 이유가 되긴 어렵다.

노트북은 검찰이 꼽은 핵심 증거인멸 대상이다. 동양대 CCTV를 보면 정 교수가 노트북 가방을 챙겨 사라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 노트북 어디 갔냐는 것이 검찰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해당 노트북 가방은 서류를 담아서 쓰던 것이고 노트북은 원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여기서 검찰이 정 교수의 행위를 증거인멸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노트북이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증거인멸 여지가 있어서 구속해야 한다면 증거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검찰이 명확하게 밝혀줘야 한다. 이 부분도 현재까지는 뚜렷하지 않고 누구 말이 맞는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구속영장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핵심 증인과 말을 짜 맞출 가능성이다.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인 조범동(조국 전 장관의5촌 조카)은 이미 구속돼 구치소에 가 있다. 앞서 70차례의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인멸할 증거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말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서울 구치소로 접견 가는 조국 전 장관과 아들 ⓒ연합뉴스

3. 나는 정경심 교수와 일면식도 없다. 조국 장관의 정치적 옹호자도 아니다. 그러나 어제 구속 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검찰이라는 국가권력기관을 상대로 한 법정싸움에서 일개 시민이 발휘할 수 있는 법적 방어권이 아직도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의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무죄추정과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왜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냐면 피의자를 구속하면 신체의 자유가 박탈되고 방어권 행사에 중대한 제약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구속된 피의자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을 확률은 2% 미만이라며 이번 구속영장 발부의 진실성을 높게 평가한다. 앞뒤가 뒤바뀐 얘기다. 영장 전담 판사의 판단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피고인의 방어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않기 때문에 유죄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구속은 형벌이 아니지만 인신을 제약하니 사실상의 형벌이나 다름없다. 재판도 아니면서 국가기관이 형벌이나 다름없는 조치를 취할 때는 양자의 말을 공정하게 듣고 충분히 숙고한 후에 적절한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 굳이 구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구속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의 영장담당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근거와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상투적 문구만 적어 내보일 뿐이다. 이런 것은 부당하다. 이번 정경심 교수에 대한 구속 영장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 일은 모르니, 나중에 혹시 내가 구속 심사를 받게 될 수도 있는데 이런 취급은 절대 당하고 싶지는 않다. 정 교수의 변호인이 14명인데, 아마 나는 변호사 한 명도 겨우 쓸 것이다. 그러니 더 높은 확률로 속절없이 구속되지 않을까. 왜 갇히는지 이유도 모른 채로 말이다.

ⓒ연합뉴스

4. 사실 고백하자면 최근 아버지가 하지 않은 일로 억울한 송사를 하나 당했다. 좋은 변호사를 구하고 여러 가지 발 빠르게 선제 대응해서 결국 검찰에 기소되는 것은 막았지만, 과정이 상당히 힘들었다. 다른 직업에 비해 절차와 요점을 좀 더 알고 있는 기자 출신 아들이 없었다면 내 아버지 역시 구속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나도 내게 그런 스펙타클한 일이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기더라. 그 뒤로는 이런 법 진행 절차의 단계 단계들을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정경심 교수의 구속 문제를 시민의 시각에서 한번 바라봐주면 좋겠다. 생각보다 법원과 기소, 검찰과 구속은 우리 삶 가까운 데에 있다.

직썰 필진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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