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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설리가 괜찮을 거라 믿은 걸까?

  • 입력 2019.10.16 11:04
  • 수정 2019.10.16 14:02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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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에게 솔직하려 했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14일 설리(본명 최진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케줄을 앞두고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이 된 매니저가 설리의 자택을 찾았던 모양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설리가 자필로 쓴 노트를 발견했고, 진위 및 내용을 분석 중이라 밝혔다. 침입 흔적이 없는 등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아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설리는 타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포털사이트,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에 기댄 채 설리를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욱 대담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오히려 팬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 염려에도 설리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며 나아갔다. 그러나 악플들은 그를 야금야금 파괴했던 모양이다.

JTBC2 <악플의 밤>의 MC를 맡은 설리는 악플에 고통받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대인기피증을 앓았고, 공황장애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이런 상황에도 가혹한 언어들이 무자비하게 그를 덮쳤다. 누구라도 그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악플 못지않게 설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던 존재가 또 있다. 바로 언론이다. 지금은 얼굴색을 싹 바꾸고 추모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부 언론들은 설리의 소셜미디어를 기웃거리며 논란이 될 법한 사진을 옮겨 나르기 바빴다. 설리가 속옷을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 확인하려 들었고, ‘노브라’ 사진을 유포하는 데 혈안이 됐었다. 온갖 선정적인 기사와 클릭 수를 올릴 제목을 달아 설리 공격에 기꺼이 동참했다.

설리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건 언론이었다. 없던 논란도 만들고, 설리의 행동을 기행으로 못 박았다. 그 현장에 어김없이 악플이 쏟아졌다. 어쩌면 언론은 악플을 쓰는 누군가보다 악랄했고 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임을 어찌 묻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반성은 결국 나를 향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가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순간에도 안일했다. 왜 괜찮을 거로 생각했을까. 담담히 웃는 모습에 안도했던 것일까. 그가 잘 싸워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내 깜냥이, 내 몫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여겼던 걸까.

누구보다 솔직했던, 세상을 누구보다 용감했던 설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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