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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찬다’ 이만기 행동이 보기 불편했던 이유

  • 입력 2019.09.10 14:48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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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리얼을 표방한다고 해도 방송은 방송이다. 대상이 밀착해 그 민낯까지 들여다보는 관찰 카메라도 대상의 실체를 살피지 못한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한 그 누구도 온전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결국 실제와 비슷하거나 또는 전혀 무관한 일정한 캐릭터가 담기게 되고 그 캐릭터가 재가공돼 리얼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게 된다. 그때 리얼은 ‘사실이라 여겨질 법한 리얼’에 불과하다.

그런데 JTBC <뭉쳐야 찬다>는 조금 다르다. 우선, 전문 예능인이나 방송을 업으로 하는 연예인이 주인공이 아니다. 스포츠인들로만 꾸려진 그들은 (아직까진) 능숙하지 않다. 무엇보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하는 동안만큼은 스스로를 꾸미거나 왜곡하기 어렵다. 적어도 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순간만큼은 날것에 매우 가깝다. 그래서 그 안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더욱 실제처럼 받아들여진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상대편의 중거리 슛에 골을 먹힌 어쩌다 FC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실점을 하자 팀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63년생들로만 구성된 서울 63FC의 실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이만기와 같은 57세라는 생각에 만만하게 봤던 어쩌다 FC는 조직력이 뛰어난 상대편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넋이 나가버렸다.

“(동현아) 너 중거리슛 먹히면 안 된다.”

“또 앞에 가운데 서 있다.”

그때였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중앙 수비수 역할을 맡은 이만기는 골키퍼 김동현에게 계속해서 지적을 했다. 중거리슛을 먹히면 안 된다고 질책했고 위치를 문제 삼으며 타박했다. 정작 첫 골을 먹힐 당시에 몸을 피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한 번의 언급도 없었다. 또, 중거리슛 찬스를 내어준 수비수들의 잘못은 생각지도 않는 듯했다.

경기 내내 이만기의 잔소리가 이어졌고 경기가 진행될수록 김동현은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다. 안 그래도 실점에 대한 압박이 큰 상황에서 하늘 같은 선배들이 격려를 해주진 못할지언정 도리어 구박만 하니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고독한 골키퍼의 숙명이라기엔 너무도 안타까웠다. 운동은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기 마련인데 이미 김동현의 몸과 마음은 얼어붙어 있었다.

“상대팀은 축구를 이해하고 축구를 하고 있고 우리는 축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우리 처음 첫 경기하던 스타일로 다시 돌아갔어. 남 탓하고 자기 거 회피하고 얘기도 없고 서로 응원도 안 해주고.”

전반전이 끝나자 묵묵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안정환 감독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안 감독의 말을 이해했던 걸까. 후반전이 되자 팀 분위기가 그나마 나아졌다. 선수들은 조금씩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서로를 북돋아주며 게임을 풀어나갔다. 최종 스코어는 2:7로 게임 내용은 썩 좋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한 경기 2골을 뽑은 쾌거를 거뒀다.

경기 후 팀 미팅 시간이 이어졌다. 내내 침묵하고 있던 김동현은 끝내 골키퍼를 그만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골키퍼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그는 실점을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대신 나이가 좀 있으신 형이 골키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만기 형이 뭐라고 많이 하셔 가지고…”라 덧붙였다. 김동현은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실수가 아닌 부분까지 지적을 하는 것에 대해 아쉬웠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뭉쳐야 찬다>를 보며 이만기의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방송 초반에 이만기는 화를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뭉쳐야 찬다> 제작진은 이를 캐릭터화하며 절에 가서 수양을 하는 에피소드로 쓰기도 했다. 또, 심권호와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하는 관계를 형성했지만, 결국 심권호를 구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김동현을 잡도리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뭉쳐야 찬다> 내에서 이만기는 맏형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동생들에게 든든한 존재가 돼 주기보다 언성을 높여 윽박지르기 바빴다. 후배들을 다독이고 보듬기보다 힐난하고 구박했다.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자존심을 뭉갰고 불필요한 잔소리로 팀원들의 의욕을 깎아먹었다. 팀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와해됐다. 아쉬운 대목이었다.

질책은 의외로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격려와 응원이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 사실을 어쩌다 FC의 맏형 이만기가 하루빨리 깨닫길 바란다. 수도 없이 사람을 잡으라고 외치는 그가 되려 사람을 놓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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