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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청춘들의 '가난한 사랑'

  • 입력 2014.08.02 20:02
  • 수정 2014.08.02 20:06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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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삼포세대'를 연기했던 남궁민

‘연애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흔한 말은 진실일까? 돈이 많으면 연애에 그나마 가까워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나온 「최근 미혼 인구의 특성과 동향: 이성교제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는 이 사실을 최소한의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 보여준다. 설문조사에는 1500명의 18~49세 미혼 남녀가 전화조사를 통해 참여했다.

미혼 인구가 '솔로일 확률'이 경제적 능력에 의해 차등 분배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졸 이상 남성의 37.2%, 여성의 38.4%가 이성교제 중인 데 비해, 고졸 이하의 경우 남성 22.4%, 여성 24.5%만이 '솔탈'(솔로탈출)한 상태였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 하지 않고 있는 경우보다 교제 비율이 10% 이상 높았고, 연소득이 2500만원을 초과하는 남성 40% 이상, 여성 50% 이상이 커플인 반면 연소득 1500만원 미만인 남녀가 커플인 경우는 30%에 미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2030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모두 포기해버렸다는 삼포세대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 면이 있었다. 양육비가 필요한 출산이나 거금이 드는 결혼과 달리 연애는 그나마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만날 돈이 모자라다는 주위의 친구들도 데이트 비용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연애 감정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신경림 시인의 시 한 구절은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한 마디였다.

하지만 이제는, 연애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돈'이 정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또 일부는 스스로 연애를 포기해버려야 할 지경에까지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고서에서 보여주듯, 오늘날 연애할 수 있는 기회 자체는 계급적 변수들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막말로 돈 없는 이성과 썸을 타고 싶어하는 남녀의 비율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일베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 현상'을 연애도 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루저의 출현과 연관짓는 논의들도 나온다.

2030세대가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착각은 사랑과 연애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오늘날 사랑과 연애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사랑은 나 혼자 시작해서 나 혼자 끝내도 되지만, 연애는 정말로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연애/이성교제라는 관계의 의미가 이미 중산층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주의가 극한까지 달한 한국사회에서 사랑은 연애의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매개로 한 교류만으로는 연애라고 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연애는 남녀가 그냥 밥을 같이 먹는 게 아니라, '좋은, 비싼' 밥을 같이 먹는 것이 되어버렸다. 기념일에는 비싼 선물과 분위기 있는 이벤트가 있어야 그게 연애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미디어와 기업들은 소비주의적이고 중산층 중심적인 연애의 개념과 이미지들을 전방위적으로 유포한다. 개인들이 스스로의 감정까지 통제하고 검열하도록 만드는 소비사회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돈이 많을수록 연애를 더 많이 한다는 팩트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청년들이 자본주의적인 연애 개념을 내면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돈이 없으면 연애를 할 수 없다' 혹은 '돈이 생길 때까지 연애를 참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지레 청년들이 이성교제 자체를 단념/포기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계층별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성교제를 하지 않고 있는 미혼 인구 중 이성교제 자체를 희망하지 않는 경우가 10명 중 4명이나 된다. 개인적 성향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역시 핵심적인 연애 단념의 이유는 '돈'이 지목된다.

더구나 이성교제를 희망하는 비율도 돈과 관련된 변수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 경제활동 중인 경우에 비해 연애 자체를 단념한 비율이 남성은 11.7%, 여성도 6.4% 더 높았으며,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연애 단념자'의 비율이 남성이 9.5%, 여성은 무려 18.2% 더 높았다.

출처: 노동당 정치신문 R

앞서 신경림 시인의 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보고서의 내용은 오늘날의 청춘들이 자신들의 가난함으로 인해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것, 혹은 더 나아가 단념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 말고도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고 있다. 바로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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