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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가전사> 영화 '명량' 개봉 특집(1)

  • 입력 2014.08.01 10:22
  • 수정 2014.08.01 13:33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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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에 영화 <명량>이 개봉한다.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명량> 개봉을 벼르고 있다. 아마 개봉하자마자 출동해서 볼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날짜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명량해전 얘기를 해 볼까 해. 영화 보기 전 예습이라고 해 둘까.

우선 명량 이전을 보자. 7월 16일 칠천량 해전으로 세계 최강 조선 함대는 일순간에 붕괴됐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 불타 버린 건 아니고 경상 우수사 배설의 함대는 요령껏 빠져 나왔고 다른 배들도 꽤 탈출했지만 재조직되지 못했지. 이순신이 후일 함대를 신속하게 재건할 수 있었던 건 새로이 건조한 것들도 있겠지만 여기 저기 짱박혀 있던 찾아낸 이유가 클 거야. 그러나 둘러치건 메치건 조선 함대가 결딴난 건 맞았어.

7월 18일 이순신은 칠천량의 소식을 들어. 권율이 와서 “이 일을 어쩌면 좋소.”하고 하소연을 하거든. 어쩌긴 뭘 어째 당신이 원균 등을 곤장쳐서 떠밀었잖소! 하고 싶었겠지만 이순신은 이렇게 대꾸한다. “제가 바다로 나가 보지요. 일단 뭘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은 권율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지. “그래 주시오. 제발 그래 주시오.”

이순신은 경상도 삼가를 떠나서 단성 곤양으로 나가 후일 그가 죽는 노량 앞바다까지 나가 경상 우수영 함대를 만난다. 거제 현령 등 장수들은 이순신을 보고 엉엉 운다. 울음도 터져 나왔겠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거야. 수십 억 부자가 빚보증 때문에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하고 빨간 딱지가 온 집안에 나붙은 기분이랄까.

이순신도 기가 막혔을 거야. 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울지만 자신은 울음을 터뜨릴 여유조차 없었겠지. 경상 우수사 배설은 뒤늦게 찾아와서는 원균 욕을 실컷 한다. “원균의 패망한 일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난중일기)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얘기가 시험 본 뒤 틀린 문제를 두고 통분해 하기다. 지금은 원균이 어떻게 죽었는가보다는 당장 처참하게 흩어진 군대를 어떻게든 끌어 모으고 도망간 배들을 나오게 하고 생존 본능으로 눈에 핏발선 백성들을 묶어 세우는 일이 더 급했다고. 한산도의 조선 수군이 없어졌다면 남해안은 일본군의 연못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아무 벼슬도 없이 동분서주하던 이순신에게 어명이 떨어진다.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하라는. 이 교서에서만큼은 선조 임금은 바짝 엎드린 모습을 보인다. “하늘의 뜻” 같은 거 따지지 않고 통탄해. “지난번 그대의 지위를 바꾸어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게 한 것은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비롯한 일이었거니와 오늘 이처럼 패전의 욕됨을 당하게 되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래 다른 사람은 할 말이 많아도 선조 임금 당신은 감탄사 한 마디도 할 자격이 없지. 이순신은 불만을 터뜨릴 새도 없었어.

이미 일본군은 남해 바다를 휩쓸고 있었어. 심지어 한때 이순신의 본영인 전라 좌수영이 있던 여수와 순천 지역까지도 일본군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어. 전라도 병마 절도사는 무기와 식량을 불태우라는 청야작전 명령을 내렸고 이순신은 그 와중에 불태우려는 곡식을 빼앗고 무기를 회수하면서 전라우도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닌다. 난중일기를 보면 눈물겨울 지경.

“패잔병들에게 말 세 필, 그리고 활과 화살을 빼앗아 왔다.” “창고에 지키는 사람은 없고 곡식은 있어 군관을 시켜 지키게 했다.” “무기를 들고 오지 않은 우후 이몽구를 곤장을 쳤다.”

위험한 순간이었어, 이미 일본군은 마음대로 전라도 일대를 휘젓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일본군과 엇갈리기도 했으니까. 군관 몇 명에 기십 명 군대와 함께 무기와 병사 찾아 삼천리 하고 있던 이순신이 허무하게 죽어 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

그렇게 악전고투 끝에 12척의 함대를 수습하지만 이순신도 암담했을 거야. 그 역시 당황하고 있었어. 당포의 어부가 “적이 쳐들어온다.”고 소문을 내가 이순신은 당장 그 목을 베게 한다.하지만 다음날 적의 출현 보고가 이순신에게 들어와. 당포의 어부는 사실을 말했던 거였지. 앞뒤 알아보지 않고 군심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정보 제공자를 죽여 버린 일은 전쟁 초기 공황 상태의 조선군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야. 근데 침착하고 신중하기로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샀던 이순신이 똑같은 일을 저지른 거야. 이순신은 어부를 죽인 뒤 “군심이 안정됐다.”고 썼지만 다음날 “왜군이 진짜로 옵니다.” 하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 그나마 남은 조선군의 ‘군심’은 크게 흔들렸을 거다. “맙소사. 진짜였구나.”

이순신은 적의 선발대와 교전을 벌였고 대함대가 몰려오고 있음을 알고는 항상 하던 대로 그가 싸울 곳을 스스로 정한다. 명량 바다. 얼마전 세월호 사건 때 맹골수로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강한 곳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왔었지. 첫 번째로 강한 곳은 어디? 바로 명량이었어. 우리 말로 울돌목. 너무 빠른 조류 때문에 파도가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울돌목이라는 그 바다.

“아직 신에게는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상소를 올린 바 있는 이순신이었지. 그는 이런 말을 해. “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오만하기까지 한 문장이고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장계야. 더구나 왕조국가에서 “내가 누구? 내가 해결하으리.” 식으로 결기를 부리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지. 하지만 이순신은 그렇게 장계를 보냈다.

자신감?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아. 나는 오히려 제발 이전처럼 나를 건들지 말고 맘대로나 한 번 싸울 수 있게 해 주시오! 하는 피맺힌 항변처럼 들려. 이 장계를 올리기 전에 “수군이 얼마 안 되니 육지 올라와 싸워라.”는 어명을 받은 참이었거든. 또 이걸 따르지 않았다고 “무군지죄”니 “부국지죄”니 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조정에 들어앉아 있었거든.

더해서 수군을 폐한다면 육전은 더욱 가망이 없었어. 알다시피 우리나라 큰 강은 죄다 서해 바다로 흘러들잖아. 금강 타면 공주는 그냥 가는 거고 한강으로 흘러들면 충청도 강원도까지 가고 대동강으로 가면 평양까지 뱃놀이하는 거거든, 그 지경에서 아무리 얼마 안 되지만 수군을 폐하라니. 이 명령은 이순신으로 보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지. 안되는 수군 떠맡아서 좋을 일이 뭐겠어. 하지만 이순신은 열 두척으로라도 막겠다고, 그게 내 책임이자 능력이라고 오금을 박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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