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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베의 책임을 사나에게 묻고 싶지 않다

  • 입력 2019.08.08 17:23
  • 수정 2019.08.09 14:44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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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누가 나한테 '일본이 싫으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의 무엇이 싫으냐 물으면 정확히 답할 수 있다. 나는 아베 정권의 뻔뻔한 대외정책과 혐한을 부추기는 일본 우익이 싫다.

나는 일본 음식과 공포영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일본을 좋아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앞서 말했듯 나는 아베가 싫고 일본의 그밖의 것들에 각기 다른 선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는 일본이 싫어'라고 선언해버린다면 초밥을 먹을 때마다, 영화를 고를 때마다 고민에 빠질 것이다. 요즘 같은 때라면 더더욱. 이런 곤란함은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할 때 발생하는 오류다. 일본인 누군가가 '나는 한국이 싫어'라고 말하는 순간 감옥에 있는 박근혜와 나는 자연스럽게 한몸이 된다. 내가 '일본이 싫어'라고 말한다면 일본의 누군가가 같은 곤경에 빠지게 되겠지. 내가일본이 좋아혹은일본이 싫어라고 말하는 순간 아베 신조와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나의 호오는 뭉개지고, 둘은 내 머릿속에서 기괴하게 합쳐진 괴물이 된다.

오타니 쇼헤이(현 LA 에인절스) AP=연합뉴스

나는 아베의 경제보복 앞에서 곤란을 겪고 있을 반도체 산업 종사자들에게 연대감을 느낀다. 한편 아베 외교의 또다른 피해자인 일본 소재산업, 여행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연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일본땅 어딘가에서 아베의 군국주의 드라이브에 맞서고 있을 일본인에게도 같은 종류의 연대감을 느낀다. 아베가 폭주할수록 그들은 불매가 아니라 연대의 대상이 된다.


유튜브 캡처

나는 아베의 대외정책이 철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베와 불특정 다수의 일본 시민을 한 바구니에 담아 공격하는 일에는 동참하지 못하겠다. 박근혜와 내가 한팀이 아닌 것처럼, 그들은 한팀이 아니니까. 그런 일은 열심히 할수록 선의의 피해자가 늘어난다.

걸그룹 트와이스에서 일본맴버 사나를 퇴출시키자는 주장과 유니클로를 입지 말자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같다.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어째서 아베의 대외정책과 1도 관련이 없는, 아베라는 정치인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를 사람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베의 책임을 초밥이나 오타니, 사나에게 묻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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