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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인사 등 KT 임원직을 탐내는 이유

  • 입력 2019.07.03 14:43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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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주인은 있다. 많다. 그런데 없는 것과 같다. 주주 한 명 한 명의 권리라고 해봤자 전체에 견주면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이 주인 자리를 대신한다. 재계 서열 10위권. 계열사 36개. 임직원 2만 3천 명. 매출 23조 4,300억 원(2018년). 이런 굴지의 대기업이 그렇다.

취약한 지배구조에 기생하는 탐욕들

KT 얘기다. 2002년 한국통신이 민영화되면서 출범한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하지만 지분율은 한 자릿수. 대신 외국계 펀드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외국인 지분을 모두 합하면 절반에 가깝다. 외국계 주주들이 노리는 건 단지 돈. 배당 잘 해주면 그만이다. 이 때문일 것이다. KT의 배당률이 상장기업 평균보다 3배 정도 높은 이유가.

KT CEO 자리에는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CEO추천위원회’에서 후보자로 낙점받은 후 주총 결의를 득하면 된다. 추천이 결정적이다. ‘CEO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전원(8명)과 사내이사 1인으로 구성된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주총 결의로 선임되며, ‘사외이사추천위원회’의 구성은 ‘CEO추천위원회’와 동일하다. 9명의 이사진을 움직이는 자가 수장 자리를 꿰차는 구조다.

오너의 부존재, 경영을 이끌 대주주가 없는 지분 구성,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는 통신 기업, 오랫동안 공기업이었던 전력 등 KT는 특이한 정체성을 가진 기업이다. 그래서 외부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민영화 이후 17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장 나가!” “싫어!” “그럼 검찰 보낸다”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권력은 KT를 탐했다. 재계 12위 기업을 주물러보겠다는 탐욕 때문에. CEO는 감옥 가는 것도 불사하며 자리에 집착했다. CEO에게 부여되는 엄청난 권능과 예우, 급여와 성과급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칼바람이 불며 목불인견의 참극이 연출되곤 했다. 1기 CEO인 이용경 회장만 중도 사퇴 없이 제 임기(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마쳤을 뿐이다.

2기 CEO인 남중수 회장 때부터 기막힌 일이 꼬리를 물었다. 남 회장은 자신의 임기 종료보다 8개월이나 앞서 주총을 연다. 자신의 재선임을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재선임에 성공한 남 회장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무렵 서둘러 3기 CEO에 취임한다.

왜 그랬을까. 새 정권이 들어서도 막 새 임기를 시작한 자신을 어쩌지는 못할 거야, 이런 일말의 기대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8개월을 버리는 대신 3년을 얻어보려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CEO 자리에 단 하루라도 더 머물려는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권은 연달아 ‘얼른 내려와’ 사인을 보냈다. 그래도 꼼짝 안 하자 ‘살아있는 권력’은 검찰이라는 ‘칼’을 뽑았다. 검찰은 남 회장을 날려버릴 단서(배임수재 혐의)를 찾아냈고, 남 회장의 자리는 그 칼에 의해 잘려나갔다. 남 회장은 구속수감 되기까지 버티다가 사퇴를 선언했다.

언제나 권력에 순종하는 이사회

그 빈자리에 ‘MB맨’이 들어섰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이사회는 단지 거수기에 지나지 않았다. 4기 CEO 이석채 회장. 그의 힘은 막강했다. KT와 KTF를 통합하고 초대 통합 CEO가 됐다. 재선임도 순조로웠다. 2012년 3월 5기 CEO에 취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의 호시절은 막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는 노골적이었다. 임기 2년이나 남은 이 회장을 향해 직설화법을 구사하며 ‘내려와’를 외쳤다. 남 회장처럼 이 회장도 버텼다. 내려오라는 호령 소리가 큰 만큼 이 회장도 세게 나갔다. 공개적으로 “자진사퇴는 없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자 검찰이라는 ‘칼’이 KT로 날아갔다. 검찰이 찾아낸 혐의는 100억 원대 배임과 11억 원대 횡령. ‘칼’은 이 회장의 기를 단박에 꺾었다. 그는 사퇴를 선언했다. 자신을 향한 칼날이 조금이라도 무뎌지길 바라며.

찍혀나간 자리에 새 사람이 앉는다. 권력에 순종한 이사회 덕분이었다. 2014년 1월 6기 CEO에 선임된 황창규 회장. ‘최순실 게이트’에 다양하게 연루돼 ‘최순실의 부역자’라는 지탄까지 받게 된다. 이어 박 전 대통령 탄핵. 황 회장에게 대형 악재였다. 하지만 2017년 1월 그는 황교안 대행체제를 틈타 재선임에 성공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 후인 2018년 초 경찰이 황 회장을 조사한다.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산 뒤 이를 되팔아 만든 돈 4억 3천여만 원을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수사 중인 사건이다. 이뿐 아니다. 조세포탈, 배임, 뇌물, 채용 비리 등등 황 회장을 둘러싼 혐의는 다양하다.

시급 1백만 원 사외이사는 ‘보험용’?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인사들의 이름이 이사명부에 등장한다. 시점은 황 회장 관련 수사가 진행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강철 사외이사(2018년 3월 취임)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비서실 시민사회수석, 김대유 사외이사(2018년 3월 취임)는 같은 정부 청와대 비서실 경제정책수석이었다. 또 유희열 사외이사(2019년 3월 취임)는 김대중 정부에서 과기부 차관을, 노무현 정부에서 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우연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기막힐 만큼 공교롭다. 혹여 ‘보험’이나 ‘구명 로비’ 성격은 아닐는지.

세간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올린 전 정권 인사들. 사외이사 대우가 어떻기에 그럴까. KT 사외이사 연봉은 8천~9천만 원 정도. 이사회 참석 시 주어지는 거마비와 식비 등은 별도다. 매회 수 시간 소요되는 연간 십여 차례 이사회. 이게 사외이사가 하는 일의 전부다. 계산해보자. 시급이 1백만 원에 달한다.

사외이사가 이 정도면 CEO의 보수는 얼마나 될까.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황 회장이 챙긴 급여는 67억 원(성과급 포함). 여기에 의전비, 활동비 등 CEO가 재량으로 쓸 수 있는 돈 역시 막대하다. 이러니 장관들은 물론 다선 의원들까지 용을 쓰는 거다. KT의 CEO자리에 앉으려고.

새 권력은 언젠가 반드시 구 권력이 되고 만다. KT라는 꿀을 빨 수 있는 기간도 한철뿐이건만, 이 한철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 도를 넘는다. KT가 온갖 비리로 몸살을 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력가 아들딸들의 부정채용, 이런 얘기가 나오면 먼저 떠오르는 곳 역시 KT다. 이석채 전 회장은 현재 부정채용으로 구속 중이다.

직썰 필진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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