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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도시 환경에 있다”

  • 입력 2019.06.03 15:54
  • 수정 2019.06.03 16:12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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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브레다의 모습

2019년 접근성 높은 도시상(2019 Access City Award)을 수상한 네덜란드 브레다를 취재 차 방문했을 때 평소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기차역에서 2km가량 떨어진 호텔까지 택시를 타는 대신 휠체어를 타고 가보기로 한 것이죠. 실제로 휠체어 사용자가 얼마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브레다와 같이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소도시는 휠체어 사용자에게 악몽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세에 만들어진 도시 중심부와 작은 돌로 바닥을 수놓은 골목길은 휠체어 바퀴를 고장 내고 최악의 승차감을 선사합니다.

장애인의 생활비는 동료 비장애인에 비해 월평균 583파운드(한화 약 87만 원)가량 더 높습니다.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택시비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활권 밖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더욱 돈이 드는 활동입니다. 대다수의 호텔과 민박집이 휠체어 관련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싼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많죠. 휠체어가 고장 나고 자칫 잘못하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데다 다들 가는 관광지에 나만 입장하지 못해서 느낄 소외감까지 생각하면 유서 깊은 유럽 도시 여행은 높은 벽처럼 다가옵니다.

2019년 접근성 높은 도시상(2019 Access City Award) 이미지

하지만 브레다는 전혀 달랐습니다. 시 당국이 시내 중심부의 교회와 시장을 둘러싼 돌길을 다 들어내어 뒤집은 다음 납작하게 다시 깔아 휠체어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도시의 포토제닉함은 그대로 살렸기 때문입니다.

넓고 평평한 길을 따라 휠체어를 몰고 가는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였습니다. 길 곳곳에는 가게 주인들이 아침에 셔터를 올리면서 문 앞에 내어둔 포터블 경사로가 놓여있습니다. 장애와 관계없이 어떤 손님이든 환영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영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도시 내 모든 버스 정류장과 버스 역시 완벽한 접근성을 자랑합니다. 버스 기사들은 모두 장애 인식 교육을 받도록 돼 있습니다.

내가 머무른 호텔은 장애인 투숙객을 위한 스파와 물리치료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휠체어 출입이 용이한 방 안에는 서랍과 거울이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게 낮은 곳에 달려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샤워실과 앉을 수 있는 욕조도 딸려 있었죠. 호텔 출입문 역시 카메라가 휠체어를 감지하면 열리는 자동문입니다.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촉각 길 안내 시설도 설치 예정입니다.

지난 2년간 브레다 내 가게와 술집 800여 곳이 접근성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브레다 시 홈페이지는 이미 2017년에 시청각 장애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갖췄고, 주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25개 웹사이트도 접근성을 개선했습니다. 브레다에서는 2년에 한 번, 유럽 최대의 장애인 스포츠 대회가 열립니다.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연합뉴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평등한 브레다’라는 이름의 시 재단을 설립하면서 1990년대부터 사회 통합의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브레다가 접근성 상을 받았으니 유럽에서 최고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이 상은 가장 뛰어난 도시에 주는 상이 아닙니다. 확고한 개선 의지를 가지고 다 함께 노력한다는 의미죠.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휠체어 사용자이자 자원해서 시 당국의 자문 역할을 하는 마르셀 반 덴 뮤즈센버그(Marcel Van Den Muijsenberg) 씨의 설명입니다.

시청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카렐 돌레켄스(Karel Dollekens) 씨도 협업 의지가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계 전문가와 시청 공무원, 장애인 자문단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성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좌절스러운 상황도 있지만 대화를 멈추지 않죠. 그 네트워크가 이제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처음에는 물리적인 접근성만을 생각하던 당국도 이제는 시, 청각 장애와 발달 장애를 가진 이들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공문서는 쉬운 글로 작성하고, 브레다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주최 측은 모두 접근성 관련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합니다.

반 덴 뮤즈센버그 씨는 개선이 필요한 분야로 술집이나 클럽의 보안 요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장애인들이 취객으로 오해받아 입장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있다고요.

실제로 인식은 높은 문턱만큼이나 사회 통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사회적인 신뢰와 분위기, 장애인 고객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는 태도가 없다면 자동문과 경사로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다는 분명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죠.

“장애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에 있는 것이죠.”

돌레켄스 씨의 말입니다.

출처: 가디언, Emily Yates


직썰 필진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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