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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동영상’ 실검 1위?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다”

  • 입력 2019.03.14 10:24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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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갈무리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동영상 유포 = 2차 가해’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

소셜미디어에 경고장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계정 프로필 사진을 위의 문구가 적힌 사진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으니, 부디 2차 가해를 그만두라는 메시지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씁쓸함이 더욱 커졌다. 그래야 할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니까. 실제로 상황은 심각했다.

‘버닝썬 게이트’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가 ‘승리 게이트’로 이어졌다. 클럽 내 폭력 사건이 버닝썬-경찰 유착 사건으로, 그리고 빅뱅의 전 멤버 승리(이승현)의 성접대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어 가수 정준영이 승리와 함께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뉴스를 최초로 보도한 <SBS 8시 뉴스>는 피해자가 최소 1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3월 1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정준영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입건했다. 대중은 공분했다. 정준영은 불법 촬영 동영상을 지인들에게 퍼뜨렸다. 그저 장난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여성을 물건처럼 대했고, 자신의 성적 유희와 쾌락을 충족시키는 객체로 대상화했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쪽에서는 정준영과 그의 범죄 행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2016년에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분노는 훨씬 더 격렬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포털사이트에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검색어가 1위에 오른 것이다. 대중들의 관심은 불법 촬영 동영상의 존재 여부와 그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누구인지로 옮겨갔다.

ⓒ네이버 화면 캡처

“혹시 동영상 좌표 아는 사람 없나?”

“아직 유포 안 됨. 나도 계속 검색 중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준영 동영상’에 유명 걸그룹 멤버/연예인이 등장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급기야 걸그룹 A의 멤버, 걸그룹 B의 멤버, 배우 C와 D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된 지라시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정준영과 방송 활동을 통해 친분을 맺었던 여성 연예인들이 집중적으로 타깃이 됐다. 그러자 유출 영상을 찾아보겠다는 시도들이 잇따랐다.

결국 애꿎은 피해를 입은 루머의 당사자와 소속사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을 하고,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나서야 했다. 또, 최초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던 방정현 변호사가 “모두 사실이 아니며’ 실제 해당 여성들과 관련된 영상이(자료에) 단 한 개도 없음을 명백히 말씀드린다”고 밝히고, 최초로 이 사건을 보도했던 SBS funE의 강경윤 기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새로운 보도가 쏟아지면 언제라도 ‘정준영 동영상’이 다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수 있다. 지금의 잠잠해진 분위기는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자성과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동영상이 없다’는 관련자들의 확답에서 나온 포기에 가깝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또 한 번 지라시가 등장하는 순간, 유출 영상을 찾으려는 시도는 재개될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 관음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실제로 불법 촬영물(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는 일부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차례 보도가 됐던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가. 소라넷,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에서는 ‘여친 인증’이라며 여성들의 사진이 게시되기도 했고, 그밖에도 불법 촬영물이 인터넷 곳곳을 배회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의 카카오톡을 통해 이 시각에도 공유되고 있을 것이다.

ⓒYTN 화면 캡처

정준영의 범죄가 매우 악질인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법 개정이 시급하고,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정준영이라는 ‘괴물’의 예외적인 범죄로 정리하는 건 오히려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유출 영상을 찾으려는 시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토록 커졌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보다 관음증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건 우리 사회의 사회적 관음증이 여전히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준영 혼자만이 ‘괴물’이 아니다. 그 ‘문화’의 문제다. 그가 죄책감 없이 불법 촬영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했던 것처럼, 다수의 사람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2차 가해를 가하고 있다.

언론의 책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성희롱·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여러 언론들은 ‘가해 행위’가 아닌 ‘피해자’를 강조하고,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채널A <뉴스A>는 피해자의 직업을 특정한 ‘’정준영 몰카’ 피해자에 OOO OO 1명 포함’이라는 뉴스를 ‘단독’으로 보도했고, 다음날 <동아일보>도 같은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현재 이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 근원적인 원인을 따져 묻기보다 당장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보도가 계속 반복되면 대중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준영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는 엄중하게 묻고 있다. ‘당신은 멈출 수 있습니까?’ 지금의 폭발하는 분노가 소모적으로 낭비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성과, 다시 말해 제도적인 변화와 왜곡된 성인식을 바꿔나가는 데 쓰여야 한다.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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