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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잡’ 뛰는 엄마 돈 타 쓰며 8년째 일 안 하는 아들

  • 입력 2019.03.06 10:16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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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8년 동안 제대로 된 직장에서 한 번도 일을 한 적이 없고요. (…) 짧게는 3일 정도 일하고 길게는 아마 3개월까지 갔던 게 고작인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4일 방송된 KBS2 <안녕하세요>에는 8년째 백수 생활을 하는 형 때문에 고민이라는 동생이 출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8살의 형은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힘들다’, ‘몸이 고되다’,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다’ 등 일을 그만둘 때마다 형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하루는 잠 14시간, 게임 10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채워졌다.

생계는 엄마의 지원에 의지하며 유지했다. 형은 2년제 대학교를 7년째 다니고 있었는데 학비부터 생활비, 용돈까지 모두 엄마로부터 얻어 썼다. 게임에 ‘현질’하는 돈마저 엄마의 주머니에서 꺼내 썼다. 동생이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제안하지만, 형은 ‘매니저가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쪽팔린다’며 거부했다.

동생은 엄마가 형을 장남이라는 이유로 오냐 오냐 하며 감싸는 편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자신에겐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언제나 뒷전이었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엄마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하면서도 형을 두둔했다. ‘자식이니까 지원해 줄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었다. 따끔한 조치를 취하기보다 늘 어르고 달래기만 했다. 그렇다고 엄마의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빚은 1억이 넘는 상태였고 그 때문에 쓰리잡을 할 정도로 쉼 없이 일하고 있었다.

“저희 형하고 비슷해요. 엄마는 형한테 맨날 욕하면서 형이 뭐 한다고 하면 돈 주고. 엄마가 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형이) 지금까지도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편의점 알바 정도로 혼자 돈을 버는 것 정도. 제가 형을 함께 건사하고 있는데 절대 변하지가 않더라고요. 엄마가 계속 끼고 계시다가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형은 또 동생이 챙길 수밖에 없는, 동생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진행자인 컬투 김태균은 자신의 가정사를 언급하며 “형을 좀 더 냉정하게,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차갑게 되시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러나 엄마는 “사주를 봤는데 장남이 서른 살에 풀린다고 하더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이 가정에서 엄마 또한 아들의 무기력함을 돕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1차적인 원인은 당사자에게 있다. 언제까지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그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안녕하세요>의 사연이 소개되기 직전 JTBC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김혜자)가 이 땅의 청춘들에게 담담히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혜자는 오빠 영수(손호준)의 성화에 못 이겨 그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별사탕을 벌던 중 대화의 주제가 ‘늙으면 좋은 점이 뭐냐’로 흘러갔다. 다들 우스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혜자는 ‘늙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며 청춘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이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등가 뭐시기가 무슨 말이냐. 물건의 가치만큼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처럼 우리가 뭔가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뭔가를 희생해야 된다 그거야. 당장 내일부터 나랑 삶을 바꿔 살 사람! 내가 너희들처럼 취직도 안 되고, 빚은 산더미고, 여친도 안 생기고, 답도 없고 출구도 없는 너네 인생을 살 테니까 너희는 나처럼 편안히 주는 밥 먹고,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도 받고, 하루 종일 자도 누가 뭐라 안 하는 내 삶을 살아. 어때?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본능적으로 이게 손해라는 느낌이 팍 오지? 열심히 살든 너네처럼 살든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기본 옵션으로 주어지는 게 젊음이라 별 거 아닌 거 같겠지만 날 보면 알잖아. 너네들이 가진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이것만 기억해놔. 등가교환. 거저 주어지는 건 없어.”

혜자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언급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젊음’의 가치에 대해 강조했다. ‘당장 내일부터 나랑 삶을 바꿔 살 사람!’ 혜자의 제안에 손을 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본능적으로 손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 태어나면 ‘기본 옵션’으로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젊음이라, 이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혜자의 저 말은 <안녕하세요>의 형에게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혜자의 말처럼 형의 안락한 삶은 엄마의 희생에서 비롯된다.

<안녕하세요>에서 두 번째로 등장했던 오남매의 사연은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들었다. 초등학생 막냇동생의 ‘심부름을 너무 시킨다’는 하소연이 전부인 줄 알았더니 실상은 안타까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아빠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3년 전에 집을 나간 상태에서 둘째 누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 누나가 결혼과 육아를 하게 되면서 둘째가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돈을 버는 게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꿈도 포기해야 했다. 둘째는 동생들의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자신은 한 달에 5~10만 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작진이 굳이 사연의 순서를 그렇게 정한 건 어떤 의미였을까. 앞서 출연한 철없는 형을 의식한 선택이었을까?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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