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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 들이기

  • 입력 2014.07.04 11:59
  • 수정 2014.07.04 12:02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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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친일인명사전>

블로그에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친일인명사전>을!’[ 바로가기☞ ]이라는 제목을 글을 쓴 게 2011년 4월이다. 글쎄, 누구랄 것도 없이 이웃들에게 제안을 던지기야 했지만, 그걸 챙겨 볼 만한 형편은 물론 아니었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는 진작부터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고 있었다는 걸로 면피를 하고 말았다.

이듬해 2012년에 학교를 따라 구미로 옮겨 왔다. 학년 초에 확인해 보니 도서관에는 <친일인명사전>이 없었다. ‘도서신청’ 때 바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다. 서른여섯 학급이나 되는, 경북에서 가장 큰 학교라는 걸 과신했던 것일까. 당연히 구입해 비치했겠지 하고 나는 그걸 까맣게 잊어버렸다.

지난해 하반기에 우연한 기회에 나는 내가 신청한 <친일인명사전>이 학교장 손에서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도서계를 맡고 있었던 동료 여교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학교장은 그 직전인 8월에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떠난 뒤였다.

분회 모임에서였던가, 우연히 이야기 끝에 우리 도서관에도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해 넣었다고 말했는데 예의 동료가 정색을 한 것이다.

"아, 선생님께 말씀 못 드렸는데 지난번 교장 선생님이 노발대발해서 그 책 못 넣었어요.”

“뭐라고요? 난 으레 들어와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교장이, 왜요?”

“제가 도서계였잖아요? 결재를 받으러 들어갔는데, <친일인명사전>을 보더니……. 누가 신청했냐길래 저는 가만히 있었지요.”

“내가 신청한 거라고 그러지 그랬어요?”

“글쎄, 말예요. 어떻게 생각하냐기에 그런 사전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시작하더니 말을 하면서 교장은 점점 격앙되어 갔단다. 얼굴이 벌겋게 되더니 언성마저 높아졌다. 이런 책이 우리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걸 외부에서 알면 우리 학교를 어떻게 보겠냐면서 통탄을 하더라는 것이다.

"저는 어이가 없어서 ‘조상 중에 친일파가 있나?’ 그런 생각을 다 했어요. 교무실에 돌아와 그 얘기를 했더니 교감 선생님도 그런 책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요.”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퇴임한 교장은 권위적이고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긴 했지만, 때로는 대범한 모습도 보여주는 양반이었다. 당연히 책이 들어와 있으리라고 내가 생각한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그 해프닝을 알았다 한들 피차 낯을 붉히는 언쟁밖에 더 있었을까. 그가 떠나고 난 뒤에 내가 사실을 안 건 다행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웃고 말았다.

농이긴 했지만 그의 조상이 친일파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그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건 그가 자신을 기득권과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스스로 기득권의 논리를 충직하게 따르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와 무관한 노동자나 농민이 그런 계급 배반의 논리를 추종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래서다. 이 땅에 수구 보수의 계급·계층이 견고하고 두터운 것은.

바로 바뀐 도서 담당 교사에게 나는 두 번째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다. 나중에 누가 신청했느냐고 묻거든 내가 했다고 말하라고 했더니 ‘벌써 들어왔는데요.’ 했다. 새로 부임한 학교장은 다행히 전임 교장처럼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지난해 구입한 <친일인명사전> 앱이 내 스마트폰에서는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걸로 블로그의 ‘친일문학 이야기’를 써 오다 부득이 도서관의 <친일인명사전> 신세를 지고 있다. 사전과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면서 임종국 선생뿐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가 내 놓은 이 사전이 얼마나 값진 기록인가를 날마다 확인하곤 한다.

올해로 <친일인명사전>은 발간된 지 5년째다. 2011년 4월 기준으로 전국 도서관 보급률은 31.73%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더 늘었는지 알 수 없다. 편찬위원회를 꾸린 지 8년 만에 반역사적 수구 세력의 방해를 넘어 내놓은 <친일인명사전>은 민간이 주도적으로 시작한 ‘식민지 역사 청산’의 첫걸음이었다는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친일인명사전>이 ‘식민지 역사청산’에 대한 우리 사회와 대중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친일 인사 개인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철저히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서 그의 식민지 시절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은 좌우나, 진보·보수를 넘어 객관적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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