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맞아?”
차기준(조병규)은 자신의 요약 노트를 오픈하겠다는 강예서(김혜윤)에게 “너, 강예서 맞아?”라고 되묻는다. 서울대 의대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며 살아왔던 예서의 눈에서 독기가 완전히 빠졌다. 그만큼 많이 변했다. 사실 그 질문은 오매불망 금요일 밤이 오기를 기다려 왔던 시청자들이
허탈했고 허무했다. 고작 ‘이 결말’을 보려고 한 주를 더 기다려야 했던 걸까.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대본일까, 도덕책일까. 내가 틀어놓은 채널이 JTBC인가 EBS인가. 사회 풍자 블랙코미디인가 청소년 드라마인가. 도대체 내가 본 게 뭐지? 도발적이었던 드라마가 김빠진 사이다가 됐다. 날카로운 고민을 던지던 드라마가 어설픈 계도 프로그램이 됐다.
역시 드라마는 작가의 역할이 8할이다. 극본의 힘이 쏙 빠지자 모든 구성이 엉성해졌다. 갑자기 캐릭터가 180도 바뀌고 대사의 맛깔스러움이 사라지자 배우들의 연기는 평범해졌다. 빈틈을 충실하게 채워줬던,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던 매혹적인 카메라 워킹과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은 온데간데없었다. 도덕책을 구현하는 데 무슨 테크닉이 필요하겠는가.
‘욕망의 화신’ 차민혁(김병철)은 백승혜(윤세아)에게 백기투항했다. 뒤이어 차민혁의 코미디 쇼가 이어졌다. 학벌을 위조한 ‘사기꾼’ 차세리(박유나)는 법적인 처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 당당함을 유지한 채 살아간다. 백승혜는 ‘가부장제의 표본’인 차민혁이 변할 거라고 믿는 걸까. 그나저나 두 사람은 정말 사랑했었던가. 뜬금없이 닭살스러운 두 사람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우주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혜나의 죽음을 통해 더 이상 공부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졸업장보다 자아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며 여행을 떠났다. 중반으로 가면서 점차 자신의 존재감과 개연성을 찾아갔던 이수임(이태란)은 케이(조미녀)를 돌보는 진짜 ‘천사’가 됐다. 그가 쓴 소설 <안녕, 스카이 캐슬>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게 됐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강준상(정준호)의 가족들에게 찾아왔다. 한서진은 평온해졌다. 욕망을 버렸다.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곽미향이라는 과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서는 그 누구보다 순한 아이가 됐고 자기 주도 학습을 하겠다며 밝게 웃는다. 극악했던 시어머니 윤여사(정애리)는 며느리 한서진에게 살포시 초밥을 건넨다. 철이 든 강준상과 성숙한 한서진은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금실 좋은 부부가 됐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결국 다들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동화, 아니 드라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혜나의 죽음은 강준상의 개과천선을 이끌어냈다. 친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그는 반성했고 깨달았고 변화했다. 철없이 살았던 강준상이 어머니라는 인큐베이터에서 벗어났다. 강준상이 진짜 어른이 되자 구도가 뒤틀어졌다. 이 맥락은 상당히 섬뜩하게 다가온다. 결국 집안의 진정한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건 가장뿐이라는 또 다른 가부장 신화를 추구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결국 불쌍한 건 혜나뿐이었다. 혜나는 왜 죽어야 했을까. 유현미 작가는 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혜나의 죽음을 통해 더 거대한 파국을 이끌어냈어야 마땅했다. 욕망과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악마와 거래한 대가를 분명히 치르게 해야 했다. 그 절망과 고통을 또렷하게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어설픈 대화합이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개과천선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가정의 회복이 아니라.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