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박원순 시장의 ‘재능기부 취임식’ 유감

  • 입력 2014.07.01 11:19
  • 수정 2014.07.01 11:26
  • 기자명 고함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 1일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취임식을 가진다. 이번 취임식은 ‘시민과 함께하는 취임식’을 주제로 열린다. 취임식 행사를 이틀 앞둔 29일 행사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서울시는 예상외의 비난에 직면했다. 바로 취임식 행사에 필요한 사회와 예술공연을 시민의 ‘재능기부’로 진행하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취임식 사회는 취업준비생 한주리(24)씨가 진행하며 애국가 반주는 ‘초록우산 드림 오케스트라’, 노래는 아마추어 가수 윤성림(39)씨의 재능기부로 진행된다.

어느새 재능기부라는 단어가 서울시장 취임식에까지 사용될 정도로 생활 속에 녹아들었다. 자선 행사 혹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사에 공연예술인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예술인들은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 이슈에 관심을 표현하고 사회단체는 예술들이 제공한 재능을 통해 행사를 홍보한다. 예술인은 선행도 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도 쌓고 주최 측은 저렴한 가격에 행사를 진행할 수 있으니 서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재능기부가 일상화되면서 그 이면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주로 공연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연예술계에 만연한 재능기부 문화가 오히려 공연예술인들의 삶의 기반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한두 차례 재능기부를 시작하면 무형의 가치는 '공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자신들의 결과물에 정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워진다는 주장이다. 좋은 마음으로 재능기부를 했더니 반대쪽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갑질’을 한다거나 재능기부 요청을 거절하자 되려 ‘예술하는 사람이 돈만 밝히는 것 아니냐’라는 핀잔을 들었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서울시의 이번 ‘재능기부 취임식’이 가져온 온라인 공간에서의 논란 또한 공연예술인들이 겪을 어려움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이번 행사가 재능기부만으로 진행될 경우 다른 공공기관도 재능기부라는 이름 아래 공연예술인에게 무상으로 노동력 제공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이다. 일방저인 재능기부에 대한 요구는 공연예술인들로 하여금 금전적, 심리적 문제를 떠안겨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재능기부 취임식’을 둘러싼 논란이 임금문제 혹은 ‘싸가지 없음’의 문제로 소급되는 과정은 불편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재능기부라는 형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공공영역까지 자연스럽게 침투해가는 모습이다. 박원순 시장과 같은 정치인이, 서울시와 같은 공공기관이 재능기부를 행정의 일반원리로 도입하려는 배경은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재능기부 이전에 기부가 있다. 기부는 미국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다. 전통적으로 행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미국은 오랜 기간 빈민구제, 교육 등의 문제를 부호나 종교단체의 자선사업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다. 가끔 미국 부자들의 엄청난 기부 규모 혹은 일상적인 기부 문화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사람들이 특별히 더 착해서가 아니라 저세율과 작은정부의 문제점을 기부금과 자선사업으로 대체하는 사회적 협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부와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돈, 즉 재화의 재분배에 대한 문제였다면 재능기부는 곧 공공영역에서의 서비스 재분배에 대한 문제다. 교육 기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사실상 정부의 교육비 지출 축소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공적 영역에서의 재능기부란 곧 교사가 필요한 곳에 교육 재능기부자를, 공공보건의가 필요한 곳에 의료 재능기부자를 배치함으로써 재능기부가 공공 서비스를 대체하자는 주장이다.

‘재능기부 취임식’ 문제는 단순한 꼼수 논란이 아니라 사회협약을 재구성하는 정치적인 문제다. 오늘의 ‘재능기부 취임식’이 내일의 ‘재능기부 복지’로 이름을 바꿔 등장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박원순 시장의 2기 취임식을 아름다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