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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가 만만해? '서울대 순혈주의 논란'의 함정

  • 입력 2014.06.23 17:30
  • 수정 2014.06.23 17:33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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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문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중학교 후배의 SNS에 글이 올라왔다. 평소 글을 잘 올리지 않던 아이라 무슨 일인가 했다. “과외를 구하는 중인데 학부모들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다닌다고 하니 연락을 했다가, 지역균형 전형으로 입학했다고 하니 연락이 끊겨버린다”는 푸념이었다. 시간이나 금액 등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마무리됐어도 ‘지역균형’임을 알고 나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사례가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후배의 이야기와 양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본질의 논란 하나가 인터넷 상에서 현재진행 중이다. 서울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제기된 ‘서울대 순혈주의 논란’이 그것이다. 타 대학 출신의 대학원생을 서울대의 구성원으로 볼 수 없다는 일부 이용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진 끝에, 운영진들이 ‘학부 출신 전용 게시판’을 개설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누리꾼들은 서울대 학부생들의 자부심과 엘리트 의식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담은 댓글을 포털 사이트의 베스트 댓글로 선정했다.

학벌을 키워드로 한 논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크고 많은 논쟁들은 언제나 ‘(학벌 좋다고) 잘난 척하지 마라’, 혹은 ‘(학벌 나쁘다고) 열폭하지 마라’는 결론을 가장한 비난에 도달했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은 특정 집단에 날아가 꽂혔다. 이번 논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서울대 순혈주의 논란’은 “서울대 학부생들아, 학벌 좋다고 잘난 척하지 마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엔 몇 가지 함정이 존재한다. 우선 대표성의 함정이다. 스누라이프에 타 대학 출신을 게시판에서 배제해 달라고 요청한 이용자들이 서울대학교 학생 전부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학번과 학과 등을 기준으로 볼 때 특정 집단에 한정돼 있다는 사실은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전 국민이 이용하는 인터넷 뉴스의 댓글조차 포털사이트에 따라 특정한 성향이 드러나는데, 하물며 이용자가 특정 대학의 학생으로 한정된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굳이 침묵의 나선 이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학벌을 소재로 한 기사가 탄생하는 과정은 소문이나 루머가 생성되는 과정과 별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사람들이 주목할 가능성이 높은 유명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엔 해당 대학 출신의 기자들이 상주해 있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목소리가 나왔을 경우 곧바로 이를 기사화한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커뮤니티 내의 일을 글쓴이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외부에 가져가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든 곳도 있다.

만약 스누라이프의 글이 서울대 구성원의 여론을 대변하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함정은 존재한다. 이 논란을 특정 집단(서울대 학부생)을 향해 감정의 표출을 자제할 것(잘난 척하지 마라)을 부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학벌주의는 한국 사회의 고전적인 문제 중 하나다. 원인도 다양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비난의 화살을 무작정 특정 집단을 돌려버리는 것은 복잡한 문제를 더욱 얽히게 만들 뿐이다.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쉽게 누군가를 욕하고 끝냈을 때, 내용과 대상만 달라진 또 다른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역균형 전형으로 입학한 죄(?)로 과외를 구하지 못한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균충’이라는 말은 고등학생일 때도 들어봤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지균충 대접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작 학교에선 이런 일 없었는데” 역시나 ‘명문대 지균충’인 나도 학교 내에서 비슷한 대접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후배를 지균충으로 만든 건 정시로 선발된 다른 서울대생이 아닌, 자식을 서울대 구성원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이었다. 곳곳에 속속들이 스며든, 어쩌면 당신 안에도 있을 학벌주의의 죄를 특정 집단에 뒤집어씌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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