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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의 등장과 ‘신판 친일파’

  • 입력 2014.06.18 15:44
  • 수정 2014.06.18 15:54
  • 기자명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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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오히라(오른쪽) 일본 외상을 만나 대화하는 모습

지난 2005년 공개된 한일회담 문건에는 당시 주요 쟁점과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한­일 양국 간에 오갔던 대화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양국 협상 대표들은 청구권의 표현(성격),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가장 쟁점이 됐던 사안은 청구권 문제였다. 52년 1월 1차 회담에서 한국은 ‘한일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개항’을 제시하면서 이 문제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일본은 ‘우리도 받을 게 있다’며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인 재산청구권을 거론하며 맞섰다.

이 와중에 53년 3차 회담 때 ‘일본의 한국 통치가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다’는 소위 ‘구보타 망언’으로 협상이 5년간이나 중단되기도 했다. 회담이 재개된 것은 5.16쿠데타 발발 5개월 뒤부터였는데, 박정희 일파는 청구권 협상을 매듭짓기 위해 회담을 서둘렀다. 그런데 청구권 금액을 두고 다시 논란이 일자 박정희는 김종필(JP)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특사로 일본에 파견했다. JP는 오히라 일본 외상을 만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하고는 개별 청구권을 포기하는 선에서 ‘정치적 타결’을 지었다. 당시 JP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제2의 이완용’이 되겠다.”고 호언했다. 이 일로 국내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대일 굴욕회담 중단을 요구하는 야당과 대학가의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는데 이것이 소위 ‘6·3사태’다.

6.3 사태

‘친일파’란 구한말 무렵부터 해방 때까지 매국 조약에 가담했거나 총독부 앞잡이 노릇을 한 부역자들을 말한다. 유사어로는 민족반역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친일부역자 등이 있다. 그러나 친일파는 일제 강점기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계속해 있어 왔다. 다만 일제하의 친일파들과 구분해 이들은 ‘신판 친일파’라고 부른다. 역대 정권에서 굴욕적 대일외교 노선을 걸은 자들을 말하는 데 앞서 언급한 김종필을 ‘신판 친일파’의 첫 주자로 꼽을 만 하다고 하겠다. 박 정권 당시 한일 양국 간에는 만주인맥을 연결고리로 ‘신판 친일파’들이 준동하였으며 이로 인 해 밀월관계가 지속됐었다.

‘신판 친일파’는 적어도 김영삼(YS) 정부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이명박 정권 출범을 전후하여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995년 광복50주년을 맞아 YS는 총독부 청사 철거 및 ‘국민학교’ 명칭 개정 등 일제잔재 청산에 앞장섰으며,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 청산 입법을 통해 인적-물적 친일청산 작업에 나섰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권 출범을 전후하여 등장한 ‘뉴라이트’가 이른바 ‘신판 친일파’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식민지근대화론’ 등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과 맥을 같이하는 주장을 폈는데 더러는 일본 극우재단의 자금을 지원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권은 당시 국정 최고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은 주한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MB의 성향을 두고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MB 정권하에서 여론의 반발로 좌절된 된 ‘한일군사협정’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 비밀리에 이 일을 추진했던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교수 시절부터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로, 청와대 재직 시 ‘나카소네상’을 받기도 했다. 그 역시 골수 친일성향의 신판 친일파라고 할만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박근혜 정권은 MB 정권의 아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박효종 교수를 비롯해 뉴라이트 인사들이 중용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인데 이들은 친일사관의 역사교과서 편찬을 주도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인 비하 발언 등으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등장도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다. 국민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문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여긴다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 요구서 제출을 강행할 태세다. 이는 문 후보자의 역사관, 민족관을 수용한다는 얘기다. 정략적으로 필요하다면 ‘신판 친일파’ 성향이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걸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나서서 ‘제2의 이완용’을 자처하는 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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