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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하다” 14년 만에 무죄 인정된 양심적 병역거부

  • 입력 2018.11.01 15:29
  • 기자명 직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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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한국에서 군대 문제는 언제나 폭탄 같은 이야기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민감한 문제 중 하나는 ‘종교 혹은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한국에선 매년 반전, 혹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집총거부로 약 6백여 명의 청년이 군대 대신 교도소에 갔다. 이들을 위한 합리적인 대체복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다만 병역 거부 행위엔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더불어 이들을 ‘교도소에 갈 정도로 군대가 싫은’, 이른바 국방의 무임승차자들로 폄훼하는 시선도 많았다.

올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리자 (다만 병역 거부자 처벌은 합헌이라는 판단이었다) 국회는 대체복무제 입법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이때에도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징벌적 대체복무제’*가 논란이 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반발심을 잘 보여줬다.

*대체복무자에게 현역병보다 더 길고 힘든 작업을 맡겨야 한다는 것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44개월간의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작업을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대체복무로 ‘지뢰제거작업’은 인권후진적 발상이다

ⓒJTBC

UN 인권위가 이미 1998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는) 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한다”라고 권고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해당 사안에 대한 현재 우리나라의 논의는 꽤 뒤처진 수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11월 1일 오전 이러한 논의의 판을 뒤흔들만한 상징적인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 거부를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인정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

이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로 인정되지 않고 유죄를 선고받은 2004년 판결 이후 무려 14년 3개월 만의 변화다.

ⓒBBC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 씨를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 1년 6개월 징역이었던 원심 판결은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의 비율로 뒤집어졌다.

재판부는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며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소수 의견을 낸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 등은 그러나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며 무죄 판결에 반대했다. “이 사건은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띠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현재 심리 중인 종교,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총 227건)에 대한 판결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 구제되는 일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국회의 대체복무 입법 또한 가속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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