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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이기적이지도, 불쌍하지도 않아요

  • 입력 2018.09.12 12:21
  • 기자명 서울청년정책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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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정책의 주체이자 지속가능한 미래의 다른 이름이다.

9월 11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설명회를 열고 서울시의 '청년자치정부 수립' 추진배경, 주요내용, 출범계획 등을 설명했다. 지난 2일 열린 <서울청년의회>에서 발언 중 청년자치정부 계획을 깜짝 발표한 후 약 1주일 만이다.

청년자치정부는 서울시의 새로운 청년정책 추진체계를 뜻한다. 시장 직속 행정기구인 청년청이 새롭게 설치되고 기존의 민간 거버넌스 기구인 서울청년의회는 상설화된다.

ⓒ서울시

박 시장의 말대로 내년 3월 청년자치정부가 수립되면 다음과 같은 정책이 추진된다.

▲ 청년위원15%목표제(서울시 전 위원회 중 청년위원 비율을 15%로)

▲ 청년인지예산제(예산편성지침상으로 청년층 의견 반영을 의무화)

▲ 청년인센티브제(서울시 발주 사업에 청년들의 참여 기회 확대)

▲ 청년자율예산제(청년정책 예산 중 일부를 청년들이 직접 편성)

▲ 미래혁신프로젝트(새로운 사회 의제 발굴 및 해결방안 모색)

청년자치정부는 청년 당사자가 정책 결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넘어 직접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 편성에 직접 참여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전국 최초의 시도다.

ⓒ서울시

청년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울시가 과감하게 제도 혁신을 시도한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의 입장을 밝힌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청년자치정부라는 기획이 소위 말하는 ‘청년세대 이기주의’가 아니며 또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강조하려 한다.

또한, '청년자치정부'는 '청년'이라는 단어(기호)를 소비하면서 청년들을 타자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청년들이 청년시민으로서 평등한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누리게 하는 제도로 기능해야 한다.

'청년'이라는 기호에 담긴 의미들

행정과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된 순간부터 이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중적 의미를 띄며 줄타기를 해 왔다.

먼저 존재로서의 청년은 해결돼야 할 (수동성을 지닌) 사회문제(청년문제)이자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능동적 주체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실업과 고용위기,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문제로 대두된 청년문제의 당사자로서 청년은 어떻게 의미화 됐을까? 행정권이나 정치권에서 청년문제의 해결을 선포하면서 청년들은 청년문제란 것을 증언하기 위한 피해자성을 지닌 존재, 그러한 피해자로서의 위치를 규범적으로 두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청년운동의 맥락에서 청년들의 욕구와 목소리는 언제나 피해자나 비주체, 수동적인 위치를 초과해서 흘러넘쳤다. 이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실제로 수용하고 권한을 이양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 과정에서 “청년의 문제는 청년이 가장 잘 안다”는 당사자주의의 구호가 전략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을 걸고 했던 행사들.. 어떤 체험이나 대화든 진짜 '리얼'하게 했으면 저렇게 웃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경향신문

두 번째로 기호로서의 ‘청년’은 조례가 규정하는 "만19세에서 만34세 또는 만39세까지의 인구"를 실정적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그 단어와 접합되는 수많은 가치지향*들을 가리키는 역할까지 수행해 왔다. (*쉽게 생각하면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욕구나 요구 따위)

청년문제는 보통 청년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이에 따라 청년정책은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으로서 범주화되었고, 이 범주를 서울시는 일자리, 살자리(주거), 설자리(청년수당), 놀자리(청년공간) 등의 내용으로 채우는 청년정책 1단계 버전을 발표하여 현재와 같이 추진해오고 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주거, 부채와 같은 생활안정, 활동공간 조성, 정책기반 확대를 다룬 최초의 종합정책이었다. 서울시

그러나 청년이라는 기호에 접합된 것들은 위와 같은 청년층에 대한 복지 요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2015년부터 열린 서울청년의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장애 인권, 성평등, 환경(미세먼지, 자전거), 건강 등 다종다양한 이슈들이 제기되어 왔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이슈들은 기존에 정의된 일반적인 청년문제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이었는데 이는 청년이라고 해서 청년문제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상기시킨다. 청년들은 그들과 대응되는 것으로 설정된 인구 집단인 노년의 문제에도 당연히 관심을 가지는 존재다.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일반적으로 청년문제로 정의되는 영역, 즉 일자리, 주거, 부채 등과 관련한 요구를 하는 순간에도 청년들의 발화가 단순히 ‘우리에게 일자리를, 집을, 돈을 주세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년들이 발화해 온 모든 정책 요구에는, 청년 스스로가 바라는 미래사회의 모습, 그 가치지향에 대한 발화가 함께 포함돼 있었다.

예컨대 청년주거 정책을 말하는 청년들의 언어는 ‘청년들에게 집을 공급하라’는 복지 요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년에겐 사는(buy) 물건이 아닌 사는(live) 장소로서의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는 가치를 전달해 왔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청년들의 언어는 어땠나. 이는 청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일자리 숫자를 공급한다고 다가 아님을 반복적으로 드러내 왔다.

당사자들이 제안한 청년정책은 세대 이기주의라고 보기에는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의제들이었다. 2018 서울청년의회

청년자치정부가 등장한 이유는

이번에 박원순 시장이 발표한, "청년위원 15%, 청년인지예산, 청년인센티브, 청년자율예산, 청년자치정부"와 같은 ‘청년’이 붙은 여러 가지 이름들은, 그래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정책의 추진이 ‘청년세대 이기주의’의 소산이거나 청년들에게 표를 받고자 하는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청년자치정부는 청년이 정책 수혜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정책 설계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제도 변화다. 또한 청년들이 자신들의 좁은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미래사회의 위험에 대응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존재라는 점을 신뢰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제도 변화다.

청년위원은 청년세대의 이익을 위해서 위원회에 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다. 청년인지예산은 청년세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사회와 공존도시라는 가치론적 목표의 관점에서 예산을 검토하는 것이다.

청년은 이러한 공익적인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정치 참여의 평등한 주체인 청년시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청년이 정치적으로 배제된 역사가 없었다면 원래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일이다.

청년이 마주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매우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도움을 바라는 가련한 이미지는 다분히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비주얼다이브

청년들을 계속해서 정책의 대상, 고통받고 있지만 선량한 피해자, 청년 자신의 문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미성숙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표상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내가 보기에 여전히 낡은 기성의 시각들이 청년들을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의심하고 무의식중에 업신여기고 있는 것 같다. 2일 있었던 서울청년의회의 장면을 생각한다. 청년의원들은 공존도시 선언을 하면서 가치론적 질문을 던지고 미래 서울시의 방안을 제시하는 발언들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그러나 당일 축사나 언론 보도에선 역으로 불편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발화 속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고통받는 존재였고, 그 문제를 정치인인 우리가 해결할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줘야 하는 존재로 재현되었다.

청년의원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는데 왜 청년은 계속해서 ‘불쌍한 존재’로 재현되어야 하는 걸까? '청년자치정부'라는 혁신에 함께 할 청년들이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청년은 정책의 주체이자, 지속가능한 미래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우리가 공익과 정책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고 있다는 것을.

*원문: 청년정책칼럼은 (사)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실행위원회에서 매주 화요일 발행하는 기명칼럼입니다. 딱딱하고 낯선 '정책'이 우리 일상과 밀접한 이야기임을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직썰 필진 서울청년정책LAB


필자: 김선기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실행위원회 청년정책연구팀 <서울청년정책 LAB>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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