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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무기가 아니다" 퀴어와 함께하는 기독교인

  • 입력 2014.06.10 11:00
  • 수정 2014.06.10 11:08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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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올해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번 퀴어문화축제는 기독교인들의 민원때문에 축제 일주일 전 서대문구청이 장소사용승인을 취소하면서 행사가 열리지 못할 뻔 했다. 다행히 6월 7일 신촌 연세로는 축제 분위기로 충만했다. 하지만 당일에도 축제가 못마땅한 기독교인들의 반대시위를 거리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고함20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이들의 시도에 눈살이 찌푸려지려던 순간, 흥미로운 부스가 눈에 띄었다. ‘퀴어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간판을 단 부스였다. 길찾는 교회, 섬돌향린교회, 열린문메트로폴리탄교회 등 각자의 영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해온 기독교인들이 함께 꾸민 자리였다. 기독교인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성소수자를 위해 예배하는 이들의 모습은 굉장히 신선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성공회의 민김종훈(자캐오)신부, 재속재가수도원 '신비와 저항'의 박진석 수사를 만나 동성애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이들의 부스 바로 앞에서 기독교인 수십명이 거세게 반대시위를 하는 통에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자캐오 :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하는 곳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이대로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나왔다. 퀴어에 대해서 신학적이나 신앙적으론 유보할지라도, 그분들의 인권적인 차별이나 배제에 반대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그들을 동등하게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모여서 성소수자를 축복하고 지지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싶었다.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했나

박진석 : 두시 반부터 성소수자를 위한 예배가 있다. 다섯 시에는 퀴어퍼레이드 출발 전 그분들을 축복하는 축복식을 하고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성소수자를 위한 예배 ⓒ고함20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박진석 : 일반인들은 많이 놀라신다. 우리의 모습이 기독교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인식과 다르니까. 교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한쪽에서는 ‘성소수자도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얘기하고 한쪽은 '하나님은 죄를 간과치 않으신다'고 얘기한다. 한 하나님 안에서 양분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난처하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사랑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함께해주니 성소수자들이 고마워할 것 같다

박진석 :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들은 이미 사회의 시선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기독교인으로서도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어서 기쁘다.

자캐오 : 우리가 서로 시혜적 관계는 아니다. 여성차별이나 흑인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그들이 고마워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저 성소수자들에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뿐이다.

ⓒ고함20

그동안 동성애를 반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기독교였다는 점에서 이 부스가 특별히 신선하다

자캐오 : 동성애를 반대하는 건 일부 기독교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스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다. 다른 기독교인도 언젠간 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금도 눈앞에서 같은 기독교인들의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박진석 : 이런 핍박의 상황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저들과 같이 무력으로 충돌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비폭력적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은 성경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했다고 하면서 반대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박진석 : 어떻게 성경을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성경이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신다. 성경을 무기삼아서 사람을 핍박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캐오 : 성공회에서도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라고 고백하지만 동시에 성경에 문화적 한계, 언어적 한계, 시대적 한계도 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문제도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성경에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사회문화적인 차별에 대해서 바로잡으라는 예언자의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왜 성소수자 문제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예배를 방해하는 시위대 ⓒ고함20

성소수자들이 교회에 직접적으로 교회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반대할까

박진석 : 위기의식인 것 같다. 동성애가 죄고 천벌 받을 일이라는 일부의 인식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세상에 나오면 한국사회와 기독교가 몰락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 같다.

자캐오 : 박진성 수사가 말한 것처럼 낯섦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마케팅이 아닐까. 수십 년 전에 교회 내에서 흑인차별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상황이 지금과 비슷했다.

동성애자나 성소수자에게 기독교인이 취해야할 자세는 무엇일까

박진석 :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나 동일하게 누려야 한다. 교인은 죄보다 사랑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고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부스를 통해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캐오 : 기독교 안에서도 동성애와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로교가 제일 영향력이 크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동성애에 반대하는)장로교 신도가 5천만 명 정도,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성공회 신도가 8천 5백만 명 정도 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기독교의 전부가 아니다. 이 부스를 통해 기독교인들이 성서와 공동체적 이성에 비춰봤을 때 무엇이 옳을까에 대해 한번 정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반인들에게는 사랑으로 함께하고 싶고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싶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자캐오 : 예수님은 성찬에 빈부귀천과 세상의 모든 차별을 뛰어넘어서 사람들을 초대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비춰봤을 때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에 가까운 건지, 무엇이 우리 안에 있는 심장을 뛰게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사랑으로 이 문제를 극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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