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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합의가 남긴 나쁜 선례

  • 입력 2018.09.06 16:34
  • 기자명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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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 설립을 찬성해달라며 무릎을 꿇어야 했던 부모를 기억하시나요?

오랜 진통 끝에 9월 4일 강서구 내 특수학교 설립이 합의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무릎을 꿇었던 학부모들이 이번 합의를 철회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이번 합의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남겼습니다.

<강서특수학교 합의의 문제점>

1.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려면 주민과 거래해야 한다?

2. 주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진행하려면 지역구 국회의원과 합의해야 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교육청 소유의 학교 부지에 느닷없이 ‘국립한방의료원’을 짓겠다고 공약해 갈등을 촉발했습니다. 이는 많은 주민이 강서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작용됐습니다.

이번 합의로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이 무산된 건 아닙니다. 먼저, 특수학교를 짓고 추후 새로운 부지가 나오면 의료원을 지을 계획입니다. 추가로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시설도 만들어집니다. 특수학교가 만들어지면 강서구 학생을 우선 배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특수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선 정치적 거래를 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을 만드는데 왜 거래를 해야 하는 걸까요? 특수학교는 핵폐기장과 같은 혐오시설일까요?

복지시설은 결코 혐오시설이 아닙니다. 이번 합의는 결과적으로 장애인과 장애인 시설을 더욱 혐오하고 꺼리는 인식을 만들어주고 말았습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 특수학교를 짓기로 했을 때 ‘거래하듯’ 다른 시설을 지어줘야 하는 나쁜 선례가 될까 우려됩니다.

김성태 의원, 주민대표, 조희연 교육감 ⓒ한겨레

학교 설립은 교육청의 권한입니다. 강서특수학교는 처음부터 교육청이 계획대로 건립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민과의 협의는 필요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지나치게 김성태 의원의 개입을 용인했습니다. 심지어 저자세를 보였습니다.

‘지역사업발전(국립한방의료원)과 장애인특수학교 건립의 갈등과 대립 속에 대체부지 마련 등으로 중재, 조정의 노력을 다해 주신 김성태 의원께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주민을 대표합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서울시교육청과 주민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지만 되려 국립한방의료원이라는 공약으로 혼란을 키웠습니다. 국회의원의 지나치고 부적절한 개입이 일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의 책임일까?

강서특수학교 갈등은 김성태 의원의 공약이 발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주체가 책임을 나눠서 지게 됐습니다.

<강서특수학교 갈등의 책임>

1. 총선 공약으로 국립한방의료원을 약속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2. 오락가락 행정을 보인 서울시교육청

3. 주민들에게 희망을 준 복지부 타당성 조사

1.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2013년 11월 25일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를 세우겠다고 공고했습니다. 그 후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자 2015년 9월 대체 부지를 탐색했습니다. 여의치 않자 서울시교육청은 2016년 8월 다시 공진초 자리에 특수학교를 짓겠다고 2차 행정예고를 했습니다.

이미 2013년 교육청이 예고한 특수학교 설립. 하지만 김성태 의원이 개입되면서 일이 복잡해집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공진초 자리에다가 국립한방의료원을 짓겠다고 공약했습니다. 2015년 10월 주민설명회를 열어서 이를 약속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실현 가능성이 작은 공약이었습니다. 학교부지는 교육청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성태 의원은 서울시교육청과 협의한 사안이라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김성태 의원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특수학교는 양천구 목동에다가 지으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발이 너무 심해 무산되자 장소가 강서구로 변경됐다며 혼란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은 그런 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다며 “사슬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2. 오락가락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 ⓒ조선일보

서울시교육청이 2013년 행정예고대로 특수 학교 설립을 진행했다면 갈등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교육청은 대체부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계속해서 공진초 부지를 고수하고 주민과의 협의만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마곡단지 대체부지라는 플랜B를 작동하면서 김성태 의원과 반대 주민들에게 반박의 명분을 줬습니다. 대체부지를 통한 특수학교 설립 노력은 거셌습니다. 하지만 마곡단지라는 플랜B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자 다시 공진초 부지로 선회해야 했습니다.

3. 주민들에게 희망을 준 복지부 타당성 조사

ⓒ한의신문


특수학교 설립이 예정된 강서구는 명의 허준의 고향입니다. 허준은 이곳에서 동의보감을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허준박물관, 대한한의사협회가 강서구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모습을 토대로 지역 자체를 ‘한방 특화 지역’으로 선정해 발전을 할 명분은 충분합니다. 지역 주민들도 기대를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은 가능해 보였기에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맥락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2015년 보건복지부는 조사예산으로 2억 원을 책정해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을 검토합니다. 김 의원은 보건복지부의 움직임을 재빠르게 포착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20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엔 없던 공약이었습니다. 공진초 부지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 한방백화점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뿐이었습니다.

복지부는 후보지를 4군데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복지부는 오직 공진초 부지만 자신들이 직접 선정해서 연구기관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다른 3군데는 연구기관에서 선정했습니다. 게다가 서울시교육청이 다시 공진초 부지를 특수학교 위치로 지정했음에도 복지부는 교육청이 마곡에다가 짓는 거로 인지하고 공진초 부지를 후보지로 확정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복지부의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서 강서구 주민들의 기대감을 더욱 올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진초 부지는 타당성 조사에서 최종 1위를 했습니다.

ⓒ경향신문


진통 끝에 특수학교가 설립됐습니다. 장애인들이 편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 과정은 두고 두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부디 이번 합의가 특수학교 설립의 나쁜 선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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