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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생을 파업하기로 결심한 이유

  • 입력 2018.08.29 14:42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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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는 뇌를 절반씩 나눠 쓴다네요. 저도 그런가 봐요.

돌고래는 뇌의 반을 나눠서 쓴다고, 그래서 자는 동안에도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뇌의 반은 자고 뇌의 반은 깨어있으니까.

영상 편집을 우연한 계기로 배우게 됐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다니던 대학교의 전공과도 무관하고 내가 살아오던 환경과는 더욱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영상을 배우기 위해 현장을 돌아다녔다. 소위 말하는 ‘길바닥 출신’이다.

나는 뇌를 나눠야 했다. 절반은 학업과 일상에, 절반은 영상 기술 쪽으로 쪼개어 두 갈래의 일정을 짰다. 그렇게 사는 삶이 즐거웠다. 분명하게 헤엄치고 있구나. 몸이 피곤할수록 지느러미를 열심히 놀렸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밤새 촬영하고 다음 날 다른 촬영을 나선 적도 있다. 시험 기간엔 밀린 편집을 하고 시험 범위를 대충 훑고 대학교 과제로 내야 하는 그림을 그렸다. 노트북에 일정을 정리하는 달력은 칸이 모자라서 일정들을 앞글자만 적어야 했다.

난 내가 돌고래라고 믿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로하지 않았던 날들이다. 어쩐지 뒤처지고 싶지 않고 마음이 급했는데 그럴 때마다 잠을 줄였다. 특별한 목적의식이 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기에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렇게 살고 있었다. 돌고래처럼 뇌를 나눠 쓰고 있나 보다.

그렇게 이해하니 뭔가 명확해졌다. 계속 헤엄을 쳐야 한다. 헤엄을 치지 않으면 지금 해놓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이다.

가끔 숨구멍 대신에 아가미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어요.

컴퓨터를 많이 보는 일을 하다 보니까 눈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특수 안경을 맞췄다. 녀석은 파란 필터가 살짝 있어서 전자파를 막아준다고 한다. 가끔 늦게까지 편집을 하는 날이면 눈이 피로해져서 충혈된다. 그제야 서랍에서 부랴부랴 녀석을 꺼내어 며칠을 쓰고 다니는 것이다. 그 안경을 낄 때의 기분이 참 오묘했다.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는 뿌듯함과 어딘가 망가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괜찮아야만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벌겋게 충혈된 나를 보고 누가 말했다.

"넌 상어처럼 사는구나."

"응?"

"상어는 헤엄을 멈추면 질식한다던데."

나는 숨을 쉬고 있었을까?

어느 날 새롭게 잡은 팟캐스트 녹음하러 스튜디오로 가는 길, 홍대 길바닥에서 구역질했다. 점심 이후 먹은 게 없어서 타액만 잔뜩 쏟았다.

그날 더러워진 신발을 빨며 울었다. 이마가 아팠다. 나는 돌고래처럼 우아하게 헤엄치지도 않았고 수면을 향해 멋지게 솟구치지도 않았다. 비틀린 목적의식 속에서 지겹게 가라앉고 있었다. 상어는 헤엄을 멈추면 죽기 때문에,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파도를 삼키고 있다.

해내 가고 있다는 성취감 때문에 일을 하고 있었다.

침대는 늘 심판대였다. 오늘 무얼 했고 무얼 해냈고 무얼 실패했지? 이상하게 침대에서 돌아본 인생은 후회할 일 투성이였다.

넌 영상을 전공하지 않았고 따로 배우지도 않았잖아. 할 줄 아는 거라곤 길바닥에서 익힌 경험이 전부고 그것들은 수치나 활자로 널 증명해주지 않잖아. 경력을 더 쌓아야 해. 다른 무언가를 또 시작해야 해. 뒤처지면 안 돼. 누군가 내 등지느러미를 물러오고 있어.

뒤처진다는 공포는 매일 내 목을 날카롭게 후볐고 그럴수록 나는 더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괜찮습니다. 더 할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학생이라는 명패를 차고 20년을 살았다. 이제 피부처럼 익숙한 이름을 내려놓고 다른 바다로 나가야 한다. 사회로 나간다는 말은 곱씹어보면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평생을 학생으로 살았는데 이제 더는 학생이 아니라는 말은 무언가 발가벗겨지는 것처럼 낯선 일이었다. 그 서늘함이 무서워서 계속 새로운 일감을 찾아 뭐라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파업하려고요. 지금 오늘 하루를.

예전에 친구들과 대학교를 자퇴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혀 깨물 용기가 없어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

당시의 취지는 자퇴하고 싶으나 용기가 없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말이었는데 지금의 나도 그러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 멈출 용기가 없어서 그냥 뭐라도 하고 있다. 익숙한 피곤함을 잔뜩 끼얹고 인생을 열심히 산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아주 클래식한 방법일 것이다.

남들이 다 토익을 하니까 나도 토익을 하는 게 아니라 내게 필요해서 하는 분명함이 필요하다. ‘혹시 몰라서’가 이제는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내게 필요한 피로함으로 하루를 채워나가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편한 마음으로 인생을 파업하려고 결정했다. 여행을 가라고 해도 성격상 작업용 PC를 챙겨갈 것이기에 더 과격한 방법을 썼다. 이 파업 선언을 하고도 한 달 내내 평소 이상으로 바빴지만 사실 바빴던 일이 이번 달 내로 대충 정리되기 때문에 지금이 기회이다.

나는 이제서야 진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른다.

파업이라고 해서 막 일을 다 때려치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좀 더 생산적으로 낭비하자는 말이다. 알아봤던 인턴 자리를 잠시 미뤄두고 고향에 내려가 드론 촬영을 공부하고, 같이 크루를 만들어 영상을 찍어내자는 고마운 형들의 말을 잠시 거절하고 고향의 엄마와 잡담을 떠는, 그런 낭비의 파업.

학교에 가는 지하철에서 문득 교과서를 집에 두고 왔음을 눈치챘을 때, 우린 선택을 마주한다. 지각하더라도 다음 역에서 내려 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지각을 면하고 수업시간 내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보낼 것인가.

이제는 다음 역에 내릴 수 있는 용기를 배워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도망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일본 드라마의 제목처럼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그렇게 생긴 뇌의 여백으로, 앞으로 어떻게 헤엄을 쳐야 할까를 분명하게 고민하고 싶다.

정말로 더 오래 헤엄칠 수 있도록

직썰 필진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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