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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민주주의는 처음이지?

  • 입력 2014.06.05 14:06
  • 수정 2014.06.0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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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31일 / 지금, 독일에서는

에르도안 터키 총리 독일 방문에 45,000명 반대시위

레세프 타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지난 5월 24일, 독일 쾰른을 찾았다. 랜세스아레나 경기장에서 한 관변단체가 주최한 대형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터키 소마 탄광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지 불과 열흘만의 일이다. 독일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난색을 표하며 “오지 말라”, “언행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총리는 되려 “반대 집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막아달라”고 요구해 독일 시민들의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처음 경찰에 신고한 반대 집회 참여 인원은 만 명이었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쾰른 방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참가자 수는 45,000명 (경찰집계)로 늘어났다. 집회가 시작된 에버트 플라츠는 깃발과 플랜카드를 든 터키인들로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탄광 사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안전모를 쓴 참가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선두에서 이끄는 확성기나 조직적인 노래 없이 시위대는 천천히 쾰른 시내 남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에르도안은 물러나라”고 엄숙하게 외치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려보이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터키 축구 응원단, 유모차를 밀고 온 젊은 엄마들, 독일 친구를 데리고 온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경찰은 시위대가 예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만을 했다.


“소마는 사고가 아니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석탄으로도 따뜻하게 할 수 없다”는 피켓이 눈에 보였다. “우리가 트위터를 하니 에르도안이 벌벌 떠네”라는 구호도 보였다. 지난 3월,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에르도안이 소문과 증거물이 퍼져나간 SNS 접속을 차단한 것을 비꼰 것이었다. 두 달만인 5월 29일 터키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접속 차단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터키의 지난 1년간은 한국과 신기하리만치 닮아있다. 게지 공원 점거 시위로 시작된 반 정부 시위, 부정부패를 폭로한 검경찰에 대한 보복 인사 단행, SNS 서비스와 언론 통제. 팽목항과 소마. 정부의 책임을 묻는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다가올 선거에만 정신이 팔린 집권 여당. 세월호 사고와 그 후의 일들을 인터넷을 통해 외국에서 혼자 접하면서 느꼈던 고립감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구호를 외치거나 15세 광부 소년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는 터키계 시민들을 보며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터키와 한국에서 ‘선거’에서의 승리는 어느새 집권 이후 무슨 일을 저질러도 된다는 면죄부 취급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민주주의의 입을 틀어막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언로가 막히고, 절망해 주저앉은 이에게 손을 내미는 대신 재차 발길질을 하는 정부에게 민주사회의 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짜릿한 복수는 선거에서의 쓰디쓴 패배를 안겨주는 것, 그리고 승리에 도취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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