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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을 살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

  • 입력 2018.08.17 12:36
  • 수정 2018.08.17 14:46
  • 기자명 서울청년정책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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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도시재생 주민리더 양성과정의 보조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토지 또는 주택을 소유한 분들이었고 한 동네에서 적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을 살았다고 했다.

하루는 살고 싶은 동네를 그렸는데 그림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예로 부터 풍수지리의 명당으로 여겨지는 배산임수를 배경으로, 한켠에는 마을회관과 놀이터가 존재감있게 있었다.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있고 집과 집 사이의 경계는 도로가 아닌 마당으로 채워져 대동소이했다.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었지만 자연보다는 앞서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이다.

지금의 서울을 사진 찍으면 사람들이 그린 그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동네를 품어주듯 배경 역할을 한 산과 강은 뺵뺵한 고층의 아파트와 도시 고속도로로 대체됐다. 마당 대신 주차장이 들어섰고, 차가 없는 시민들에게는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이 주차장 역할을 대신한다.

마을회관과 놀이터보다 대형쇼핑몰이 더 환영받는다. 인근에 공원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원래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쌓아 올린 빌딩 옆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어도 상관없다. 역세권, 몰(mall)세권이라는 말로 인기가 높다. 정말로 살기 좋은 동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기(buying) 좋은 동네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에는 이도 부족한지 도시 외곽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들은 산세권, 숲세권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집값만 올릴 수 있다면, 사람 빼고 그 어떤 것이든 모두 동원될 수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아무리 내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지만, 서울 집값 올라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출처=서울연구데이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이후에 집값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단기적으로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기도 했고 상승률도 점차 줄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집값은 유지되고 있다. 단언컨대 로또를 제외하곤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집이다.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지만 말이다.

2018년 4월 기준 서울 주택의 중위 가격은 6억에 달하며, 아파트는 7억을 넘어섰다. 즉, 서울의 모든 주택들을 가격 순으로 일렬로 세운 뒤 가운데에 해당하는 집을 사려면 6억 가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집값이 높은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막상 숫자를 보니, 그리고 월급과 비교해보니 또 다시 입이 쩍 벌어진다.

고성장 시기에는 안정적인 직장도, 이에 따르는 월급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또 그 집의 가격이 올라 대출금을 갚고도 돈을 오히려 더 벌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고 저성장 시기에 접어들자 집값만 고공행진하고 있다.

월급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일자리는 불안정한 것도 모자라 없어지고 있다. 청년주거문제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40년 한국의 경제성장을 떠받친, 그리고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산층으로 만든 금융(은행), 기업(주로 건설사), 정부의 삼각동맹을 위시로 한 경제체제가 낳은 산물이 바로 청년주거문제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임기를 마친 민선 5기 오세훈 전 서울시장. 출처=한겨레

현재 청년주거문제는 지하, 옥탑, 고시원과 같이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문제로 대표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특정 시기, 즉 대학생이거나 신혼부부일 때, 임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곧 청년주거정책이 되었다.

청년주거정책의 원조는 아이러니하게도 뉴타운 광풍을 불러일으킨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그는 대학생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의 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고 이후 바톤을 이어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가장 적극적으로 또 포괄적으로 청년주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초로 청년의 취업여부, 부모의 자산,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만 19세에서 만 39세에 해당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주택 공급을 시작했다. 당시 SH공사도 서울시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청년들이 주택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협동조합형 공공주택 등 다양한 주거모델을 시도했다. 이는 청년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한편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청년 대상의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을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대학생 주거정책이 있었지만 전세 보증금을 빌려주는 방식이었기에 직접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는 행복주택을 확대, 개편하여 추진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그리고 정당과 상관없이 모두 청년주거정책을 발표했으나 상황은 반전되지 못했다. 특히 서울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 청년들의 주거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주거빈곤율은 전 지역과 전 세대 중에서 서울 청년들에게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저출생 또한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저출생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집값이 손꼽힌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청년주거정책도 다종, 다양해지고 있다. 금융 지원만 해도 매매 자금 대출, 전세 자금 대출, 심지어 월세 대출까지 생겼다. 청약통장도 청년 특화형으로 금리를 우대하고 이자에 대한 과세 역시 일부 감면해준다.

새로운 주택공급 모델도 시도되고 있는데, 2019년부터 입주할 수 있는 역세권 청년주택이 이에 해당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22년까지 역세권 청년주택을 총8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 문재인 대통령도 총12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죽하면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가는 학생이 서울대 3대 바보라 할까. 물론 역세권 청년주택이 이런 수준은 아니다. 출처=취업대학교

역세권 청년주택은 역세권에 위치한다는 것으로만 그 특성을 모두 말할 수 없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민간 부지에 짓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공공임대주택은 국유지, 시유지 등 공공이 소유한 토지에 짓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역세권 임대주택은 민간 부지에 민간 임대사업자에게 청년 대상의 임대주택을 짓게 하는 것이다. 토지의 사용과 목적이 청년 임대주택이며, 이에 동의한 민간 사업자에게 서울시가 혜택을 주는 식이다.

혜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토지의 용도를 변경해 더 높이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것, 둘째, 관련 조세를 감면해주는 것이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70~95%로 책정된다. 단, 역세권 청년주택의 약 20%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임대료가 주변 시세 30%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라 공적지원주택이다. 말장난 같지만 둘 사이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공공의 토지에, 공공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이라면, ( 땅주인과 집주인이 LH공사 또는 SH공사 등 지방공기업의 주택이라면) 공적지원주택은 공공의 지원을 받아 민간이 소유, 운영하는 주택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쉽지 않다. 민간 건설사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냐는 주장이 있지만, 민간 건설사는 오히려 정부가 토지의 사용 목적과 건물의 용도를 정한 상태에서 최초 임대료도 규제한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입주자인 청년 입장에서는 역세권 청년주택이 주변 비슷한 주택보다는 저렴하지만 또 공공임대주택처럼 저렴하지 않아서 마음껏 좋아할 수도 없다.

더 이상 주택을 대규모로 새로 건설할 땅도 없고, 정부의 재정도 충분히 넉넉지 않다. 조건을 고려하면 서울시와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이든, 공적지원주택이든, 아니면 임대주택이든 단순히 공급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청년주거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청년주거문제는 그동안 축적된 불평등이 세대 내는 물론 세대 간으로 전이되어 나타난 결과다. 이건 물론 달콤했던 고도성장의 대가다.

수능 끝나면 취업, 취업 끝나면 결혼, 결혼 하려면 내집마련...고통은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출처=잡코리아

월세로 시작한 청년들이 전세를 거쳐 주택 구입을 할 수 있는 소위 '주거사다리'는 이제 작동하지 않는다. 주택 가격의 70%를 넘어서는 전세로 살 바에는 집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그렇다. 재임 당시 그들은 가장 열심히 청년들에게 "빚 내서 집 사라"고 주문했고,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가계부채의 총량은 늘어났고, 집값은 더 높이, 더 위태롭게 지속되고 있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산 사람들은 당연히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온 시민들이 청년주거 문제에 가담하게 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위험한 가계부채 위에서 지탱되고 있는 집값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역사상 전 세계의 어떤 나라도 온 시민이 100%로 자기 집을 소유하지 못했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OECD 평균이 10% 정도다. 각 국가마다 주택과 복지 관련한 시스템이 다르기에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자가주택이든 공공임대주택이든 빠르게 대폭 늘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이전 세대가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현실이 우리 앞에 있고, 이것을 청년들은 온몸으로 겪고 있다. 우리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해법으로는 결코 청년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주거정책의 목표를 여전히 "1가구 1주택"으로 설정하고, 대출을 장려하면서 한편으론 청년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지금의 방식은, 안타깝게도 단기 해법이자 일시적 고통 경감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청년주거문제는 계속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이될 것이다. 현재의 청년들이 중년이 되어서도 장년이 되어서도 나타날 것이다.

그럼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집을 마련하고 안정적으로 평생을 살아갈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바로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새로운 주거정책에 필요한 목표다.

집을 살 수밖에 없어서, 평생 갚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빚을 내게 하고, 다음 세대에게 더 높은 집값을 물려주는 이 악순환의 고리에 청년들이 얽히지 않고 고리를 끊어낼 수 있도록 (사지 않고도) 집을 마련하는 새로운 약속이 필요하다.

이 약속과 조우하는 청년주거정책이 만들어져야 청년주거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제 새로운 약속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가 과거의 성과가 남긴 그림자 속에서 살게 하면 안 된다.


서울청년정책LAB

필자 :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실행위원회 임경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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