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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섭이 ‘꽃할배’ 형들보다 뒤처져 걸었던 이유

  • 입력 2018.07.11 10:07
  • 수정 2018.07.11 11:11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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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여행지는 베를린이다. 한국전쟁을 몸소 겪었던 꽃할배들에게 베를린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됐던 시절 미군 관할 검문소였던 체크 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공원인 월 메모리얼 파크를 둘러보는 꽃할배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역사의 현장을 걷는 그들의 발걸음에서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꽃할배들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곤히 잠을 자던 꽃할배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아침을 맞이한다. 열정 가득한 이순재는 밤늦게까지 씨름했던 대본을 다시 손에 쥔다. 청바지를 입던 신구는 “너무 애들 옷 같지 않아?”라며 이서진에게 검사를 맡는다. 김용건은 어김없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고 박근형은 그의 말에 추임새를 넣는다.

웬일인지 백일섭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니, 백일섭만 분주하다. 이른 시간이지만 가방 정리에 여념이 없다. ‘건건아(재미없는 농담을 자주 던져 ‘싱겁다’는 의미의 김용건 별명)’의 수다에 웃음을 짓다가도 다시 짐 정리에 매진한다. 무슨 일이지? 이윽고 꽃할배들이 식당에 하나 둘 모여 식사를 시작한다. 분주한 대화 속에서 식사가 마무리돼 간다. 이서진은 오늘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라고 브리핑한다. 백일섭은 조용히 밥을 다 먹은 후 과감히 선언한다.

“오늘 나는 아홉 시 반에 출발할 거야. 찬찬히 가면서 커피도 한잔 먹고, 맨날 뒤따라 가니까…”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

아마 꽃할배를 애정했다면 백일섭의 행동이 이해 가는 동시에 왠지 모를 짠함이 몰려왔을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백일섭은 걸음걸이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맨 끝에 뒤처져 걸었다. 6년 전에 떠났던 첫 여행 때부터 그랬다. 직진 순재는 저만치 앞서나가서 보이지도 않았고 신구와 박근형은 중간 즈음에서 걸어갔다. 이 순서는 마치 <꽃보다 할배>의 공식과도 같았다.

백일섭은 매번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느린 걸음으로 따라가느라 바빴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는 백일섭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또, 걱정되기도 했다. 한편, 민폐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몸이 그리 좋지 않으면 스스로 출연을 고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백일섭도 그런 시선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그 또한 매번 자신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형들에게 미안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백일섭은 다른 이들보다 30분 먼저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뒤처지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여행을 함으로써 다른 일행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

“여섯 명이 합심해서 다니는 게 (호흡이) 맞아야지. 내 자신한테도 지면 안 된다.”

그것이 백일섭의 최선이었고 또 배려였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백일섭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면서. 혼자 먼저 나와서 느긋하게 걸을 수 있게 되자 백일섭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내 속도로는 잘 걸어. 여행이라는 게 이렇게 천천히 가면서 쉬엄쉬엄 가는 거지. 막 바빠, 다들.”

백일섭의 속도로 걸으니 베를린의 거리가 보다 잘 보였다.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갈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 조급하게 걸어 나갔다면 놓쳤을 일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시하곤 했던 백일섭의 속도는 더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다. 백일섭은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여행을 즐기고 만끽하고 있었다. 그걸 몰랐던 건 마음이 급하기만 했던 우리가 아니었을까.

“<꽃보다 할배> 사랑하시는 시청자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처음에는 조금 미숙하지만, <꽃보다 할배>를 위해서, 제가 따라가기 위해서 재밌게 열심히 할게요. 파이팅!”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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