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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포스트잇 붙였던 그 여학생들 이야기

  • 입력 2018.06.07 12:14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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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생들이 교사를 신고했다.

4 5, 교육청에 사립학교 교사 2명이 학생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왔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자는 학생이 피해를 알리려 했으나, 학교가 이를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노원구 소재의 사립학교 용화여자고등학교(이하 용화여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3일 후 해당 학교의 창문엔 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만든미투’ ‘위드유문구가 붙었다. 졸업생들이 시작한 미투에 재학생들이 지지를 보냈다. 학교 내 성폭력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투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 중인 14년도 졸업생 단체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와 재학생 단체용화여고 with you’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인터뷰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위원장 강지원(24, 가명), 김한나(24, 가명) / ‘용화여고 with you’ 김유진(19, 가명), 김지혜(19, 가명)

* 졸업생은 (), 재학생은 ()로 표시했습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용화여고 with you’
ⓒ 페이스북 페이지 ‘용화여고 with you’

“미투 신고할 건 아니지?” … 스탠드바, 카바레 단어도 버젓이

Q. 말씀처럼 피해 경험이 졸업생이나 재학생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지원: (고발당한 교사의) 유행어가 있었는데, “언더스탠드빠?”라고 하면 학생들이예스카바레, 예스마담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스탠드바, 카바레, 마담 이런 용어에서 따온 말들이 교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버젓이 쓰인 거다.

(학생들을) ‘흰둥이’ ‘껌둥이’ ‘이쁜이이렇게 나누기도 했다. 저는껌둥이에 속하는 학생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겨서 까무잡잡한 애들끼리 하얘지는 약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언행들이 정말 많았다.

() 유진: (그 유행어) 뭔지 안다. 정말 똑같다. 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엔 담임을 맡은 교실에 가서너희 고3이니깐 부항을 교실에 둘까? 그런데 부항 놓으면 미투 같은 거 신고할 거잖아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반 친구 허리를 감싸면서이렇게 하면 미투 신고할 건 아니지?’ 이런 말도 하고.

() 지혜: 그 행동들이 불편해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대학 가기 싫어요?” 이런 말 들으면 무섭고, 생활기록부로 협박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 지원:이렇게 하면 생활기록부에 다 쓸 거다라는 말엔 사실 정답이 있다. 그냥는 틀린 답이다. 애교스럽고 사근사근한, 귀여운 반응을 요구한다. 실제로 생활기록부가 아끼는 애들은 여섯 줄, 싫어하는 애들은 두세 줄 이렇게 차이가 나기도 하고.

() 한나: 그냥 웃고 넘긴 것들도 많다. 일단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잘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선생님들이 웃음을 강요하기도 했다.

() 지혜:너희 이렇게 반응 안 하면 교과서만 읽는다. 수업 할 맛 안 난다이런 식으로.

() 한나: 선생님들은 교사의 행동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얼마나 큰 권력과 권위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 지원: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정말로 달라진 게 없다.

상담센터는 진입장벽 커교원평가 시수업 이외의 것은 쓰지 말라

Q. (성폭력 대응을 위해) 상담센터나 교원평가 등의 방법을 이용할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 지원: 교내에 상담센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상담센터는 소위정말 큰 일이 아닌 이상 가면 안 되는 곳으로 느껴졌다. 일종의 진입장벽이 있었다.

() 한나: 설문조사나 교원평가는 담임이 볼 것 같아서 쓸 수 없었다.

() 지원: 같은 반 친구가 교원평가에 선생님의 행동이 불편하단 식의 글을 적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처리가 전혀 안 됐다. 심지어 다음 해에 방송으로교원평가를 할 때 수업 이외의 것은 쓰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 유진: 앞에 선생님이 있고 친구들도 옆에 있으니 맘 편히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느낀다. 선생님에 대해 좋은 점, 안 좋은 점을 각각 300자씩 쓸 수 있는 칸이 있는데, 수업에 들어와서 누가 뭘 썼는지 알아낼 것이라고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고함20

‘진정한’ 학교를 위해서...

Q. 이런 문제들이 비단 용화여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교 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인식이나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 지원: 사실 교사 개인을 처벌하고 해고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학의 수직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생인 우리도 선생님들 간 권력구조를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권력) 피라미드가 있다. 그게 문제의 온상이 아닐까.

() 지혜: 이런 환경에선 비리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학생을 위하는 학교가 됐으면 한다.

() 한나: 목소리를 냈을 때 이상한 학생으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아니어야 한다.수박 겉핥기식 성교육을 개선한다거나 면담 시 녹음을 할 수 있게 하는, 더욱 구체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 유진: 학생에겐 학교가 정말 크다. 우리는 교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목소리를 내고자 했을 때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설문하면서도이런 거 적어도 될까?’ ‘그런 거 왜 적어 그건 장난이잖아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 수 있도록.

Q. 신고가 접수되고 두 달여가 지났다. 이후 활동할 계획이 또 있으신지?

() 한나: (웃음) 오늘 그걸 구체적으로 회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기도 하다.

() 지원: 스쿨미투를 좀 더 확장하고자 한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모임과 함께 문화제를 기획 중이다. 이것이 비단 용화여고라는 한 사립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바로 옆에 있는 노원구의 다른 학교에서도 버젓이 성폭력은 발생한다.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용화여고 with you'

고발된 교사들은 이제 학교에 없다. 교육청의 특별감사가 이뤄졌고, 따로 상담교사도 학교를 방문했다. 학생들은 다시 똑같이 수업을 받고, 급식을 먹고, 공부를 한다. 그러나 아직 학생들이 창문에 붙인 포스트잇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를 바꿀 소란은 이제 시작이다.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용화여고 with you’의 행보를 응원한다.

직썰 필진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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