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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늘 한국인들에게 '원나잇 프렌드'야?”

  • 입력 2018.06.01 09:48
  • 수정 2018.06.05 16:06
  • 기자명 Korean Grammar Do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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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Token black friend’라는 현상이 있다. ‘Token’은 “형식적인, 시늉에 불과한”(네이버 사전)이라는 뜻이며, ‘black friend’는 말 그대로 흑인 친구라는 의미다. 형식적인 흑인 친구, 이는 백인들이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며 다른 인종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단 한 두 명의 흑인 친구를 사귀는 것을 뜻한다.

미국 미디어도 인종차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에 일부로 백인 주인공들 사이에 흑인 한 두명 등장시킨다. 이를 ‘Token black guy’라고 한다. 요즘은 다른 유색인종의 증가로 흑인 대신 아시아인이나 히스패닉 인종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미디어가 인종의 다양성을 존중한다기보다 백인 우월주의나 인종차별 논란을 피하기 위한 보험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작 백인 사이에 있는 ‘Token black guy’들은 모임, 매체, 각종 행사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한다. 백인 사이에서 흑인들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영화도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redsuspenders.tumblr.com

ⓒBOY MEETS WORLD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외국인이 방송이나 매체에 다른 목적으로 등장한다. 외모가 다른 외국인들, 특히 백인들의 등장은 제품과 방송의 이국적이면서도 신비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만든다. 기업이 타국가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 지에 상관없이, 광고에 외국인이 등장시켜 “우리는 세계화에 앞장선 기업입니다. 우리는 국제적인 물에서 노는 회사입니다”라는 걸 강조한다. 또한 영어 학원에서는 ‘특정 인종’이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더 많은 고객을 모으려고 한다.

백인 여성들만 등장하는 광고. ⓒSKT

'백인여교사와 할로윈 파티'를 할 수 있다는 어학원 광고. ⓒ인터넷 커뮤니티

이런 분위기 속에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외국인을 직접 만나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 미디어에서만 보던 ‘외국인’들을 만나서 신비로운 이미지를 소비해보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외국인을 만난 경험, 외국인들과의 연애 경험 등의 글도 한국인들의 욕구를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충족시킬만한 사업도 등장한다. 바로 '외국인 친구 만들기' 사업이다.

외국인 친구와 같이 영어 공부하기, 외국인 친구와 같이 한국문화 즐기기라는 이름의 이벤트나 모임을 만들고 한국인들에게 광고를 한다. 한국인들을 외국인 친구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많은 돈을 내고, 모임과 이벤트에 참가한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에 있는 한 회사는 ‘다양한 분들과 함께 다양한 문화를 즐긴’다는 모임 서비스로 한국인들은 2달에 229,000원을 부과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무료다. 그야말로 해외에서 온 사람을, 한 언어를, 한 문화를 돈 주고 파는 셈이다. ‘외국인 친구 만들기'와 '외국인과 같이 놀기'를 상업화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229,000원을 내고, 외국인은 공짜다(free korean class). ⓒ해당 업체 홈페이지

ⓒ관련 광고 모음

현재 한국 거주 중이거나, 거주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외국인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하는 한국인들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은 과연 어떤 관계의 친구가 됐을까. 인터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카톡 캡처

1. A씨

한국에서는 외국인 친구 사귀기가 상업화된 것 같아. 서울을 돌아다니면 외국인 만나기, 외국인과 같이 파티하기 같은 광고를 많이 볼 수 있어. 그리고 ‘Meetup’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외국인과 같이 술 마시고 어울리기라는 광고도 있어.

2. B씨

한국인들은 나를 만나면 언제나 사진을 같이 찍어. 그리고 자기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며주면서 “여기 내 외국인 친구야”라고 소개해. 내가 사진에 찍힐 때마다 무슨 물건처럼 느껴지곤 해. 하지만 우리가 친구처럼 다시 만날 일은 없지. ‘원나잇’과 다를 바 없어.

3. C씨

어떤 친구들은 언제나 엄청난 양의 영어 질문을 쏟아내요. 질문 몇 개 정도면 괜찮은데, 가끔 도가 지나쳐요. 저를 친구가 아니라 영어 선생으로 생각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를 만날 때마다 “너를 만나서 참 반가워. 오랫동안 영어를 쓸 수 없었거든”이라고 인사해요.

4. D씨

10년간 한국에서 살면서 제게 친구가 되고 싶다, 내 자녀의 영어를 가르쳐 달라, 영어 번역 좀 도와 달라, 회사 서류 좀 고쳐달라는 사람들을 수백 명 만났어요. 그런데 대다수가 제 이름조차 몰랐죠.

5. E씨

저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백인은 아니에요.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 친구를 원하지만, 그건 백인인 미국, 영국, 호주 출신만 원해요. 제가 들은 말 중 최악은 “외국인아! 인도로 돌아가라!”였어요. 멕시코 사람인데 제 외모만 보고 말이죠.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1)한국인들은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2)한국인들은 외국인 친구가 있으면 더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공통점을 고려할 때, 보여주기식 외국인 친구 현상 ‘Token non-Korean friend phenomenon’은 한국에서 실재한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외국인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을 말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러분들이 외국인 친구를 만든다면 어떤 식으로 그들을 대하고 소통할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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