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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을 비관하다 자살한 학생의 마지막을 목격했다

  • 입력 2018.05.10 10:25
  • 수정 2018.06.05 16:58
  • 기자명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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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등학교 합동 소방훈련이 있는 날이다. 소방 벨이 요란하게 울리자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줄지어 내려온다. 대피로를 안내하는 내가 다 무안할 정도로 학생들은 반응이 없었다.

고등학교 합동 소방훈련 풍경. ⓒ소방방재신문

높은 학구열을 자랑하는 학교인 데다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합동 소방훈련을 시간을 뺏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아끼려 피난처에 쭈그려 앉아 영어 단어 책을 보는 학생도 있다. 빨간 신호탄이 터지든, 하얀 소화분말이 나오든, 훈련 내내 그 학생의 시선은 책에 꽂혀 있었다. '성적에 목매지 말고 훈련에 집중하자'는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눈이 펑펑 오던 밤이 떠올랐다. 그날은 대설(大雪)이라는 절기에 걸맞은 날씨였다. 밤새 쌓인 눈에 신발이 푹푹 빠지지만 이유 모를 포근함에 기분이 좋았다. 신고가 들어온 곳은 멀지 않았지만, 길이 험했다. 바퀴에 체인을 걸었음에도 몇 번은 헛돌았다.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지나 소방서 인근의 산 중턱에 도착했다. 나무 사이로 올려다본 밤하늘에선 별빛이 쏟아져 내렸고, 숲속엔 자박자박 발소리만 울려 퍼졌다. 눈에 반사된 달빛이 어스름하게 집을 비추었다. 가정집이라기보다는 산장 펜션 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목조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체인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 벌컥 문을 열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확히는 어떤 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대답 없는 남자를 거실 소파에 앉히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꿈에 그리던 탁 트인 복층 건물. 연갈색의 목재 벽면과 잘 어울리는 원목 가구들이 가득했다. 사슴 머리 헌팅 트로피는 빈티지한 매력이 있었고, 캔들 홀더는 북유럽풍의 탁자와 잘 어울렸다. 흔들의자 뒤로 보이는 벽난로는 사용한 지 꽤 되어 보였지만,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 보름 후 찾아올 크리스마스엔 이 집이 어떻게 꾸며질지 기대가 되었다.

그새 곯아떨어진 남자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환자를 찾아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면장갑을 꼈다.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활짝 열린 두 방의 문과 달리, 닫혀있는 방문이 눈에 들어왔다. 손잡이를 돌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좀 더 세게 밀어보았지만 찰랑거리는 체인 소리만 들릴 뿐,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돌아 거실의 남성에게 방 열쇠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다가오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동료 대원이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남자가 ‘당겨요’라고 말했다. 미는 게 아니라 당겨야 열리는 문이었다.

문을 당기는데, 보통 문과 다름을 느꼈다. 묵직했다. 살짝 열린 틈으로 어둑한 방 안을 살폈다. 천장 가까이 달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이쳐 커튼이 요란하게 펄럭였다. 체인이 걸려있나 확인하려 문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 대문도 아니고 방문에 체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당긴 손잡이 아래로 체인이 팽팽하게 걸려있었다. 체인을 따라가던 시선이 멈춘 곳엔 한 학생이 엎드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엎드려 있진 않았다. 붕 떠 있는 상반신과 달리 머리와 두 팔은 바닥을 향해 축 늘어져 있었고, 하반신은 완전히 바닥에 닿아있었다. 문고리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천장이나 높은 곳에 줄을 걸고 목을 매는 환자들 대부분은 저산소증으로 인해 질식사하고 만다. 5kg의 하중만 있어도 뇌로 가는 산소가 차단되는데, 몸무게만큼의 하중이 작용하면 살 턱이 없다. 학생은 문고리 정도의 높이만 돼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고통에 스스로 체인을 풀까 염려하여 자신의 손과 발을 케이블 타이로 미리 묶어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려 손잡이를 당기는데 학생이 그대로 쓸려 나왔다.

최소한의 틈만 확보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맡은 냄새는 목을 매면서 나온 배설물 냄새였다. 사망 신고를 위해 학생의 목에 감긴 체인을 풀었다. AED가 상황을 기록하는 동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나 보다. 아까 봤던 창문이 높았던 건 빼곡한 책장 때문이었다. 이 많은 책장이 모두 교과서와 참고서로 채워져 있는 게 안타까웠다. AED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데 방 한쪽 구석의 책상에 눈길이 갔다.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학생이 쓴 편지였다. 곳곳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아빠. 태어나서 아빠에게 처음 쓰는 편지가 이런 편지라서 죄송해요.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빠가 가진 머리를 왜 나는 받지 못한 걸까요. 도망간 엄마 머리가 너무 나빴던 걸까요.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책을 봐도 글자가 안 읽혀요. 미칠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축구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너무 미안해서 놀고 싶다고 말을 못 하겠어요.

수능 잘 봤다고 한 거 다 거짓말이에요.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1교시 끝나기도 전에 나왔어요. 숨이 막혀서 시험지를 던져버렸어요. 아빠가 원하던 경영학과에 못 갈 것 같아요. 아빠 회사를 물려받을 자격도 없겠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 써요. 아빠. 정말 사랑해요. 아빠는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일절 입에 안 대는 정말 멋진 아빠예요. 아빠가 제 아빠라서 너무 고마웠어요. 다음에는 제가 꼭 아빠의 아빠로 태어나서, 행복하게 해줄게요. 저는 먼저 올라가서 그 날만 기다릴게요. 사랑했어요.”

2015년의 통계. 2018년은 또 얼마나 증가했을까. ⓒMBC

문을 열고 나오자, 별은 온데간데없고 불그스름한 수평선이 보였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은 무게를 못 이겨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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