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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야당, '3기 방심위' 벌써 포기했나?

  • 입력 2014.05.21 11:59
  • 수정 2014.05.21 17:31
  • 기자명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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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 인선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야당은 새누리당을 결코 이길 수 없는지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다. 아니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이름의 야당은 도대체 새누리당과 싸울 의사가 있는지 조차 궁금할 지경이다.

방송과 통신의 콘텐츠를 심의하고 제재를 가하는 방심위는 여당 쪽 6인, 야당 쪽 3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된다. 이중 3인이 상임위원(2인 여당, 1인 야당)이다. 여당에서 추천한 상임위원 두 사람이 위원장, 부위원장을 자동으로 맡는 형태다. 말도 안 되는 구조지만 여하튼 그렇게 됐다.

2기 방심위는 지난 5월 8일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그 전에 3기가 구성돼야 했지만 청와대 포함 여당 쪽에서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이제까지 미루어져 왔다. 그리고 며칠 전 청와대가 3기 방심위원장으로 박효종 전 서울대 윤리학과 교수를, 부위원장으로 공안검사 출신인 함귀용 변호사를 내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운동단체들과 방송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역시 공안검사 출신 박만 씨가 위원장을 맡고 극우 성향의 KBS 출신 권혁부 씨가 부위원장을 맡아 한마디로 ‘공안 검열기구’라는 평가를 받았던 2기 방심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구성인 것이다. 박효종 전 교수는 2005년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의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5.16을 “쿠데타이면서도 혁명이다”고 말하기도 했고, “5.16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두터운 중산층이 출현했고, 이들이 민주주의의 등뼈와 같은 존재가 됐다”며 미화했다. 또한 그는 ‘종북 척결’을 내세우면서 민주적인 인사들에 대해 색깔론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자유총연맹,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 등 극우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꾸린 ‘자유민주국민연합’의 상임대표를 맡은 인물이다.

"5.16은 혁명이다" 박효종 교수

함귀용 변호사의 이념적 편향성 역시 일반적 상식에 동 떨어져 있다. 그는 오래 전 송두율 교수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색깔론을 들이대면서 “대남적화전략의 일환으로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자들이 배후에서 사주해 제작되고 방송된 것이 아니기 만을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 자체가 위법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박근혜 정권의 인사스타일을 볼 때 언론운동계와 방송계가 아무리 반발한들 이들에 대한 임명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론장악에 목을 매고 있는 정권의 입장에서 방송의 ‘최종 검열기구’ 역할을 하는 방심위를 느슨하게 풀어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반발을 각오하고 주도면밀하게 이번 인선을 꾸며왔을 것이다.

문제는 야당 쪽 추천 인사들의 면면이다. 여권 쪽에서 이런 인물들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미리 대비했어야 한다. 비록 1/3의 적은 수로 맞서야 하지만 어쨌든 여당 쪽 인사들의 전횡을 막아야만 하는 최후의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에 그만한 존재감과 역량, 전투력을 갖춘 인물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야당 쪽은 정확히 말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이달 초에 추천절차를 끝내고 3인의 위원을 추천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인물들인가.

3기 상임위원으로 내정된 장낙인 씨는 2기 때 비상임 위원을 지낸 인물이다. 여기서부터 벌써 이상하다. 2기 야당 쪽 추천 인사들은 수적인 열세 여부를 떠나 역량 자체가 떨어져 전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아 왔다.

막무가내로 나오는 상대방을 설득하기는커녕 저지하지도 못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걸핏하면 퇴장으로 반대했다는 생색만 냈다. 언론민주화를 위한 활동도 없었고 민주언론에 대한 신념도 모호해 진영의 힘을 묶어 내는데도 실패했다. 무기력했던 2기의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 3기에서 오히려 더 큰 중책을 맡은 셈이다. 전투력이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 심의는 학계 출신도 할 수 있고 법조계 출신도 할 수 있지만 언론계 출신이 하려면 아무래도 PD보다는 기자 출신이 더 적격이다. 심의 대상이 주로 뉴스 보도이기 때문이며 기자는 오랜 기간 뉴스 보도의 속성을 체득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당 쪽 비상임 위원의 하나로 추천된 박신서 씨는 MBC 출신의 PD다. 그가 젊었을 적 노조위원장을 맡았고 을 출범시키는데 한몫을 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가 MBC를 지키고 방송민주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장낙인이나 박신서 씨의 경우는 양반이다. 또 한 사람의 비상임 위원인 윤훈렬은 전혀 언론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직함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김대중 정권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행정관,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을 지냈을 뿐이다.

이런 인물들이 뉴라이트 교수와 공안검사 출신을 쌍두마차로 하고 하남신 전 SBS 논설위원, 차만순 전 EBS부사장, 고대석 전 대전MBC 사장으로 이루어진 여당 쪽 인사들과 제대로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야당 쪽에 인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밀실에서 은밀하게 후보자를 추려내는 반면 야당 쪽은 공모를 통해 공정하게 후보자를 뽑는다고 자랑도 하는 판이다. 지난 4월부터 5월초까지 진행된 이번 야당 쪽 공모에도 20명이 넘는 쟁쟁한 진보성향 언론계 인사, 학계 인사들이 응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주언론시민연합, 동아투위, 새언론포럼, 80년해직기자연합회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언론운동단체들이 상임후보 2명, 비상임후보 2명을 공동추천하기도 했다. 경력과 역량은 물론 민주언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현장에서의 전투력을 인정받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들 가운데 단 한명도 추천하지 않았다. 이 중 상임이 유력한 것으로 회자됐던 한 인물은 ‘친노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는 말이 진보언론계에 왁자하게 떠돌고 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진보언론계 인사들은 이번 새정치민주연합의 방심위원 인선 과정을 겪으면서 정치권으로부터 심하게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인선을 해 놓고도 방심위가 엉망진창이 되면 인선을 주도한 당내 유력인사는 “원래 수적으로 불리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발뺌을 할 것이다. 숫자가 적어서 그렇다는 변명은 야당이 80 몇 석일 때도 나왔고 130석이 된 지금도 나온다. 야당이 제 역할을 못 한 것은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자리만 생기면 끼리끼리 나눠먹을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제3기 방심위의 앞날이 적잖이 우려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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